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학의 前 차관 성 접대 의혹과 동영상, 그리고 정확한 분노
지난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했다. 민 청장에게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질문이 이어졌는데, 소위 '김학의 동영상'과 관련된 질문도 있었다. 이에 민 청장은 "(화질이) 명확한 건 (2013년) 5월에 입수했는데 육안으로도 명확하기 때문에 감정 의뢰 없이 이건 동일인(김학의 전 차관)이다는 것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한다"고 답했다.
이에 질문을 했던 김민기 의원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 명확한데도 무혐의 처리한 검찰이 문제라는 취지로 질문을 이어갔다. 여론이나 언론 보도 등도 마찬가지였다. 관심은 동영상, 그 중에서도 동영상 속 남성에게 모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과거 검찰 수사팀 관계자들은 당황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과녁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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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의 전 차관 성 접대 의혹'에 대한 질문은 과녁을 제대로 겨눴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전. 9라운드까지 1위를 달리고 있던 미국의 에몬스는 해당 종목의 최강자로 불렸다. 1점 이상만 쏘면 금메달을 확정할 수 있었던 마지막 라운드. 에몬스는 만점에 가까운 10.6점을 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최하위. 자신의 과녁이 아닌 옆 선수의 과녁을 쏜 것이다.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냐' 물론, 중요한 문제다. 특히, 검찰의 2차 수사에선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영상의 시각적 파괴력이 대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이니까 성폭력 혐의는 입증되는 것 아니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김학의 전 차관이 성폭력 혐의를 받은 시기와 동영상 촬영 시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영상 속 남성이 김학의인데 왜 무혐의냐'는 질문은 잘못된 과녁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7월 18일, 경찰은 이른바 '김학의 성 접대' 의혹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 2건의 특수강간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문제의 동영상과 관련한 언급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동영상은 같은 상황을 담고 있는 각기 다른 화질 4건으로, 촬영 시기는 2006년 7~8월경으로 추정됐다. 2건의 특수강간 혐의의 범죄 발생 시기는 2007년 4~5월 경 1건, 2008년 3~4월 경 1건으로 특정됐다. 문제의 동영상이 범죄 혐의점을 둔 사건과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발표였다.
●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 ≠ '김학의 혐의 입증'
검찰이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보인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화제가 된 동영상 속 남성이 누군지에 대한 질문에는 언급을 삼가면서도, 해당 동영상은 경찰이 송치한 김학의 전 차관의 범죄 혐의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찰의 추정대로 특수강간 혐의 시점과 동영상의 촬영 시점이 다른 만큼, 동영상은 특수 강간 혐의 입증과 직결된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당 동영상을 근거로 경찰이 송치한 범죄 혐의 외에 다른 혐의를 인지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당시 수사팀은 혐의 인지를 위해선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신원을 확인해 진술을 받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혐의를 인지해 나갔어야 하는데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1차 수사 당시, 김학의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 관련 무혐의 처분 이유는 일부 잘못 알려진 것처럼 '동영상 속 남성이 누군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동영상 속 여성이 누군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동영상 속 남성이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확신했는데,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느냐', '핵심은 동영상 아니냐'는 질문은 잘못된 과녁에 화살을 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수사팀으로선 변명하기 용이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럼 동영상 속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등장했던 2차 검찰 수사 당시는 어떨까. 이에 대해 2차 수사팀 관계자는 해당 여성이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이라고 확정하기 어렵고, 그 여성의 진술이 수차례 바뀌어 진술에 신빙성이 없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의 동영상에 여성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데, 그 여성의 주장만으로 문제의 동영상 속 여성을 특정해 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려웠다는 취지다. 역시, 동영상 속 등장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 정확한 질문이 있어야,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럼 경찰 수사와 2차례에 걸친 검찰 수사로도 계속해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김학의 전 차관 성 접대 의혹' 사건에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질문은, 그리고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확인하고 있는 의혹들은 과거 검찰 수사 발표에서 찾을 수 있다.
검찰은 1차 수사 당시, 김학의 전 차관 주거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지 않았다. 김 전 차관이 특수강간 혐의에 대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을 전혀 모른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휴대전화 압수수색 등을 통해 김 전 차관의 이야기를 검증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른바 성 접대의 대가성 여부를 압수수색을 통해서 확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검찰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2013년 수사 결과 발표 당시 이야기했다.
(기자) 주거지나 사무실 압수수색하는 게 통상 대가성 여부 수사할 때 하는 것 아닌가?
(검찰 관계자) 뇌물죄를 예로 들면 공여자 진술과 자금 출처 이런 거 충분히 한 다음에 증거자료 확보됐을 때 주거지 압수영장을 발부받는다. 그 전에는 압수수색 영장 잘 나오지도 않는다.
(기자) 경찰이 확보한 진술이나 참고인들 조사 등이 압수수색 영장 나올만한 근거가 안 됐다는 건가?
(검찰 관계자) 그렇다.
●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왜 이뤄지지 않았나
검찰은 압수수색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유 중 하나로 경찰 수사 결과를 들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를 마냥 믿을 수 있었을까. 경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 개입 가능성은 경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3년 3월에 이미 제기됐다. SBS는 당시, 일명 '김학의 동영상' 포렌식 기록을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국과수를 찾아가 달라고 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단독] "분석 결과 달라"…민정수석실 개입 논란 (2013.03.28 SBS 8뉴스)
경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 개입 의혹. 부실 수사를 의심할 수 있었던 만큼, 검찰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은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경찰 수사 결과를 들었다. 특수강간 혐의와 관련해 원점에서 재수사한 끝에 경찰 의견과 달리 무혐의 처분했던 검찰이, 압수수색과 관련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한 것이다. 결국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 모두 김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김학의 전 차관에 연루된 다른 공직자는 없었나
'김학의 전 차관 성 접대 의혹'과 관련해 제기해야 할 또 다른 질문은 해당 의혹에 연루된 다른 고위 공직자는 없었느냐는 것이다. 수사 초기 '고위 공직자의 성 접대 의혹'으로 불리며, 김학의 전 차관 외의 다른 공직자의 이름도 거명된 바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해당 사건은 '김학의 전 차관 성 접대 의혹'으로 명명되면서, 고위공직자는 사실상 김학의 전 차관 한 명만 남았다. 이유가 뭘까. 성 접대 의혹이 확대되는 걸 막기 위한 수사 은폐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을 가중시키는 정황은 최근 드러난 바 있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자료 중 디지털 자료 3만 여 건이 송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필요한 증거는 모두 CD에 담아서 보냈고, 수사와 직접 관련 없는 증거는 폐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사단은 검찰이 보냈다는 CD에는 사진과 동영상 파일은 들어 있지 않고, 경찰이 증거를 폐기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사단은 해당 디지털 자료에서 다른 공직자가 등장하지는 않는지 찾으려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자료가 없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자료 송치는 왜 안 됐던 걸까. 그리고 왜 검찰은 해당 자료 송치 지휘를 하지 않았던 걸까.
●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진술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진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냐'는 것이다. 검찰의 1차 수사 보도 자료에는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진술을 믿기 힘들다는 취지의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또, 강간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피해자 답지 않다'는 취지의 표현도 적지 않게 나온다.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며, 이례적으로 피해 주장이 나온 2차 검찰 수사 때도 무혐의의 주된 이유는 피해 여성 주장의 신빙성 부족이었다. 경찰이 인정한 피해 여성의 주장을 검찰은 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동영상 속 여성은 정말 특정하기 불가능했던 걸까.
잘못된 과녁에 아무리 명중을 시켜도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문제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 전 차관인데 왜 무혐의 처리했느냐' 이 질문은 동영상의 파괴력 등에 기댄 선명한 주장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적확한 질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좋은 변명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질문이 정확해야, 정확한 대답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정확하게 분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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