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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SRT매거진

커버스토리 #전남 해남

숲·바다·너
좋아해남

남쪽으로, 남쪽으로 해남의 숲, 바다를 향하여.

좋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충만한 평화와 설렘이 가슴 가득 들어찬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나무의 몫이라면 정수리에 떨어지는 태양빛, 빗 물 아낌없이 받아 제 안에 흐르게 하는 것. 그래서 바람이 이리저리 저를 흔들어도 단단히 뿌리 내린 덕에 담대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흥사 가는 길에 장춘숲길로 불리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제 몫을 이리도 잘해낼 수 있을 까 싶은 소와 편백과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에 발을 들인다. 윤기 나는 머릿결을 자랑하듯 편백나무가 초록 잎을 떨구고, 빽빽한 나무숲 위 로는 여름 햇살 한 조각이 비집고 들어와 하얀 선을 그린다. 어느새 나는 웃고 있다. 가슴 빗장을 여는 간지러운 설렘이 찾아와 얼굴에 번지는 것을, 충만한 평화를 막을 길이 없다.

사계절 봄처럼 온화한 장춘숲길

하늘 높이 두륜산 봉우리는 구름처럼 걸려 있 다. 해남의 4대 명산으로 두륜산, 달마산, 금강 산, 흑석산을 손꼽으니 그중 하나다. 두륜산 아래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등재된 대흥사가 머물러 있다. 장춘숲길은 대흥사 들머리 구림리 매표소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4km의 숲길로 상사화부터 편백나무, 측백나무, 동백나무 등 800여 종의 상록 활엽수·침엽수 등이 분포한다. 따뜻한 남쪽 나라를 뽐내듯 울창한 난대림과 맑은 계곡이 어우 러진 숲길은 ‘언제나 봄 같다’라는 뜻의 ‘장춘’으로 불린다.

산림욕이라는 단어가 늘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그저 그 안에 나를 두면 되는 일이었다. 보송보송한 흙길에서 반듯한 목책 덱 구간으로 느릿한 걸음을 옮긴다. 돌무더기를 지나는 계곡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총총총 오솔길을 서성이는 작은 새의 발짓을 들여다본다.


“나 너무 좋아. 좋아. 해남이.”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벅차오르는 평화를, 장춘숲길을 걸어보지 못한 네게도 전하고 싶다. 사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서 날 사랑하냐고 물어보는 것과 충만한 사랑 속에서 굳이 입으 로 사랑을 확인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느낌은 볼 수 없지만 우리의 모든 것이 될 때가 있다. 잘 살아 있고, 사랑하고, 사랑 속에 있다는 느낌을 자주 느끼는 그는 건강한 사람이다. 누가 이리 저리 그를 흔들려 해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사람이다.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대흥사는 두륜산이 숨겨 놓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보물 같다. 지형적 조건 에 따라 너른 산간분지에 자리한 전각들은 서로 독립된 군을 이루며 북쪽, 남쪽으로 펼쳐져 있다. 하나인 듯 여럿인 듯 대흥사는 더욱 넓고 신 비롭게만 보인다. 대웅보전 가는 길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뿌리가 엉킨 연리근으로 오가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500 년 이상을 같은 자리에 머물며 조금씩 서로의 곁을 내주고, 합해졌을 두 나무의 모습은 그리던 이상향 같다.

누가 와서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생각이 불끈 치솟아오를 때 온갖 장애가 일어난다.

번뇌가 끝이 없지만 성내는 것은 그보다 더하다.

– 선가귀감

조선 중기 때 승려인 휴정의 저서 중에 <선가귀감>이 있다. 50여 권의 불교 경전과 어록에서 가장 요긴하고 절실한 부분을 뽑아 수행자들 이 귀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엮은 글로 불교 개론서다. 파란 하늘, 오색 연등, 대웅보전 앞에는 야자나무, 그 옆으로 하나의 글귀는 또한 <선가귀감>에서 가장 요긴하고 절실한 부분을 뽑아 냈을 터다. 성인의 가르침에 묵은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대흥사 장춘숲길은 매표소 뒤로 난 오솔길을 걷거나,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4km 오가는데 만 보는 써야 하고, 대흥사를 들어가는 데 입장료도 내야 하지만 발품도, 4000원도 아깝지 않다. 마음을 열고, 하나를 깨쳤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남쪽으로 가면 수국과 바다

해남은 호남 지방에서 가장 큰 1044㎢ 면적을 자랑한다. 수도 서울이 605㎢이니 1.7배 규모로 참 크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해남군민들은 20~30분 정도 떨어진 거리는 멀게 인식하지 않는다고. 대흥사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인 포레스트수목원도 그런 의미에서 가까운 명소 중 하나다. “수국은 우리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꽃이에요. 많은 사람과 이 아름다운 꽃을 함께 보고 싶었어요. 따뜻한 남쪽에서 자생을 잘하니 해남에 수국을 심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우리는 각자가 모르는 초능력이 있을지 모른다. 김건영 원장이 직접 가꾼 포레스트수목원만 해도 그렇다. 20만㎡(6만여 평)에 달하는 대지를 아름다운 꽃동산으로 가꾸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걸까? 김건영 원장이 아내와 함께 수목원을 조성한 지 8년 차, 여름빛을 그대로 닮은 수국 230여 종이 식재되어 전남을 대표하는 수국 정원으로 입소문이 났다. “올여름은 가물어 수국 개화가 좀 더뎠어요. 지금 보시는 수국들은 하우스에서 직접 키운 것 들이고, 이 수국들이 지면 노지에 자리한 수국 들이 앞다퉈 피어날 겁니다.”
원장님 애를 잔뜩 태운 수국들은 아기 얼굴보다도 크고 탐스럽다. 진한 파란색부터 하늘색, 분홍색이 곱기도 하다. 수국은 유전적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토양 성격에 따라 색이 변한다고. 알칼리성을 띠는 토양에서는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산성이 강한 곳에서는 반대가 된다. 수국만 보고 가면 서운할까. 너른 수목원 곳곳은 플로리스트의 작품처럼 빨간 개양귀비, 파스텔톤 수레국화, 푸른 소나무, 굴참 나무가 풍경에 멋을 더하고, 곳곳에 마음 사로 잡는 포토존이 걸음을 멈춰세운다.

스스로 꽃이 되고픈 우리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의 작품이다. 포레스트수목원과 더불어 해남 1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문가든도 또 다른 분위기를 자랑하니 해남 여행 시 참고하자. 남쪽으로, 남쪽으로 해남의 이름을 찾아가보자. 한반도의 끝이자 시작인 송지면 일대에는 땅끝송호해수욕장, 땅끝전망대,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등 해남의 지리적 정체성을 이름에 담은 명소들이 모여 있다. 지도에서 보면 남쪽 제일 끝자락에 갈두산이 있는데 이곳 정상부에 횃불 모양의 땅끝전망대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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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전망대 일대의 지형이 한 반도 모양 그대로라 이런 기막힌 자리가 또 없지 싶다. 전망대 앞에는 원형의 돌탑과 형태가 비슷 한 갈두산 봉수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반도 최남단에 속하는 해남은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로서 해남, 완도, 진도를 연결하는 주요 해로에 봉수대를 설치한 것이다.

전망대는 산책로를 따라 방문하거나, 노란색 모노레일을 타고 오갈 수 있다. “저게 낙지 아녀?” 가족과 함께 해남에 처음 여행 온 노모가 모노레일 밖의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을 바라보며 감탄을 한다. “문어예요. 엄청 크죠?” 전망대에 오기 전 먼저 그곳을 들른 기자가 아는 체를 했다. 전망대 인근(정말 가까움)에는 커다란 문어 조형물이 건물 옥상을 감싸고 있는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이 자리한다.

겉모습만큼 전시실 내 부도 인상적인데 임양수 관장이 40년에 걸쳐 수집한 해양생물 자원 5만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움직이는 고래 조형물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물 표본이라 더욱 놀랍다. 오는 8월 31일까지 2층 전시실에서는 북극해양쓰레기 사진전 <땅끝으로 오다!>도 관람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지극한 정성으로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듯이, 맑고 푸른 바다에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을 생각한다. 오래오래 이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해남의 숲과 바다를 볼 수 있기를.

:: 님아 여기도 놓치지 마오

이순신 장군의 신화가 살아 있는 울돌목, 우수영관광지


울돌목이란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의 명량해협을 가리킨다. 1597년 9월 16일 정유 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의 장소다. 이순신 장군의 기지로 우리 수군은 10분의 1이라는 군사적 열세에도 왜군의 배를 격파하여 크게 이겼다. 이를 기념하며 울돌목 일 대에는 우수영관광지가 조성되었다. 명량대첩 해전사 기념전시관, 명량해상케이블카, 스카이 워크 등을 돌아보며 머리와 가슴으로 우리 역사 를 경험한다. 특히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 까지 울돌목 스카이워크는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야간 레이저 쇼를 진행하니 꼭 들러보자.

화원반도 끝자락, 해남과 목포를 비추는 등대


해남군 서쪽 방향에 황산면, 문내면, 화원면으로 이뤄진 화원반도가 자리한다. 내륙과 인접한 황산 면, 우수영관광지가 자리한 문내면, 그 위 화원면 끝자락에 ‘해남 목포구등대’가 자리한다. 등대의 이름에서 그 역할도 읽어볼 수 있으니, 화원반도와 목포 달리도 사이의 협수로를 비춰 배들의 안전 한 운항을 돕는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해남 구 목포구등대’가 세워졌으니 오랜 세월 제 역할 을 다한 후, 2003년 꼭대기에 붉은 등롱이 인상적인 해남 목포구등대가 건립되었다. 서해바다를 가 로지르며 나아가는 선박, 우아한 자태의 등대, 일몰 무렵 떨어지는 태양빛이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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