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핑계로 '경제보복' 꺼냈던 日에 '지소미아' 종료 카드 꺼낸 韓
이슈라인
靑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판단”
한·일관계 최악… 한·미·일 공조 흔들
당초 연장서 반나절 만에 중단 선회
‘日 경제보복’ 속 2년9개월 만에 폐기
한국당선 “조국정국 물타기” 비판
수출규제 품목 늘려 추가 보복 예상
청와대는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24일까지 일본에 지소미아 종료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어서 체결 때부터 찬반 논란이 일었던 지소미아는 일본과의 경제전쟁 속에 2년9개월 만에 폐기된다.
전략물자 수출우대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일본 정부의 조치도 예정대로 28일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갈등이 무역·경제를 넘어 안보로까지 확대되면서 한·일 관계가 전면전을 불사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나아가 북한 핵·미사일 등 도발 위협에 대한 한·미·일 공조가 흔들리면서 한·미동맹,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안감도 증폭될 것으로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정부는 당초 이날 오전까지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오후 들어 중단 쪽으로 방침을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배경과 관련해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 간 신뢰 훼손으로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유를 들어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NSC 상임위원들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수렴한 뒤 곧바로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상 NSC 전체회의가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NSC 상임위원들의 종료 결정을 놓고 1시간 동안 토론을 더 진행한 뒤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엔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날 지소미아 자동연장 쪽으로 정리되던 정부 기류가 반나절 만에 뒤바뀌었다”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2일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 조모씨를 의학논문 제1저자로 등재한 A 교수 연구윤리위원회에 강내원 위원장이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자유한국당은 “이성을 잃은 결정”, “조국 정국 물타기를 위한 극약 처방”이라고 정부를 강력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역사갈등이 경제에 이어 안보갈등으로까지 이어져 매우 우려스럽다”고 개탄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인 정진석 의원은 “조국 물타기를 하는 것”이라며 “안보 문제를 갖고 정치적인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이례적으로 심야 시간대인 오후 9시30분 외무성으로 불러 협정 종료 방침에 대해 항의했다. 고노 외무상은 남 대사 초치 후 기자들과 만나 “협정 종료는 지역의 안전보장환경을 완전히 오판한 대응”이라며 “서로 관련이 없는 (일본의) 수출관리제도 시정과 협정 종료 결정을 연결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뒤 호텔로 향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 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연합 |
美에 사전 설명했다지만 … 韓·美 관계에 악영향 불가피
정부의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일본을 겨냥한 우리 정부의 주권적 결정이지만, 외교적 부담은 그 이상으로 번질 것으로 관측된다. 지소미아가 그 태생부터 미국의 의지가 개입된 협정이고, 이번 한·일 갈등 국면에서도 미국이 지소미아 연장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미 관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미·일 3국 군사협력 영향 불가피
미국은 지난달 초 지소미아 종결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직·간접적으로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계속 전달해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 최근 한국을 찾은 미 고위 당국자들도 지소미아가 한·미·일 안보 협력에 상당히 기여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016년 11월 한·일 간 지소미아가 체결된데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전까진 한·일 간 미국을 거쳐야 북핵·미사일 정보가 공유됐지만, 지소미아가 체결되면서 한·일 간 직접 공유가 가능해졌고 전체적으로 비용이 절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은 지소미아를 통한 한·미·일 안보 협력으로 이 지역 안보 유지를 위한 책임과 비용을 덜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가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
지난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입장하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주위로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거부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 자료사진 |
한·미·일 안보협력에서 지소미아가 차지하는 상징성도 작지 않다. 한 외교소식통은 “한·미·일 안보협력이 무너지면 북·중·러는 바로 연대를 강화하고 그 틈을 파고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일 갈등 국면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진입을 일삼은 것도 그 방증이라는 것이다. 한·미·일 3국이 함께할 수 있는 군사훈련도 매우 제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에도 한국과 일본은 해상에서 인도주의적 수색·구조훈련(SAREX) 등 제한된 훈련을 해왔다. 미국은 SAREX 이외 3국이 함께하는 실전훈련을 한국 측에 요구해왔지만, 군은 난색을 표명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앞으로 미·일 동맹을 강조하면서 미측과 연합훈련 횟수와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관계 영향 줄까
이번 결정으로 우리로서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동맹 유지 부담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를 잃는 대신 한국에 다른 형태로 동맹 유지 기여를 하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함께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호위 참여 요구는 그 중 하나다. 한·미·일 공조 대열을 흐트러뜨린다는 점에서 대북 협상을 앞두고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일(현지시간) 일본 고텐바 서부 후지산 인근에 위치한 히가시후지 연습장에서 육상자위대의 ‘타입 90’ 탱크가 연례훈련을 하고 있다. 고텐바=AFP연합뉴스 |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결정 발표 직후 “미국은 이번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며 “(결정 뒤) 미측과 소통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 발표문과 동시에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공유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것은 결국 한·일 간 신뢰 문제 때문에 촉발된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이라며 “한·미 동맹과는 별개의 사안이고 한·미동맹은 끊임없이 공조를 강화하면서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전까지만 해도 정부 내부에 협정 연장 관측이 더 많았던 점에 비춰 이날 설명은 ‘통보’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정부 각 외교·안보 부처도 그간 협정 종료가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전후해 기류가 바뀐 것으로 감지된다.
미국 국방부는 한·일 양국이 조기에 이견 해소를 위해 협력하길 권장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충격받은 아베, 취재진 질문에 침묵
일본 정부는 22일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종료하는 결단을 내리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일본이 안보상 문제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것이 결국 GSOMIA 종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28일 예정대로 개정 수출무역관리령을 시행하면서 현재 반도체·디스플레이 3품목에 한정된 개별수출허가 대상 품목을 늘리는 방식으로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일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달을 전망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 정부가 협정 종료를 발표한 직후인 오후 6시30분쯤 총리관저에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이 협정 종료에 대한 입장과 향후 대응을 질문을 했으나 한 손을 들어 인사하며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지나갔다.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 고관은 협정 종료에 대해 기자단에 “일본에 대한 영향은 그렇게 없을 것”이라며 “일·미 사이에 안전보장 분야의 연대가 확실히 이뤄지고 있다”며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다른 일본 정부 관계자는 “유감스럽다”며 “향후 방위 당국 간 소통이 더욱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방위성 간부는 “(협정 종료는) 상정 외의 대응으로써 한국 측 주장을 냉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 측이 수출관리 문제를 이유로 든 만큼 (안보 부처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정부 전체로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 매체들은 한국 정부의 협정 종료 발표 즉시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미국의 대응 등 향후 파장을 주시했다. NHK는 “일·한 갈등이 경제뿐만 아니라 안전보장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일·한 관계 악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일·미·한 연대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의 리더십 발휘 실패로 한·일 갈등이 악화하면서 중국이 중재자 역할 확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서면 논평을 통해 “한·일 모두 중국의 중요한 이웃 국가라는 점에 주목하며, 양측이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기를 바란다”면서 “아울러 우리는 한·일 관련 양자 배치가 지역의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되고 제3자의 이익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2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서울 겨레' 소속회원들이 '아베에게 군사정보 넘겨줄 수 없다! 한일군사정보협정 파기를 선언하자!' 집회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밝힌 22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 |
정치권 반응
22일 청와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재연장 종료 결정을 두고 여야 정치권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경솔한 결정”이라며 최근 각종 의혹에 휩싸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구하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최악의 결정’이라며 청와대의 발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안보마저 실익이 아니라 이념으로 하고 있다”며 “국가의 이익을 버리고 정권의 이익을 선택했다”고 성토했다. 같은 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본인만의 조국(曺國)을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의 조국(祖國)을 버렸다. 정권의 오기에 우리 안보가 희생당했다”며 ‘조 후보자 구하기용’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소미아 파기는 국가 안보의 틀을 허무는 것이자 우리 안보의 축을 우리 스스로 흔드는 자해행위”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민주평화당은 “국익에 근거한 결정”이라며 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김달중·홍주형·박수찬·이창훈 기자, 도쿄·베이징=김청중·이우승 특파원 da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