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치료와 불교 교리… 오묘하게 맞닿아 있죠”
독실한 불자인 전현수 정신과 의사
“괴로움 찾아오는 이유·없애는 방법 등
불교 교리 전반에 완벽하게 들어 있어”
최근 초기 불교 자세히 설명한 책 출간
붓다 가르침·수행 등 불교 원형 담아
번뇌·욕망 털어내는 5단계 지침도 소개
“일반인도 따라하면 감정 조절할 수 있어”
30년 동안 경전을 읽고 수행해온 정신과 의사 전현수 박사는 “불교는 보편적 진리다. 부처님은 성취하셨고 제자들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이를 검증해 나갔다”며 우리도 수행을 하면 부처님과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
“정신과 의사가 웬 불교냐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불교 공부가 저한테는 ‘다른 길’이 아닙니다. 불교 그 자체가 심리학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 마음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 마음이 어떨 때 우리에게 괴로움이 온다는 것, 마음을 어떻게 해서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전현수 박사는 웬만한 승려 이상으로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고 있는 재가불자이다. 불교TV에서 수년째 불교를 강의하고 ‘불교정신치료 강의’, ‘붓다에게 배운 마음치료 이야기’, ‘부처님의 감정수업’ ‘붓다의 심리학’ 등을 펴내 사실상 포교도 하고 있다. 2018년엔 ‘불교정신치료 강의’로 불교진흥원에서 수여하는 원효학술대상도 받았다.
불교는 크게 티베트불교·선불교·정토불교·테라와다(남방)불교 등 네 분파로 나뉘어 있다. 서양에 주로 소개된 티베트불교는 자비와 이타행을 특별히 강조하고, 우리나라에 발달된 선불교는 치열한 자기 응시와 직관을 중시하고, 대만과 일본에 정착한 정토불교는 염불 수행법을 위주로 한다. 이들 세 분파는 중생 구제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서 대승불교로, 개인 해탈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테라와다는 소승불교로 불린다.
테라와다는 초기 붓다와 제자들의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테라는 ‘상좌(上座)’, 와다는 ‘가르침’이란 뜻이다. 부처님은 해탈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의 집착을 없애고 번뇌를 소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수행 방법은 부처님 당시의 수행법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불교’라고도 한다. 테라와다불교는 반복되는 숫자와 그물망처럼 복잡한 이론 때문에 난해하다는 단점이 있다.
전현수 박사가 스리랑카·태국·미얀마 등 동남아에 널리 퍼져 있는 테라와다불교를 직접 체험하고 이해한 뒤 쉽게 풀어 설명한 ‘초기불교 32강’(불광출판사)을 펴냈다. 1장 ‘부처님이 어떤 분이고 불교란 무엇인지’, 2장 ‘부처님이 들려주는 수행과 실천’, 3장 ‘범부와 성자의 길’, 4장 ‘부처님과 제자들’로 되어 있다.
전 박사가 주안점을 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번뇌·욕망·죽음 같은 우리 앞에 벌어지는 고통에 대한 것이다. 체험을 강조하는 전 박사는 그 체험이 일상으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출가 수행자처럼 모두에게 무소유와 무욕을 가지라고 강권하지는 않는다. 부처님은 ‘욕망을 꼭 채우고 싶은 사람은 올바른 방법으로 채워라’고 이야기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그것이 감각적이거나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책한 사실도 들려준다.
전공의 2년차 때 불교를 만나 30년째 공부하고 있다는 전 박사는 두 번씩이나 병원 문을 닫고 미얀마·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직접 수행을 해 환자들이 호소하는 번뇌·욕망·죽음·고통으로부터의 해탈 방법을 찾아냈다.
“번뇌는 먼저 번뇌를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항상 깨어서 번뇌가 자리 잡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번뇌가 처음 들어올 땐 한 놈이 싹 들어옵니다. 괜찮으면 또 친구를 불러옵니다. 이래서 나중에 확 생깁니다. 한 놈은 다스리기가 쉽습니다. 번뇌가 처음에 생겼을 내 머릿속에 불이 붙었다 내지는 적이 침투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선업과 악업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이 가득 든 대야에 파란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금세 파란색 물이 듭니다. 잉크만 따로 빼낼 수는 없습니다. 방법은 맑은 물을 계속 붓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대야는 다시 맑은 물이 됩니다. 피치 못해 악업을 지었다면 참회하고 계속 선업을 쌓아나가면 됩니다.”
전 박사는 불교가 보편적인 경험, 보편적인 진리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두 과학자가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실험으로 똑같은 결과를 반복해서 얻는다면 그건 ‘진리’이고 ‘법칙’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수행 체험을 제자들이 하도록 했고, 제자들 역시 부처님과 똑같은 수행을 통해 똑같은 경지를 체험했다는 것. 이처럼 제자들에 의해 부처님의 체험이 끊임없이 검증되었고, 또 2600년 동안 수많은 수행자가 똑같은 방법을 통해 비슷한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전 박사가 이해한 불교는 또한 다른 종교처럼 무조건적인 믿음을 전제로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나도 한 번 해봐야지. 나도 체험해보자” 하는 정도의 믿음이면 가능하다고. 따라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정말 누구나 가능한 보편적 진리임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과학이고, 실천 가능한 생활철학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전 박사는 일상에서 범부가 번뇌와 욕구를 가라앉히는 5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단계는 대상을 옮기는 것이다. 욕심이나 화가 자꾸 자신에게 일어나면 그 대상을 옮겨보라. 그래도 안 되면 2단계는 그것이 나한테 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라. 이를테면 음란한 생각이 들면, ‘아, 내가 헛물켜고 있구나’ 하고 자각하라. 3단계는 아예 생각을 안 하는 것. 4단계는 떠오르는 힘을 없애는 것, 즉 마음에서 놓는 것이다. 최후의 수단인 5단계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보다 더 강한 힘으로, 즉 죽기 살기로 제압하는 것이다. 경전은 ‘수행자’들을 위해 설했지만, 전 박사는 일반인들도 5단계를 외우고 조금씩 실천해 나면서 ‘번뇌’와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한 번 해볼 것을 권한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