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효서, 우리 삶에 문학이 필요한 순간
소설가 구효서는 마라토너로 비견되고는 한다. 이유는 꾸준함에 있다. 단편 ‘마디’로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한 이래 30년 넘게 매년 새로운 소설을 발표해왔기 때문이다. 장편 <아닌 계절> <나가사키 파파> <동주>, 중편 ‘풍경소리’ 등을 발표하는 동안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18년 산문집 <소년은 지나간다>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새 작품을 펴내지 않았다. 최근 발간된 단편집 <덕암엔 왜 간다는 걸까 그녀는>에 독자들의 눈이 더욱 쏠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는 1995년에 출간한 창작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에서 다섯 개의 단편을 새롭게 엮은 것이다. 혈기왕성하게 활동하던 30대 소설가의 작품을 강산이두 번 하고도 반이 바뀐 뒤 만나는 감흥은 무엇보다 창작자 자신에게 크다. 1995년 펴낸 작품이 1995년생 독자에게 읽히게 되는 묘한 인연을 앞둔 작가는 문학에 대한 여전한 열정을 전해왔다.
많은 단편집 중에서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그중에서도 다섯 편의 작품을 골라 <덕암엔 왜 간다는 걸까 그녀는>을 펴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수록작을 결정했는지가 궁금합니다.
하하, 사실은 편집자의 선택이었습니다. 처음에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섯 편을 연이어 읽다 보니왜 이 다섯 편인지, 또 이 책을 왜 내려고 했는지 알겠더군요. 작품들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더라고요. 주인공이 어떤 인물을 우연히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가까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구조가 공통적으로 반복되는데, 결국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게 궁극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더군요. 혹시 이해라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오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들 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설의 화자가 30대 중후반의 남성입니다. 당시에 작품을 썼던 소설가 구효서와 비슷한 나이이기도 하죠.
단편을 썼던 1990년대 초반은 사회적으로 변화가 컸을 때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화두가 1980년대엔 민족, 노동, 민중 등이었다면 88서울올림픽을 지나고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념의 시대는 가고 개인의 시대가온 거죠. 젊은이들은 취직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고요. 이에 따라서 글의 화두도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상처와 사랑 같은 주제로 옮겨가게 되었죠. 당시 작가들 역시 시대의 고민에서 스스로의 생존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전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역시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단편 주인공들의 직업 중에서 작가가 많은 건 이런 이유일 겁니다. ‘편지 읽는 여자’에는 막막한 마음을 달래려 관악산에 오르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것 또한 저의 모습을 투영한 것입니다.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작품을 썼던 25년 전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당시는 결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두아이도 어렸습니다. 그런데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로 선언한 시점이기도 했죠. 아무래도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압박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 남편, 작가 아빠를 둔 가족들도 힘들었을 겁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눈물겨운 순간이 있어요. 집에 쌀이 똑 떨어졌는데, 아내가 저에게는 말을 안 하고 친정에 가서 쌀을 얻어온 겁니다. 그렇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을 함께 견뎌내는 것 자체가 비굴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긍심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말로는 표현하지 않아도 팀워크 같은 것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낭만이 있던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책을 읽을 독자들은 작품이 쓰였을 당시와는 전혀 다른 사회를 살고 있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 것이라고 기대하시는지요.
저 역시 아주 오랜만에 읽는 작품이다 보니 작가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더군요. 재미있는 것이 쓰여진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니까 앞서 말한 시대적인 상황은 소거되고 실존만 남더라고요. 사회라는 커다란 배경이 아니라 순수하게 존재와 존재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면서의 현상이 오롯이 보였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소설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간결하고 미니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군더더기를 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장식이 되지 않아서 오는 심플함이랄까요. 요즘 독자들이 제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심플함 자체를 즐겨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간이 센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 보면 건강한 음식을 먹을 때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적응되면 그간 얼마나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 있나를 알게 되지 않나요.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음미해보았으면 합니다.
당시와 요즘 독자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요즘은 1980~1990년대와는 ‘현실’이라는 개념이 달라진 것같습니다. 예전에는 진짜 현실에서 리얼리즘을 추구했다면, 요즘에는 과학 기술의 힘 덕분에 가상현실도 현실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를 통해서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과 희망을 대리만족하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확장현실, 가상현실이 더멋지고, 재미있고 근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명분으로 사실을 감출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는 것이죠. 판타지를 이용해 진실을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가리려는 기만, 호도가 일어난다는 걸 경계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그래서 저는 최근 작업들에서 우리 현실과 삶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려져서는안 되는 측면은 없나, 호도할 수 있는 위험은 없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매년 작품을 발표하시던 작가님이 한동안 출간 소식이 없어 궁금했습니다. 그사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나요.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열심히 썼어요. 그간 장편소설을 세편 완성했습니다. 세 권을 한 번에 발표한 다음, 다시 1년에 한편씩 쓰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다소 선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다르게 성격을 확 바꾸었거든요. 독자분들께 새로운 느낌을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죠. 잘읽어보시고, 마음에 들면 앞으로도 한 권씩 내겠습니다, 하는 의미랄까요.
벌써 궁금해집니다. 이전 작품과는 어떤 점이 가장 다르다고 할수 있을까요.
‘쉽다’. 제 작품 중에서는 만만치 않은 소설이 꽤 있었습니다. <비밀의 문> 같은 작품처럼 분량도 많고, 주제도 무겁고. 시대적으로는 중세, 장소에서는 유럽과 한국, 평양을 오가는 작품도 있었죠. 그런데 새 작품은 일단 가볍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읽으면 왠지 안심이 된다고 할까요. 물론 갈등도 등장하지만, 거창한 깨달음이나 해결이 필요한 성격은 아닙니다. 가벼운 감기가 찾아왔을 때 아스피린 한 알먹고 땀 흘리면서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있지 않나요. 그 정도의 갈등일 것 같습니다.
30년 동안 정말 거의 매년 작품을 발표하셨는데 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그 원동력은 ‘변덕’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제가 워낙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오래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래서 새 소설을쓸 때도 이 이야기가 많이 팔리겠다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매번 제 색깔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열망이 어느 정도냐면, 어떤 사이트를 가입할때 비밀번호를 ‘다른 장르’라고 지었어요. 계속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겠다는 거죠. 여기서의 장르는 기존에 없던 장르라는 뜻이 아니고요, 내가 해오던 일과 다른 이야기라는 거예요.
현역 작가이기도 하지만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선배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후배 작가들이 소설가 구효서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습니까.
제 두 아이가 30대 초중반입니다. 지금 한창 활동하는 작가들의 나이가 딱 이즈음이니까 저와 꽤 나이 차이가 있는 셈이죠. 세대 차이가 날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시상식에서 그 친구들을 만나면 기분이 묘합니다. 작가들에게는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지거든요. 묘한 ‘궁기’라고 해야 할까요. 반짝거리는 건아닌데 가만있어도 멋이 있어요. 아마 저 역시 작가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샘이 날 때도 있고요. 나이가 들어선지 아무래도 기력이나 감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보니, 젊은 친구들에게 배울 것이 없나 흘깃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극을 받는다는 건 아직 열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웃음)?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소설은 ‘기호(記號)’입니다. 이를테면 아버지라는 글자는 기호일 뿐 실제 아버지와는 닿을수 없는 사이죠. 그러니까 문학은 아무리 자세히 묘사해도 결코 현실에 가닿지 못하는 겁니다. 영화, 드라마 가장 다른 부분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과의 간극의 한계를 가장 통렬하게 느끼는 거죠. 소설가들은 거기에서 절망하지만요. 그러나 그 간극에서 사유가 탄생합니다. 어떤 소설을 읽다가 빠져들어서 눈물을 흘리면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왜 울었지, 나를 울게 한 게 뭐지. 이처럼 자신에 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독자들도 이런 자세로 소설을 읽어주기를 바라고요.
<덕암엔 왜 간다는 걸까 그녀는> 구효서, 6000원
25년 전에 출간된 구효서의 창작집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에서 다섯 개의 단편을 꼽아 엮어 낸 책. 당시 신춘문예 당선자였던 작가가 이제는 신춘문예 심사자가 되어, 1995년에 펴낸 작품을 1995년생 독자에게 선보인다. 우연히 마주친 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