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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었는데도 악몽 꾼다"…살처분, 그리고 트라우마

돼지살처분, 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

<앵커>


최근 우려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처럼 가축 전염병이 확진되면 반경 3km 내의 가축들에게 살처분 명령이 내려집니다. 더 많은 가축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겠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살처분을 시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현장에 나가는 한 수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스브스뉴스입니다.


<기자>


치사율100%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대상 발생 농장 반경 3km안에 있는 모든 돼지.


그리고 살처분 현장에 가야만 하는 사람들. (수의사, 공무원, 일용직 노동자.)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대책 살처분.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살처분 현장에 수의사가 반드시 나가야 돼요. (살처분을)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는 현장 검역관이 되는 거죠.]


수의사는 동물을 효율적으로 죽여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어차피 죽여야 되면 빠른 시간에 빨리 죽여 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거든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제가 살처분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악몽을 꾼다 해야되나? (살처분 과정에서) 돼지들이 되게 시끄럽게 있다가 흙이 덮였을 때 조용해지는 진짜 고요한 그 순간이 됐을 때…이거는 내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는 않겠구나…이 기억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겠구나…]


윤리적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처음에는 되게 좀 싫었어요. 한 마리만 죽여도 되게 스트레스 받았는데 1분 1초라도 빨리 끝나야 상황이 정리가 되고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빨리 죽여서 저는 그 기억이 더 트라우마인 거 같아요. 내가 진짜 악마가 돼 가는 그런…]

살처분 현장에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은 수의사만이 아닙니다.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이나 일용직 노동자 등은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수의사는) 동물이 죽는 것도 보고 살아나는 것도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데, 일반 공무원들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굉장히 크겠죠. 제가 아는 분도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신데 (살처분에) 동원됐다가 사표 쓰신 분도 있으세요.]


법원 "구제역 살처분 트라우마로 자살, 업무상 재해"


2011년 구제역 발생 당시 가축 살처분에 투입된 축협직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살처분 참여자 4명 중 3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고 4명 중 1명은 중증 우울증 증상을 보였습니다.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사회적으로 살처분 참여자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예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살처분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냥 주사로 이렇게 살처분하는 안락사시키는…현재로는 CO₂를 많이 쓰는데 (가축에게) 이산화탄소(CO₂)를 주입을 하는 거예요.]

SBS

정부도 나서 대책을 세웠습니다.


트라우마 예방 교육, 심리 치료 지원, 치료 비용 지급 등 살처분 참여자의 정신적 회복을 돕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예방과 치료가 살처분 현장에서의 충격을 완전히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A 씨/과거 살처분 동원 수의사 : 동물이 죽어 가는 거는 보이지 않아야 된다. 이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 거 같아요. 근데 사실상 불가능하죠. 대신에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사회적 재난에 맞선 사람들,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고민은 계속돼야 합니다.


(책임 프로듀서 : 하현종, 프로듀서 : 조기호, 연출 : 박수정·권민지, 편집 : 박해준, 도움 : 김지윤 인턴)

조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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