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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전차 변속기 국산화의 길…특혜? 돌고 돌아 '가혹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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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흑표 전차는 국산 전차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완전한 국산은 아니고 거의 국산입니다. 전차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파워팩의 반쪽은 국산인데 다른 반쪽은 현재 독일제입니다. 독일제 반쪽도 국산으로 개발해보려는 노력이 진행되는 것 같더니 다시 샛길로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전차 파워팩은 엔진과 변속기, 냉각장치 등으로 구성됩니다. 독일이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분야입니다. K2는 1,500마력 파워팩을 채택했는데 1,500마력 엔진은 독일 MTU가, 1,500마력 변속기는 독일 랭크가 압도적 1위 업체입니다. 독일의 이런 1,500마력 파워팩에 버금가는 국산 파워팩이 K2의 목표였습니다.


국산 1,500마력 엔진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우여곡절 끝에 개발 내구도 평가, 양산 내구도 평가를 통과해서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국산 1,500마력 변속기입니다. S&T중공업이 개발 내구도 평가까지는 통과했는데 양산 내구도 평가 8부 능선에서 실패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평가 규격이 대단히 가혹했습니다. 방사청도 나서서 규격을 고쳐보려고 했고 국회까지 뛰어들었습니다. 마침내 합리적 대안이 나오는가 했는데 시행 과정에서 이해 못할 사달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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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중인 K2 전차용 국산 변속기

곡절 많은 K2 파워팩 국산화 스토리

애초에 국산 변속기의 내구도 평가 탈락은 논란의 소지가 많았습니다. 전차 차체와 엔진의 내구도 평가 규격은 평가 도중 창정비가 필요한 중대 결함이 발생했을 때에만 실패인데, 변속기 내구도 평가 규격은 어떤 결함이라도 발생만 하면 실패로 판정하는 식입니다. 변속기만 가혹했습니다. 변속기의 수명주기인 9,600km를 온갖 테스트를 하며 돌리다가 잔고장 한번 생기면 불합격입니다. 실제로 2017년 마지막 내구도 평가에서 국산 변속기는 7,110km에서 볼트 하나 부러진 탓에 불합격 처리됐습니다.


방사청이 보기에도 변속기의 내구도 평가 규격은 불합리하고 딱했나 봅니다. 그래서 2016년 업체와 관련 기관들이 모여 숙의한 끝에 가혹한 규정을 삭제하고 합리적 규격을 도출했습니다. 새로운 국방규격이 적용될 줄 알았는데 방사청 감독관실에서 제동을 걸었습니다. 검찰과 감사원의 연합체인 방사청 감독관실의 한 마디에 기관들과 업체의 합의는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결국 K2 1차 양산에 100% 독일제 파워팩이 적용된 데 이어 2차 양산에는 국산 엔진과 독일제 변속기의 하이브리드 파워팩이 채택됐습니다. 국회가 보다 못해 나섰습니다. 2018년 국회 국방위의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 여럿이 변속기 내구도 평가의 국방규격 합리화를 촉구했습니다. 국회의 국산화 의지가 강해서 K2의 3차 양산에서는 합리적 규격을 통과한 완전 국산 파워팩의 탄생이 기대됐습니다.

내구도 평가 규격의 합리화 '잠시' 실현

국회 지적에 국방부와 방사청은 숙의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7월 13일 국방부 차관, 방사청장 주관으로 방위사업협의회를 열고 K2 변속기 국산화 추진 방향을 논의했고, 7월 15일 형상통제심의회는 규격을 개정했습니다. 방사청은 두 절차 모두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골자는 "개정된 국방규격에 따라 최초 생산품 검사를 수행하고, 만약 검사 결과에 대해 기관별 이견이 발생하여 판정이 어려울 경우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검토 및 판단하는 등 공정성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기존 규격에서는 8, 9부 능선까지 가서 볼트 하나 부러져도 단칼에 불합격 판정했는데, 새 규정은 업체든 방사청이든 국방기술품질원(이하 기품원)이든 평가에 이의가 있으면 전문가 협의체에게 판단을 맡긴다는 겁니다.


정밀하게 불합격 대상 결함 품목을 정하면 좋으련만 이견이 많은 관계로 겨우 찾아낸 제 3의 대안입니다. 규격이 좀 완화됐으니 일각에서는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업체, 방사청, 기품원 모두 조금씩 양보한, 그래서 다들 마뜩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진솔하게 운용하면 합리적 평가가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시간 없는데 방사청은 우왕좌왕

K2 3차 양산에 국산 변속기를 채택하려면 연내에 변속기 양산 내구도 평가를 마쳐야 합니다. 전차의 수명주기인 9,600km만큼 변속기를 돌려야 합니다. 변속기를 돌리는 데만 320시간이 걸립니다. 매일매일 몇 시간씩 기관의 점검도 실시해야 합니다. 석 달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방사청이 실수 아닌 실수를 했습니다. 국방규격 개정 당일인 7월 15일 방사청은 S&T중공업에게 '계약 전 양산품 품질보증활동 승인 신청'을 하라고 알렸습니다. 업체는 이것저것 검토한 뒤 7월 23일 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돌연 방사청은 7월 28일 업체 신청서를 반려하고 '기품원과 용역계약을 통한 품질검사'를 수행하라고 통보했습니다.


기품원이 규정에 어긋나는 절차라며 방사청에 이의를 제기해서 생긴 일입니다. S&T중공업과 방사청은 이후 수차례 회의를 하고 공문을 주고받은 끝에 지난달 7일 기품원과 업체가 용역계약을 맺는 걸로 합의했습니다. 갈길은 멀고 시간은 없는데 이렇게 50일 가까이 허비했습니다.

사라진 '전문위원 협의체'

더 큰 문제는 방사청이 지난달 9일 업체에 돌연 통보한 내용입니다. "내구도 평가 중 발생하는 다양한 결함에 대해 기품원이 요청하는 경우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기술자문위원회에서 기술적 자문을 제공하며 최종 판정은 기품원이 실시한다"입니다.


방사청은 7월 13일과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관 간 이견은 자동으로 중립적인 전문위원 협의체로 넘어가 전문위원 협의체 논의를 거쳐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전문위원 협의체의 판정은 평가의 공정성 확보 차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여러 매체들이 그렇게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도 안돼 내구도 평가 중 발생한 이견은 기품원이 요청하는 경우에만 중립적 위원회가 개입하고, 최종 판정도 위원회가 아니라 기품원이 하는 걸로 뒤집힌 겁니다. 평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전문가 위원회의 역할이 대폭 줄었습니다. 공정성도 함께 훼손됐습니다. 국방부 차관, 방사청장의 주관한 방위사업협의회와 형상통제심의회의 합의, 의결은 백지가 됐습니다.


기품원과 업체 간 발생한 이견을, 기품원이 검토 후 판단하면 결과는 뻔합니다. 기품원 편의적 결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원 감사나 언론의 지적이 두려워 소소한 결함이라도 생기면 불합격 판정을 내릴 공산이 큽니다. 다시 변속기에게만 가혹한 평가를 하겠다는 뜻과 다름 아닙니다.


기존 국방규격도 이와 같이 가혹했던 터라 국회가 개선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새로 수립한 대안이 객관적인 전문위원 협의체의 판단이었습니다. 국회도 지금도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방사청은 이를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해 놓고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잡니다. K2 변속기 국산화의 길, 참 어렵습니다. 돌고 돌아 가혹한 원위치입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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