찾았다, 나의 무릉도원! 와인과 함께하는 함양 여행
소도시 낭만 여행, 마이리틀시티 8탄
마이리틀시티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소도시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낯설지만 아늑한, 소박하지만 낭만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소도시의 반전 매력에 흠뻑 빠져보세요.
함양은 지리산과 덕유산을 품은 청정 휴양도시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인 봉우리가 서른네 개나 되지만 산세는 강원도에 비해 한층 유려하다. 맑은 물 흐르는 골짜기엔 머루나 산양삼 같은 건강한 먹거리가 자란다. 낯선 듯 정겨운 도시, 그곳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반전 매력이 가득하다.
01
자연이 선물한 머루의 맛,
하미앙 와인밸리
유럽의 시골 마을 같은 하미앙 와인밸리 |
대자연에 둘러싸인 푸른 들녘을 보면 구수한 시골 밥상이 떠오른다. 갓 지은 밥에 청국장, 김장김치, 풋고추를 곁들이는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함양에서 꼭 맛봐야 할 건, 뜻밖에도 백반이 아닌 와인이다. 하미앙 와인밸리표 머루와인은 경상남도 우수문화관광상품이자 청와대 귀빈 선물로 채택된 바 있다.
하미앙 와인밸리는 삼봉산 해발 500m 고지에 위치한 머루 테마 농원이다. 서상면 농가에서 매년 10월 머루를 수매해 질 좋은 와인과 머루즙을 만든다. 숙성실, 와인 동굴, 와인 족욕장 등 다양한 시설을 통해 방문객이 직접 숙성 과정을 보고 체험도 할 수 있다.
고로쇠나무 쉼터 |
오크 와인이 익어가는 지하 숙성실 |
시음판매장(팜마켓)에서는 주력 상품인 2010년산 스위트 와인(10.5도)과 드라이 와인(12도)을 맛볼 수 있다. 머루 특유의 향과 함께 포도 와인보다 묵직하고 진한 맛이 느껴진다. 드라이 와인이라고 해도 타닌과 산미가 적당해 와인 입문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오크통에 담아 지하 숙성실에서 장기간 숙성한 오크 와인은 한정된 물량으로 인해 시음이 불가능하다. 2003년 국제와인대회 입상작이자 권위 있는 소믈리에로부터 상품성을 인정받은 와인인 만큼 최고의 맛을 낼 것으로 짐작된다.
카페 옥상에서 바라본 레스토랑 전경 |
와인 맛을 머릿속에 저장한 뒤 본격적으로 와이너리 탐방에 나섰다. 이곳의 모든 시설은 비탈진 잔디광장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부지가 넓진 않지만 맨 꼭대기에 위치한 레스토랑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앞산까지 아우르는 장쾌한 풍경을 볼 수 있다.
하늘 계단 |
잔디광장의 써클 포토존 |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유럽풍 건물이다. 뾰족한 붉은 지붕과 아치형 창문으로 멋을 낸 모습이 유럽의 농가를 연상케 한다. 70여 종의 초본류와 목본류가 식재된 잔디광장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분수와 연못, 하늘 계단 같은 포토존도 가득하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이 광장은 지난해 경상남도 민간정원 9호로 등록되어 상림공원과 함께 함양의 대표적인 지역 명소로 발돋움했다.
와인에 한 번, 풍경에 두 번 취하는 테이블 |
와인에 한 번, 풍경에 두 번 취하는 테이블 / 고풍스러운 소품으로 감성을 더한 레스토랑 |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지리산 흑돼지로 만든 돈가스와 드라이 와인을 주문했다. 미리 시음한 덕분에 먹고 싶은 와인과 그에 어울리는 식사를 쉽게 고를 수 있었다. 돈가스 맛은 듣던 대로 훌륭했다. 함박스테이크처럼 두툼한데도 고기 누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와인으로 만든 소스도 달지 않고 부드러웠다. 일행이 주문한 고르곤졸라 피자와 고소한 치즈구이 역시 와인 도둑 그 자체다.
실내에서도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카페 |
식사를 마친 후 새콤달콤한 머루 에이드로 한낮 무더위를 싹 날렸다. 레스토랑 영수증을 카페에 제출하면 아메리카노나 머루즙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02
문화재를 품은 천년 숲,
상림공원
개울과 나무가 공존하는 상림공원 |
함양터미널에서 차로 5분 남짓 떨어진 시내에 통일신라 말부터 이어져 온 천년의 숲이 있다. 함양 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상림공원이다.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위천에서 매년 홍수가 나자 당시 군수였던 최치원이 강변에 둑을 쌓아 물길을 바꾸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피해를 막았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숲의 중간 부분이 파괴되어 상림만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 중 하나라는 역사적 의의는 변함이 없다.
평탄한 흙길이 약 1km 이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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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걷는 사람들 |
천년의 세월이 만들었을까. 숲 내부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하다.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개암나무 등 종류도 다양하다. 덕분에 조금만 걸어도 등산로 초입에 들어선 것처럼 울창한 숲의 기운이 느껴진다.
숲길은 잘 포장된 외부 둘레길과 작은 돌멩이조차 없는 안쪽의 평탄한 흙길로 나뉜다. 길이 워낙 순해서인지 신발을 양손에 쥐고 맨발로 걷는 사람도 몇몇 보인다. 곳곳에 정자나 대형 그네 같은 쉼터와 최치원 신도비, 만세기념비, 척화비 등 문화재가 많아 이곳저곳 둘러보며 산책을 즐기기 좋다.
연꽃이 만발한 정원 |
꽃밭 너머,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준비가 한창이다. |
한쪽에서는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준비가 한창이다. 산삼주제관 주변에 형형색색 꽃과 연꽃이 만발해 두 눈을 즐겁게 한다. 올해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는 2021년 9월 10일부터 10월 10일까지 상림공원과 대봉산휴양밸리 일원에서 열린다. 지리산과 덕유산, 백운산 자락의 게르마늄 토양에서 자란 산삼으로 경남 항노화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취지다.
03
폭염도 비껴가는 신선놀음 명당,
거연정
계곡 중앙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정자 |
거연정은 상림공원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힐링 스폿이다. 화림동 계곡 상류의 천연암반 위에 지어져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누정은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다. 거연정은 한 발짝 더 나아가 풍경과 하나가 된 모습이다.
무지개다리 위에서 바라본 계곡 풍경 |
거연정의 역사는 조선 중기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가 1640년대 현 위치에 억새로 된 정자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1872년과 1901년에 재건과 보수를 거쳤기에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전통 건축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마루 한가운데에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단출한 방 한 칸을 따로 마련한 점이 무척 독특하다.
가만히 자연을 느끼는 시간 |
무지개다리를 건너 거연정으로 들어가니 각자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떤 이는 음악을 듣고, 또 어떤 이는 잠을 청한다. 한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계곡을 바라보았다.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시원한 계곡 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물 흐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에 빠지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04
지리산 가는 명품 구불길,
지안재와 오도재
지안재 전경 |
길고도 짧았던 함양 여행을 마무리할 곳은 지리산으로 가는 관문, 오도재다. 함양읍 조동마을에서 출발하면 지안재와 지리산제일문을 거쳐 지리산 조망공원까지 약 25분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함양읍내는 물론 지리산까지 골고루 조망하는 이 길은 2007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도재로 가는 첫 고갯길인 지안재는 지그재그 형상의 도로가 인상적인 곳이다. 여섯 굽이 고갯길 끝에 작은 주차장과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낮보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길을 밝히는 밤 풍경이 더 예쁘다.
오도재에서 바라본 함양 읍내 |
지안재에서 4km 남짓 더 달리면 지리산제일문이 반기는 오도재(773m)에 닿는다. 지안재보다 고도가 높아 함양 읍내는 물론 대봉산, 백운산 등 해발 1,000m에 달하는 굵직한 산봉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리산 조망공원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우람한 산맥에 폭 안긴 함양군의 형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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