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아래에 스포트라이트를, '오케피' 정상훈
SNL에서 엉터리 중국어로, 아니 중국어도 아닌 경상도 사투리로 능청맞게 중국 특파원을 연기해 인기를 끌고 있는 정상훈은 많이들 알다시피 뮤지컬 배우 출신이다. 방송 중에도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왔던 그가 이번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코미디 작가 미타니 코키의 뮤지컬 <오케피>에 출연한다. 레게 머리를 하고 색소폰 연주를 하는 정상훈을 만났다.
모두가 평범하지만 특별한
뮤지컬 <오케피>를 간단하게 소개해준다면?
쉽게 설명하면 소외된 계층들, 보이지 않은 사람들,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삶도 있고 희망도 있고, 꿈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오케피는 뮤지컬에서 무대 밑에 지휘자가 인사를 하는 그 공간인데 그 밑에 오케스트라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은 공연에서는 한 번도 노출되지 않죠.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무대 뒤에 스태프 분들, 조명이나 음향 하시는 분들도 노출은 안 되지만, 이 분들의 도움으로 뮤지컬이 완성되는 것이거든요. 이분들도 그들의 삶과 일상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코미디 작가, 미타니 코키의 작품인데, <오케피>의 코미디 특징을 설명해 준다면?
이분 작품을 꽤 좋아해요. 2000년대 초반에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가 개봉을 했고, 그 이후에 올린 아실 만한 작품으로 연극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영화 <매직 아워> 등이 있는데요. 이분의 코미디는 브로드웨이의 방식처럼 주, 조역이나, 진지한 인물이나 코믹한 인물이 나눠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주인공으로 만들어줘요. 조연이 없고 모두가 주인공이에요. 각 인물마다 페이소스도 보여주고, 여러 가지 일상이나 캐릭터를 만들어주는데 이상할 정도로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죠. 웃음 코드도 개인기 위주가 아니라, 캐릭터를 잘 만들어서 캐릭터로 웃음을 주기 때문에 잘 만든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에요.
작품 속에서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라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비올라예요.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잘 눈에 띄지 않은 악기죠. 바이올린인지 비올라인지 구별 못 하는 분이 많아요. 비올라 연주자들은 실제로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열등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존재감이 없는 악기라는 취급을 받는데, 작품 속에서 비올라 연주자를 그런 캐릭터로 만들어요. 다들 비올라라고 불러와서 오케스트라 멤버 중에 그 연주자의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이름을 알아내려고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2막까지 궁금해하다가 ‘Who Are You’라는 곡을 부르는 장면에서 지혜를 내서 알게 되거든요. 그 과정이 굉장히 재밌어요. 작품 속에는 스머프같이 그런 캐릭터들이 숨어 있어요.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보면 스머프 마을 같아요. 지휘자가 파파 스머프고.
색소폰 연주자로 출연하는데, 어떻게 연습했나?
연습 들어가자마자 색소폰을 샀어요. 배우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2008년도인가 <펌프 보이즈>라는 뮤지컬을 했는데, 그때 기타를 연주해야 했거든요. 두 달간 정말 자는 시간 외에 눕기 직전까지 연습했어요. 악기는 단기간에 섭렵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럼에도 색소폰을 산 이유는 주법이라든가 코드라든가, 연주하는 얼굴 표정이라든가 그런 것을 연주자분들과 흡사하게 보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예요. 실제 무대 뒤에서 연주하시는 연주자분과 개인 면담을 하고 연주하시는 법을 영상 찍어서 계속 보면서 연주할 때 표정 연구도 하고 했어요.
코믹한 연기를 많이 선보였는데, 코미디 연기에서 중요한 것이라면?
코미디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에서 가장 적당한 말을 찾아서 그 순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적당한 말을 과장법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요. 드라마 안에서 녹아나는 코미디가 재밌는 거 같아요.
감당할 수 없는 행복
무대나 TV에서 비친 모습은 재밌는데, 실제 성격도 그런가?
평소에도 즐거운 생각 많이 하고 재밌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긍정적인 편이거든요.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꽃보다 청춘>이 방영 중인데,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아이슬란드를 간 것도 좋았지만, 그게 어디가 됐든 누구랑 같이 가느냐가 좋았던 것 같아요. 어떤 분이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해 렌트카를 빌려 유럽을 일주했대요. 유명한 유적지나 성당도 보고 했는데, 몇 년 뒤에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었더니, 엄마, 아빠랑 캠핑장에서 설거지하던 게 제일 행복했다고 하더래요. 자연도 멋있고 감동이었지만 제 옆에 정석이와, 정우, 하늘이가 있으니까 감동이 있었던 것이죠. 그들과 소주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훨씬 기억에 남아요.
SNL 출연 이후 굉장히 인기가 많아졌다. 유명해지니까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다면?
배우분들은 스타가 되는 꿈들이 다 있을 거예요. 무대 위에서 갈고 닦으면서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저는 유명해져서 너무 좋고 행복해요. 때론 이게 감당할 수 있는 행복인가 싶을 정도로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삶을 살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 벌어지나 싶어요.
양꼬치 엔 칭따오에서 중국어를 하다가 사투리 하는 장면이 굉장히 재밌는데,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은 것인지?
2010년 <스팸어랏>이라는 뮤지컬을 했어요. 그때 아서왕이 프랑스 성에 맞닥뜨리게 된 거죠. 프랑스와 영국은 저희랑 일본이나 중국처럼 복잡한 관계에 있잖아요. 그런 관계를 풍자적으로 하기 위해 프랑스말로 하기보다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중국 사람으로 설정한 거죠. 그때 중국어와 사투리를 접목시켜서 했는데 관객 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SNL에 그런 코너가 생겨서 해본 것인데 그렇게 좋아해 주실 줄 몰랐어요. 관객분들을 앞에 두고 계속해보니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요. 엉터리 중국어를 웃음을 참지 못하는 지경까지 하다가 사실 저도 못해요 하는 식의 포기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간 것 같아요.
무대와 방송 활동을 병행하는데, 정상훈에게 무대는 어떤 곳인가?
무대는 저에게는 어떻게 보면 여행지 같은 곳이에요. 다시 한 번 내 모습을 재정비하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 그 힘을 바탕으로 방송이나 영화에서 훨씬 더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고 밀도 있는 작업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곳. 그래서 여행지 같은 곳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작년에는 코미디나 예능으로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 연도에는 연기를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즐겁고 재미있는 모습 많이 보셨으니까 이제는 연기자 정상훈을 보여드리려고요. 그러다 보면 지금처럼 예능이나 매체에 잘 노출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웅크림이니까. 스프링처럼요.
글 | 박병성(더뮤지컬 편집장)
사진 |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