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딛고 활기 되찾은 소래포구 기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그리웠다, 펄떡이는 삶의 풍경/낭만과 추억 어린 소래 포구/어시장 대형 화재 딛고 3년9개월만에 현대식 건물로 재개장/상인과 손님들 싱싱한 해산물 흥정하는 소리로 활기/갯벌·염전에 조성된 소래습지생태공원 빨간 풍차 3개 SNS 인증샷 인기
소래포구 |
소래포구 꽃게 조형물 |
“아따 으디서 왔소? 나이 좀 자신 양반이 요것을 모르요. 우럭보다 맛있는 삼식이랑께. 몇 마리 없응께, 떨이로 싸게 줄라니까 언능 사 가시요잉.” 생긴 게 아주 못생겨서 머뭇거리며 사진만 찍자 아주머니는 걸쭉한 남도 사투리로 흥정을 시작한다. “사진만 찍으면 안 되제. 요것이 모델 값이 허벌나게 비싸부러.”
강원도에서는 삼숙이, 전라도에서는 삼식이라고 부르는 삼세기는 정말 못생겨서 예전에는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그냥 버렸다. 오죽했으면 바보 같고 못생겼다고 놀릴 때 “삼식이 같다”는 말을 쓸까.
소래포구 |
국산 쭈구미를 소개하는 상인 |
어찌어찌하다 남도를 떠나 인천에 자리 잡았다는 아주머니는 좌판에 다양한 생선을 가득 펼치고 손님을 맞는다. 산란기인 요즘이 삼식이가 가장 맛있는 제철이고 살이 연해 매운탕으로 끓여 먹으면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우럭보다 끝내준다며 유혹한다. 머뭇거리다 모델료도 드릴 겸 두 마리를 샀다. 3년 전 큰 불로 생계의 터전을 한꺼번에 잃어 버렸던 소래포구 어시장이 새해를 맞아 다시 희망찬 활기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소래포구 어시장 재개장 |
소래포구 어시장 |
#다시 활기 찾은 소래포구의 2021년 겨울
‘경축 소래포구 어시장 개장’. 깔끔한 외관의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한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어시장 입구에 재개장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만국기가 휘날린다. 2017년 3월 18일 잔혹한 화마가 이곳을 덮쳤다. 좌판 332곳 중 244곳과 상점 20곳이 잿더미로 변했고 1평 남짓한 좌판을 차리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던 실향민 등 상인들은 망연자실했다. 인천 남동구는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 상인들을 위해 현대화된 어시장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성탄절을 앞둔 지난달 22일 3년9개월 만에 다시 그들의 보금자리가 문을 열었다. 연면적 4500㎡ 규모의 지하 1층·지상 2층 건물이다.
소래포구 어시장 |
소래포구 어시장 |
어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새끼줄에 묶인 코다리와 양미리가 주렁주렁 달렸고 마스크를 쓴 상인과 손님들의 흥정하는 소리로 활기가 넘친다. 건물 밖은 더욱 소란스럽다. 영하의 추운 날씨지만 끝없이 펼쳐진 좌판에는 겨울에만 잡히는 잔새우 ‘동백하(冬白蝦)’를 비롯해 곰치, 주꾸미, 대하, 꽃게, 삼식이, 우럭, 간재미, 박대, 장대 등 온갖 싱싱한 생선이 보기 좋게 차려졌다. 손님들은 좌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거닐며 구경거리 만난 듯 신기한 눈으로 생선들을 따라간다.
소래포구 어시장 |
소래포구 어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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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유일한 재래어항인 소래포구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은 새우와 꽃게. 드나드는 어선은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도 김장철이면 생새우와 젓갈을 구하려는 손님들로 늘 북적인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가면 싱싱한 생선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소래포구에는 조업을 마친 어선들이 물 빠진 갯벌 위에 비스듬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작은 물길을 따라 고깃배들이 한가로이 오간다. 소래포구 물길 양옆은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예전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갈매기 나는 포구의 낭만은 여전하다.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왼쪽) |
#낭만과 사랑 싣고 달리던 협궤열차의 추억
북적거리는 어시장을 뒤로하고 나서면 1970∼1980년대 사랑과 낭만들 싣고 오가던 수인선 협궤열차의 추억과 마주한다. 이제 기차는 멈췄고 물 건너 경기 시흥시 월곶동을 연결하는 인도교로 바뀌었지만 많은 이들이 소래철교를 건너며 추억을 따라간다. 소래철교 중간쯤에 서면 왼쪽으로 소래포구 어시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인천항까지 이어지며 바다로 나가는 물길이 아득하다.
소래포구 |
‘꼬마열차’로 불리던 수인선 협궤열차를 기억하는가. 레일 간 간격이 표준열차의 절반(762㎜)밖에 되지 않고 열차도 길이 14.6m, 높이 3.2m, 폭 2.3m로 아주 앙증맞았다. 시속 60㎞로 수원역∼남인천역 54㎞ 구간을 달리던 협궤열차는 덜컹거릴 때는 맞은편 사람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가까웠고 크기가 작다 보니 힘이 달려 안산 원곡고개 등지에선 손님이 내려서 걷거나 열차를 밀어야 했다. 덕분에 연인들에게는 추억의 시간을 남기는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협궤열차를 타고 소래역에서 내려 싱싱한 회 한 접시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낭만을 노래하던 풍경은 잊히지 않는다.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 |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 |
수인선은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8월 6일 운행을 시작했다. 아픈 역사를 지녔다. 일제가 경기만 염전지대에서 생산된 소금과 쌀을 인천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한 철도로 수탈의 상징이다. 해방 후 소래포구에 모여든 실향민들은 무동력선 한두 척으로 새우를 잡아 젓갈을 담갔다. 아낙네들은 새벽부터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서울, 인천, 수원 등으로 무거운 새우젓을 이고 나가 생계를 꾸렸다. 이에 협궤열차 안은 늘 갯내가 진동했다.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통학 수단이 됐고 오랫동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를 끌다 1995년 말 만성 적자로 운행이 중단됐다.
소래역사관 |
소래역사관 협궤열차 |
수인선의 유일한 흔적이던 소래철교까지 철거될 뻔했지만 소래포구를 찾던 이들의 추억과 낭만을 위해 겨우 살아남았고 2011년 10월 인도교로 다시 길을 내줬다. 길이가 126m로 짧고 침목대 위로 강화유리판이 깔려 예전만은 못하지만 거뭇거뭇하게 탄 나무 철로가 시간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소래포구역사관 앞에는 1927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협궤용 기관차가 세월을 이고 서 있다. 대관령휴게소에 전시되던 기관차는 2001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역사관에는 소래포구와 수인선, 소래염전과 갯벌의 옛 모습이 담겨 있다. 소래역 대합실에는 백발의 할머니가 지금도 열차를 기다리고 있고 나무판자에는 열차시간표가 적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소래포구 산책로 |
소래포구 새우타워 전망대 |
#겨울바람 따라 바람개비 돌고 풍차도 돌아가네
소래포구 바람개비 산책로를 따라 나선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파랑, 노랑, 빨강 바람개비가 힘차게 돌아간다. 갯벌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는 충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어 여유롭다. 저 멀리 거대한 새우 한 마리가 우뚝 선 모습이 이채롭다. 소래포구를 한눈에 조망하는 새우타워 전망대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연인들을 위한 ‘사랑의 새우타워’ 철망에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자물쇠가 걸리기 시작했다. 아직 몇 개 안 되는 걸 보니 덜 알려졌나 보다.
소래습지생태공원 갯골 |
소래습지생태공원 염전 |
차를 끌고 10분 거리의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향한다. 요즘 소래포구보다 인기가 높은 곳인데 이국적인 빨간 풍차 3개 덕분이다. 주차장과 공원을 이어주는 소염교에 서자 갯골은 바닷물이 들어와 작은 실개천을 이뤘다. 소래갯벌의 나이는 무려 8000년으로 이제는 갯벌의 역할을 잃고 땅으로 변하는 중이다. 소래포구 주변이 개발로 매립되면서 수로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갯골까지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이 드나들지만 한 달에 두세 차례 만조수위가 9m 이상일 때만 갯벌 위까지 바닷물에 잠긴다.
소금기를 머금은 소래습지생태공원 산책로 |
소염교는 소래염전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뜻. 공원은 과거 우리나라 최대 천일염 생산지인 소래염전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소금 생산이 시작됐고 소래역까지 소금을 운반하기 위한 열차 레일이 다리 위에 놓였었다. 염전은 채산성이 떨어지며 1996년 문을 닫았고 폐허로 방치되다 2009년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지금도 염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소염교를 건너 왼쪽 산책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작은 염전과 소금창고를 만난다.
소래습지생태공원 풍차 |
염전을 지나면 하얀 소금기를 머금은 갯벌에 갈대와 억새 군락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겨울에도 쓸쓸하지 않다. 갯벌이지만 흙은 아주 단단해 하얀 소금 흙을 밟으며 걷는 재미가 있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소래포구 여행의 낭만을 더하는 빨간 풍차 3개가 등장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풍차의 커다란 날개가 “윙윙” 거리며 겨울바람을 따라 끊임없이 돌아간다. 아주 평온하고 목가적인 풍경은 네덜란드 마을이라 속여도 다들 믿겠다. 운이 좋다면 조류관찰데크에서 저어새와 민물가마우지 등 겨울철새도 만난다.
인천=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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