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서 찍은 가족 사진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오지마을을 여행하며 5000여 가족을 촬영했다. 정확한 이유도 목적도 없이 본능에 이끌려 찍게된 가족사진. 나는 왜 이토록 가족사진에 집착했던걸까? 겨우 한 번의 촬영, 한 장의 사진일 뿐인데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에티오피아에서 촬영한 가족사진을 보며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그건 바로 내게 가족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상 한 장의 사진도 가질수 없던 우리 가족. 내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사진이라곤 초등학교 4학년 소풍 때 엄마와 막내누나랑 찍은 흑백사진 한장이 전부다. 흔하디 흔한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도 없다. 그래서였으리라. 그토록 가족사진에 집착했던 이유가.
추억이 되는 작은 선물
아프리카에서는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시골로 갈수록 그런 기회는 더 드물어진다. 사진관은 고사하고 일반사진을 찍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연이 담긴 가족사진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순수한 아이들, 낯섦은 잠시뿐, 그들이 웃는다.
덩달아 어머니도 웃는다. 그들의 빛나는 미소와 웃음소리는 파인더를 통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카메라를 든 나도 웃는다.
하루는 한 아이가 눈물이 날 만큼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구경하던 모든 사람이 웃었다. 잠시지만 우린 그렇게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했다. 그래, 사진이 별건가?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때 더 큰 보람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 따뜻했던 그날 오후는 한 장의 사진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 훗날 이들은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이순간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사진은 이렇게 지난 시간을 되돌려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한다. 내가 가장 잘할 수있는 이 작은 일을 통해 나는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곧 이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다.
커피에 담은 감사의 마음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감사 표시는 무척 특별하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면 너나없이 집으로 초대하는데, 이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분나 마프라트(Bunna Maffrate)라고 불리는 커피 세리머니다. 전통의상을 입은 에티오피아의 여인이 생두를 숯불 화로에 올려 즉석에서 볶고 절구로 빻은 후 자바라는 전통 주전자에 커피를 끓여서 팝콘과 함께 손님에게 대접한다. 커피 세리머니는 세 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으로 첫 번째 잔은 ‘맛’, 두 번째 잔은 ‘행운’, 세 번째 잔은 ‘축복’을 의미한다.
향기 가득한 신선한 커피를 한 잔 마 시며 이곳이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들의 역사와 정성이 담긴 커피는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넘어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덕분에 커피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된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보고 즐긴 일반적인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이들과 같은 마음을 나눴기 때문이다. 누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라 답하고 싶다.
글·사진 신미식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말라!”고 말하는 사진작가. 서른에 처음 장만한 카메 라를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사진가로 활동했고, 2007년부터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 카르’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머문자리> <떠나지 않으면 만남도 없다>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마라>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때> <시간이 흐른다 마음이 흐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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