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를 잊을 수 없는 이유 영화 '택시 드라이버'
Movie Savoury Gourmet : 영화 향신료 맛집 #1
M.S.G. : MOVIE SAVOURY GOURMET(영화 향신료 맛집)
알아요. 말도 안되는 말인 걸. 실은 MSG라는 단어로 말장난을 치고 싶었답니다. 모든 영화는 자기 본연의 맛을 가지고 있겠죠. 난 단지 그 옆에서 깊은 맛이라곤 없는 조미료만큼의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그뿐이예요.
만일 이유의 ‘가짓수’에 촛점을 맞춘다면 쉽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가 그 가짓수란 것을 세어보겠다고 무모하게 덤벼든다면, 어떤 식으로든 공식을 세워볼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 전에 득도할 수도.
그 보다는 언제, 어디서, 왜 혹은 누구와 보았는지를 살펴보는 건 어떨까? 이유는 잠시 접어두자. 영화를 통해 기억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그것도 하나의 여행이 될 거라는 막연한 바람으로.
더 길어지기 전에 일단 영화 소개부터 해야 될 것 같다. 여기 뉴욕의 밤거리를 유유히 달리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트래비스 빅클. 뉴욕의 택시 기사다.
심야 시간. 한국에서도 진상 손님들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그 때, 뉴욕의 심야라면 다양한 인종, 성별,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겠지. 그게 어쨌건 간에 남의 일에 굳이 상관않는 게 뉴요커의 애티튜드라지만, 어쩐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범상치 않은 사람들뿐. 즉, 뉴욕에서 심야 택시를 운전한다는 건 꽤나 험한 일을 많이 겪는 일이라는 것이다.
외로워보여서요.지날 때마다 보면 주위에 사람들도 많고, 전화도 늘 분주해보이지만 당신 눈빛이나 행동하는 걸 보면 행복해보이지 않아요. 뭔가가 필요해요. 친구같은 존재가.
그 중 한 여자, 벳시를 눈여겨보는 트래비스.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는 뉴욕에서 그녀는 마치 천사와도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아름답고 우아한 얼굴에 세련된 옷차림의 벳시와 사랑에 빠지고 마는 트래비스. 아, 물론 짝사랑이다.
질문) 짝사랑의 대상과 훗날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답이 YES라면 : 맨 밑으로 가시오.
답이 NO라면 : 다음 줄로 이어서 읽으시오.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 여자아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 아이는 중학생이었으니까. 나는 그 아이보다 두 살 위였을 때니까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자.
그 아이와 짝사랑에 빠지기 1년 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는 동네 오락실에서 수 만 시간을 보내곤 했던 한심한 중학생이었는데, 오락실에 몰려든 수많은 녀석 중에 이상한 녀석을 만나 인생이 꼬여버렸다. 우연찮게도 옆자리에 앉아 몇 판하다가 친해지는 녀석 있지않은가? 우린 오락실을 나와 출출한 배를 떡볶이로 달래며 친해져버렸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게 “전도”를 해버린 거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그 녀석을 따라 교회에 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예쁜 여자아이를 보게 될 줄이야. 그래, 그 예쁜 아이를 나는 짝사랑하게 된거다. 웃을 때 눈이 꼭 이효리 같았던 그 아이. 그럴 줄 알았어. 너무 뻔하다.
그리하여 나는 교회를 매주 착실하게 나가게 되었는데, 그건 물론 그 아이를 매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 지나가며 인사라도 나누게 되는 날엔 기다린 일주일이 보람있게 느껴졌으니! 당연히 다음 일요일까지는 학교 생활이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어이, 그거 알아요? |
뭐 말이에요? |
당신은... 웃을 때 이효리 같아요. |
어쩌라고? |
제길,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다. 내 인생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
트래비스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 채 바꿔줄 그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구원’ 과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욕망이 끓어넘치는 뉴욕의 밤은 때로 지옥보다도 지독했을테니까. 어둠 속에서 불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곤충처럼 트래비스는 맹목적으로 변해간다.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 어떤 순간에 이르면 많이 달라지곤 하는 모습을 현실에서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걸 ‘변질됐다’고 일컫기도 하지.
트래비스의 좌절된 욕망은 스스로를 공격무기로 단련하는 쪽으로 엉뚱하게 변질된다. 총 연습에 칼 연습,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습.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는 나도 빠져든다... 그러다 트래비스, 한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리스.
뉴욕의 어린 매춘부라니. 너무 심하잖아.
영화배우 지망생들이 한 번쯤은 거울을 보며 해봤을 그 장면. Are you talking to me? |
소매 안의 자동권총: 이 것도 훗날 여러 영화에서 인용되었다. |
바짓단 속 단도: 덤비면 큰 코 다친다. |
맹목적이라는 점에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너와 함께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거야’ 라는 식의 유치한 다짐 같은 걸 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난 종종 ‘그녀와 잘 되게 해주세요’ 등의 내용으로 기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그 아이가 알았다면 내게 뭐라고 했을까?
오빠, 착각하지 마요! |
강박이 심할 수록 그걸 깨닫는 순간, 충격도 셀 것이다. 그 충격은 사람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끈다. 다른 말로 하면 사고치는 거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던 우리 누나. 한 밤중에 담장을 넘어와 현관문을 두드리며 우리 누나의 이름을 부르던 한 남자가 있었다. 어찌나 무섭던지!
그 남자,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에도 꿈쩍하지 않고 계속 누나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때였다. 누나가 냉정하게 문 뒤에서 말했다. 착각하지 말고 돌아가. 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남자는 더 이상 누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 대신 온 동네가 뒤집어질 정도로 세게 대문을 걷어찼다. 계속해서. 보름달이 뜬 날도 아닌데, 울부짖는 개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제 정신인가? 좋아하는 사람 집이라고 한 밤중에 찾아와선 대문은 왜 걷어차나? 누나 입장에서 보면 오만 정이 다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울 누나, 냉정하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트래비스는 대문 따위 씹어 먹겠다는 기세로 화끈하게 공격성을 표출한다. 화풀이할 대상을 공격하지 못하자 그의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트래비스는 아이리스가 있는 매춘굴을 찾아가 그 곳을 초토화시켜버린다. 그게 엉뚱하게도 영웅적인 행위로 둔갑이 되어버린다는 결말.
영화 속이니까 가능한 거니까 착각하지 말자.
그녀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집에 오는 길에 설레는 가슴으로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펼쳤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편지지 안에 들어있던 벚꽃잎이 후르륵 날아가버렸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지 말자’ 는 내용의 편지에 벚꽃잎을 넣었다는 건 어떤 뜻일까?
지금 나는 그걸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한 가지 더 기억나는 것은 그 시절 나를 교회로 이끈 친구 녀석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여자아이에게 보기좋게 딱지 맞았다는 것이다. 이십 대였다면, 아니 조금만 덜 순진했더라면 둘이서라도 맥주 한 캔 했으련만 우리는 그런 일탈조차 하지 못하고 동네 비디오 가게로 갔다. 그 날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바로 택시 드라이버였다.
PS 1
트래비스 : 로버트 드 니로
아이리스 : 조디 포스터
벳시 : 시빌 셰퍼드
포주 : 하비 케이틀
감독/단역 : 마틴 스콜시스
PS 2
퀴즈의 답을 YES로 한 분들에게 드리는 특별한 선물 : 트래비스의 자동 권총 패러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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