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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이 아니었다, 삼성이 창립 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을 생각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82년 전 삼성이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은 전자기기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삼성을 처음 만들었던 호암 이병철 초대 회장은 무엇으로 삼성을 만들었을지,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200만 평의 대지주 ‘호암’

삼성은 1938년 대구 중구 인교동에서 처음 시작됩니다. 삼성의 초대 회장이었던 호암 이병철은 만 28세의 나이로 삼성상회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사실 이보다 앞서 2년 전인 1936년에는 부유했던 아버지에게 받은 300석지기의 농토를 밑천으로 마산에서 정미소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죠. 이후 정미업이 꽤나 성공적이어서 은행 대출까지 받아 땅에 투자했고 661만 1,000여㎡(약 200만 평)에 이르는 농지를 가진 대지주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터지고 대출받은 은행 빚을 전부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호암은 큰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이후 호암은 사업이란 여러 상황 변화에 대해 꼼꼼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죠. 첫 사업 실패 이후 호암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삼성이었습니다. 최초 삼성의 이름은 삼성상회였는데요. 호암은 삼성이란 이름에 대해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의 삼(三)과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의 성(星)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의 이름을 알린 ‘국수’

삼성상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의 시작은 상회, 즉 무역업이었습니다. 호암이 대구를 기점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유도 원활한 무역을 위해서였습니다. 영남 지방의 한 가운데 있는 대구는 각종 농수산물과 화물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경부철도 등의 인프라가 좋았기 때문에 무역업을 하기에 제격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삼성상회는 대구 인근 지역에서 수확한 청과물이나 포항 등에서 들여온 건어물을 중국과 만주에 수출하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삼성상회를 성장시킨 것은 ‘국수’였습니다. 삼성상회는 당시에 제분기와 제면기를 설치해 국수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삼성상회에서 만드는 ‘별표 국수’는 단연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도소매상들이 삼성상회의 별표 국수를 사기 위해 끌고 온 짐과 소달구지 등으로 삼성상회 앞은 항상 북적일 정도였죠.

없으면 만드는 삼성

이때부터 호암은 ‘이왕 만들 것이라면 제대로 만들자’라는 것을 강조했고, 이런 정신은 지금의 삼성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국수 공장의 성공 덕분에 삼성상회는 설립 1년 만에 조선양조까지 인수해 양조업까지 시작합니다. 이후 줄곧 삼성이 그러했듯 호암은 하나의 사업이 성공적인 수준에 다다르면 바로 새로운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후 1953년에는 부산에서 ‘제일 제당 공업’이라는 이름의 제분, 조미료 제조업을 시작하는데요. 제일 제당은 창립 첫해에 국산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제일 제당은 현재까지 이어져 CJ가 되기도 했죠. 제일 제당을 설립한 지 2년도 안 돼 호암은 1954년에 ‘제일모직’을 설립하게 됩니다. 국내에 유통되는 모직의 80%가 수입인 탓에 너무 비쌌던 양복 값을 보고 모직 공장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것이죠.

포기 모르는 삼성, 끝내 최고의 기업으로

젊어서부터 정미소 및 무역업 등을 하며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병철 회장은 농업문제 해결을 위한 비료 제조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이 발생하고 사업 전체를 국가에 헌납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삼성은 여기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이후 1968년 호암은 전자산업에 뛰어들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전자산업에 대한 기반이 부족했지만 1950년 전자산업을 시작한 일본이 10년 만에 서구와 겨루는 모습을 본 이병철은 전자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러 반대를 물리친 이병철은 결국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해 9년 만인 1978년, 흑백 TV 200만 대를 생산합니다. 이는 연간 생산으로는 세계 최고 기록이기도 했죠.

또, 1982년 미국 방문 이후 실리콘밸리의 젊은 사람들에게 매료된 호암은 반도체 산업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반도체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더구나 당시 호암의 나이는 73세였기 때문에 더욱 막막했죠. 하지만 호암은 포기를 모르는 정신으로 반도체에 계속 투자했고, 결국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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