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육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육아는 템빨
# 오랜만에 식당에 갔는데 아기가 의자(베이비체어)에 앉기 싫다며 떼를 쓰며 웁니다. 잘 먹던 밥도 안 먹고 의자에서 내려 달라고만 합니다. 엄마, 아빠는 혹시라도 옆자리에 방해가 될까봐 스마트폰을 켭니다. 아기는 잠잠해집니다.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가족의 풍경입니다. 저 역시 엄마가 되기 전에는 ‘우리 아기에겐 절대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요. 지금은… 씁쓸한 웃음만 나오네요. 인터넷 쇼핑에 스마트폰 거치대를 검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기에게 TV나 스마트폰 영상을 너무 일찍 보여주면 두뇌발달에 좋지 않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으면서도, 밖에서 아기가 울고 보챌 땐 스마트폰의 힘을 빌려서라도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쓰게 됩니다. 우리 아이는 자기 얼굴이 나오는 동영상을 너무나 좋아해서 엄마가 스마트폰을 잠깐 확인할라치면 동영상 틀어달라고 그렇게 떼를 쓰고 운답니다.
어쩔 수 없이 보여주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쌓여가기만 하니 이 역시 은근 ‘육아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아이는 더 많은 시간 보기를 원하게 돼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실제 인터넷 맘카페를 들여다봐도 저와 같은 고민을 호소하는 엄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집 밖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려 스마트폰을 보여준 적 있는지 ▲집에서 아이를 볼 때 부모가 스마트폰을 자주 보는 게 문제가 되는지 등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데요. 아이의 두뇌 성장과 교육을 위해 ‘절대’ 스마트폰은 보지도, 보여주지도 않는다는 부모들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느니 잠깐 (스마트폰) 보여주는 게 낫다’, ‘하루종일 애 보느라 힘든데 부모한테 스마트폰까지 보지 말라고 하면 그 스트레스는 어떻게 하나’ 등 스마트폰 이용의 자유를 호소하는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영상이라도 보여줘야 엄마는 잠시 쉴 수 있습니다. 사진=개인 소장. |
“우는 아이 달래려 스마트폰 주면 언어 발달 지연 초래할 수도” 국내 연구 결과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와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경종을 올렸는데요.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소아신경학) 김성구 교수 연구팀은 ‘아동의 미디어 노출 시간과 정도에 따른 언어발달 지연 연관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이달 초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2013년 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언어발달지연으로 치료 받은 평균연령 생후 33개월의 아동 40명과 다른 질환으로 내원한 아동 66명을 대조군으로 미디어 노출 시간과 정도를 비교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하루 2시간 이상 미디어에 노출된 비율이 대조군에서는 16%에 불과했던 반면, 언어발달지연군에서는 6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디어를 처음 접한 시기가 ‘생후 24개월 이전’이라고 답한 경우는 언어발달지연군이 95%로 대조군(58%)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집계됐고요. 혼자 미디어를 시청하는 경우는 언어발달지연군 79%, 대조군 41%로 각각 차이를 보였습니다.
시청한 프로그램의 종류는 언어발달지연군의 경우 ▲만화 39% ▲노래와 율동 37% ▲동화 3.9% ▲영어학습 2% 순이었고, 대조군은 ▲노래와 율동 44% ▲만화 31% ▲영어학습 15% ▲동화 7.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교수는 “미디어(영상) 노출은 시각중추만을 자극하고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까지는 활성화하지 않아 언어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너무 어린 나이에 미디어에 노출되면 부모와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잃고 창조적인 놀이를 못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를 시청하는 경우에도 부모와 함께 제한된 시간만 시청하면 언어발달지연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시청 시간은 규칙으로 정해서 꼭 지키게 해 주세요
해외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 사례가 있었는데요. 정말 이런 내용이 기사화될 때마다 부모들의 걱정은 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마트폰 없는 똑똑한 육아’(지식과 감성)의 저자 이연주씨는 아이가 울 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은 아이의 슬프고, 화 나고, 피곤한 등의 감정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어디론가 ‘밀려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아이들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달래져야 하는데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은 감정을 쌓아두게만 한다는 거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쌓아놓기만 하다 보면 나중에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성향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를 달래는 데 이미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거나, 심지어 ‘스마트폰 없이는 육아가 힘들다’라고 여겨지는 경우엔 아이와 더 많은 스킨십을 하고 대화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TV나 스마트폰을 끄고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영상을 보고 싶다고 떼를 쓰더라도 또 다른 흥미로운 게 나타나면 금세 욕구를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부모가 동화책을 읽어준다거나,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고, 또 날씨가 좋은 날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보여줘야 할 땐, 월령이나 연령 수준에 맞는 양질의 영상만을 아이와 ‘○○분만 본다’라는 시간 규칙을 정해서 이를 꼭 지키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처음엔 규칙을 지킨다는 게 어려워 보여도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아이 스스로 ○○분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광경도 목격하게 되니까요. 아이와 규칙을 정해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비단 스마트폰을 시청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매우 중요한 습관일 것 같습니다.
단, 아이에게 규칙을 지키도록 하려면 부모 역시 함께 규칙을 지키는(예를 들어, TV나 스마트폰 시청 줄이기)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네요. 스마트폰만은 ‘육아는 템빨(장비빨)’에서 안타깝게도 제외해야 하는 1순위 아이템이 아닐까 하네요.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