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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람] "지금이 인생의 바닥"…금수저의 남다른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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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적자였다. 단행본에서 얻은 이익으로 겨우겨우 버텨왔다. 출판시장 위축으로 책 판매량은 해마다 줄었다. 급기야 재작년부터 단행본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사람을 줄이고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였다. 분신 같던 대학로 사옥까지 팔았다. 상속세와 양도소득세로 70%를 내고 나니 크게 남는 게 없었다. 90년대부터 매해 3억 원가량 쌓인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이러다 직원들 퇴직금도 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손을 들기로 했다. 샘터는 지난해 10월, 연말 598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하겠다고 공지했다. 1970년 4월 첫 호를 발행한 이후 단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던 샘터의 사실상 폐간 선언이었다. 통권 600호 발행과 창간 50주년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국내 최장수 교양 잡지 <샘터>의 무기한 휴간 소식은 충격이었다. 샘터를 이렇게 문 닫게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원이 잇따랐다. 후원금과 응원 메시지가 쇄도했다. 신규 구독 신청, 구독 연장 신청이 3천 건에 육박했다. '샘터'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고 목을 축이며 쉬어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휴간을 선언한 지 한 달 만에 샘터 발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올 2월 통권 600호를 발행했고 지난달에는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곧 숨이 끊어지는 듯했던 샘터는 독자들의 응급조치로 겨우 살아났다. 그렇다고 샘터가 완전히 회생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적자는 계속되고 있다.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샘터는 전설이다. 70-80년대 한 달에 50만 부를 찍었다. 법정, 피천득, 이해인, 최인호, 장영희 교수가 이 잡지에 그 휘황한 글들을 실었고 염무웅, 김승옥, 한 강, 정호승, 정채봉이 여기 편집부를 거쳐 갔다. 서울 대학로 상징인 빨간색 샘터 사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 샘터는 말 그대로 국민 교양 잡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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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샘터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지만 이 글은 샘터가 아니라 샘터 발행인 김성구 대표에 대한 이야기다. 금수저라는 말을 단순히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보고 배우고 누릴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고 하면 김성구 대표야말로 금수저다.


1960년생,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넷째 아들, 80년대 초반 5년 반 동안 미국 유학을 했고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1995년 샘터에 들어와 발행인,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이 회사 지분의 60%를 소유한 대주주이기도 하다.


7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샘터'를 창간한 출판문화계의 거목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국회의장이고 출판계 거목이라 그를 금수저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피천득을 비롯한 샘터 주요 필자들의 집에 세배를 다녔다. 그때 그가 받은 것은 세뱃돈만이 아니었다. 그는 기라성 같은 샘터의 주요 필자들을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접하면서 그들로부터 무릎 교육을 받으며 컸다. 억만 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귀한 교육이자 진정한 금수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는 이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인 제자이자 후계자다.


그는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장영희 교수, 최인호 작가 같은 샘터 주요 필자들의 정신적 유산의 상속자이다. 수필가 피천득 교수의 총애를 받은 양아들 같은 존재이고 정채봉 작가의 대자이기도 하다.


그가 2018년 펴낸 산문집 <좋아요, 그런 마음>을 보면 그가 왜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피천득 교수, 장영희 교수, 최인호 작가, 정채봉 작가의 정신적 상속자인지 알 수 있다. 그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샘터 발행인으로 쓴 글을 보면 어디서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어디서는 정채봉 작가의 애잔함이, 어디서는 이해인 수녀의 기도가, 또 어디서는 피천득 선생의 정갈함이 묻어난다. 최인호 특유의 그 장난끼마저도 그의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짧게 한 대목만 인용하면 이렇다.


"투사처럼 모순과 악담의 이 세상을 확 뒤바꿔버리고 싶다가도 나무와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은 다시 고요해지고 세상의 진리, 순리는 여전히 바람처럼 흘러올 것이라는 믿음을 2017년 새해에 갖게 됩니다."


2017년 정초는 수백만 개의 촛불이 전국을 뒤덮고, 수백만 명의 분노의 함성이 하늘에 닿을 듯 높던 시기 아닌가. 그럴 때 그는 메마른 나뭇가지와 차가운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원하는 진리와 순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큰 함성이 아니라 잘 들리지 않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샘터의 정신이라고 그는 생각할 것이다. 이 짧은 글 한 대목만 봐도 좋은 의미로든 그렇지 않은 의미로든 그가 샘터의 2세 경영인을 넘어 정신적 상속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 이런 질문을 미리 준비해갔다.


"야구 경기로 말하자면 본인이 승패가 이미 기운 상황에서 등판한 패전 처리 투수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직 공 끝이 날카롭고 공의 스피드도 좋고 타고난 몸도 좋지만 자신의 역할이 패전 처리 투수라면 말이지요?"


"말씀하시는 샘터 살리는 방안이란 것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집니다. 온-오프라인 연계, 콘텐츠의 활용 이런 것들은 다른 매체들도 많이 이야기한 거 아닌가요? 그런 것들로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이 거대한 흐름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샘터가 맡고 있는 위기의 원인이 물론 밖에도 있겠지만 본인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발행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생각은 안 했습니까?"


이런 질문에 그는 태연하게, 정말 태연하게 답했다. 그동안 쌓인 내공이 간단치 않다고 느꼈다. 한 경지에 이른 도인처럼 넉넉한 표정이던 그가 갑자기 얼굴색을 바꾼 것은 이 질문을 했을 때였다.


"2017년 동숭동 샘터 사옥 넘기고 여기로 이사 올 때 마음 아프지 않았습니까?"


그 멋진 대학로 빨간 샘터 사옥을 팔고 그것과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고 작은 전셋집으로 이사하는 심정이 비감했을 거 같아 던진 질문이었다. 선대의 가업을 부족한 자신이 망친 거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뭐 이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다. 웬걸 그는 이 질문에 정색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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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샘터>가 건물입니까? 샘터는 건물 아닙니다. 정신, 우리들 마음에 샘터가 있는 것입니다. 저를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큰집, 좋은 차, 맛있는 거 이런 거에 대한 미련 전혀 없습니다. 그런 거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에 대한 부러움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 거는 정말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당황했다. 그가 '저를 잘 모르시는 거 같다'고 말할 때는 "아. 예… 예… 그렇지요" 라며 한순간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격한 반응에 허둥대면서 필자가 갑자기 속물이 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동숭동에서 여기로 이사 올 때 정작 마음 아팠던 일은 그곳에서 30년 넘게 저희들에게 밥해 주시던 아주머니들과 헤어진 것입니다. (동숭동 시절 샘터는 국내 출판사 가운데 유일하게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회사였다. 직원 숫자가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구내식당을 두고 있었는데 혜화동으로 이사하면서 구내식당을 없앴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어머니에 이어 저희 회사에서 2대에 걸쳐 일한 분입니다. 그런 분들과 더 이상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된 것이 가슴 아팠지 건물 팔고 셋집으로 이사 온다고 슬펐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게 샘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샘터를 제가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이 마음 그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일 뿐입니다."


3.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적잖은 갈등과 다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왔다면 그 공의 상당 부분은 샘터의 몫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라는 이 잡지의 방향성이 지나치게 소시민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고 구조적인 악의 실체를 가려왔다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들에 대한 샘터의 의도된 침묵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샘터가 유명하고 글 잘 쓰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글 솜씨 서투르고 말 어눌하나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들에게 큰 자리를 변함없이 내주고 있다는 것,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벗의 역할을 50년 세월 한결 같이 해왔다는 것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언제부터인가 샘터가 한 권의 잡지를 넘어 하나의 상징, 하나의 진영이 된 것도 그런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김성구 대표가 서있다.


김성구 대표가 지금 인생 최대 위기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생의 바닥을 보고 있다. 가업인 샘터가 망할 지경인데 그에게 이보다 더 큰 위기와 어려움이 또 있을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언제 체면 차리고 매무새를 따지겠는가. 우리 사회의 한 가치를 공고하게 지키고 대변해오던 사람이 어떤 표정과 자세로 위기를 대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인터뷰를 청한 이유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너무 솔직하게 답을 해서 질문 한 사람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김성구 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미국 유학 시절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영어가 어려워 포기했고, 동기들에 비해 취재 능력도 부족하고 글 솜씨도 부족해서 신문사를 그만뒀단다. ( 그가 쓴 글을 보면 이 부분은 솔직한 것인지 겸양인지 잘 모르겠다). 신문사 그만두고 방송사로 옮기려고 했는데 "너 말 더듬잖아"라는 선배의 말 한마디에 포기했다.


왜 넷째 아들인 김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았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가 너무 솔직하게 말할 것 같아 묻지 않았다. 가끔은 궁금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물었다면 그는 분명히 답했을 것이다. 그가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말하긴 했지만 그는 묻지도 않은 가정사의 일부분을 숨김없이 털어놓기도 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데 이유가 있듯이 자신의 속을 털어놓는 데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왜 그리 솔직한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을 방어하는 데는 크게 보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갑옷으로 무장하는 방법이다. 필요하다면 거짓말이나 위선도 동원한다. 뻔뻔함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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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법은 자신이 남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공격할 비수를 품지 않고 있다는 것, 자신이 비무장이란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열고 속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성구의 솔직함은 자신을 방어하려는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샘터의 편집 방침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첫째 다른 사람 공격해서 상처 주지 말자, 둘째, 나의 자존심이 중요한 만큼 남의 자존심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존중하자.


필자는 이 대목에서 그의 아버지 김재순이 떠올랐다. 남에게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것은 혹시 아버지 때문에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은 아닐까. 아버지는 문민정부 시절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오랜 친구이기도 한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헌신했지만 김재순은 YS에게 버림받았다. 재산 형성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했다. 그 수모와 충격을 김재순은 평생 잊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YS가 타계했을 때 조문조차 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숲에서 막 뛰쳐나온 범 같은 인상이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인지라 자녀 교육이 엄격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단다. 모든 일을 자녀들 판단에 맡겼단다. 아들에게 경영을 맡겼지만 김재순은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동숭동 샘터사에 정기적으로 출근했다. 김성구는 아버지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어떤 대목에서는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 버겁지 않았을까


자신의 삶에 아버지가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 할수록 아버지의 그늘은 더 짙어지는 그것은 성공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숙명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에서 끼친 영향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그치지 않는 듯했다. 인간 김성구, 개인 김성구에게 화제를 집중하려 했지만 우리들의 대화는 가끔 <김재순>이라는 강력한 구심력에 끌려가듯 김성구를 벗어나 김재순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버지 김재순을 빼고는 김성구의 삶을 논하기 어려웠다.


4. 그와의 인터뷰는 가급적 40분은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바쁜 사람 오래 붙잡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전 10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100분이 지나 서둘러 마무리됐다. 질문도 많았지만 그 역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최근 이러저러한 매체와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그것은 샘터와 관련된 것이었지 김성구에 대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누군가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 그것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일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 할 말이라는 것이 변명은 아닌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입장, 생각을 밝히고 싶은 듯했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 바닥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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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가 그에게 묻겠는가? 직원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샘터라는 조직 안에서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가 관여하고 있는 다른 조직에서 그는 하소연을 들어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는 기자와 출판인으로 33년을 살아온 사람이다. 자신의 말이 어떻게 잘려지고 구부려지고 쪼개지고 앞뒤가 바뀔 것인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인터뷰 요청에 응한 것은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금수저라고 좌절과 시련이 없을 리 없다. 금수저이니 실패와 좌절이 더 뼈아플 수 있다. 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기자 생활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학 생활은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한 시절로 기억되지만 그렇다고 성공담을 자랑할 정도는 아니었다. 샘터에 들어온 이후에도 사실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믿었던 직원에게 배신을 당해 회사가 휘청했고 경영상의 위기로 정든 식구들을 절반 이상 내보내야 했다. 선대의 유산이자 우리 사회의 추억의 명물인 샘터 사옥을 남의 손에 넘긴 것이 자랑일 수 없는 것이다. 잠시나마 폐간을 검토할 만큼 회사 사정이 어려운 것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그에게 있다.


바닥을 다졌으니 이제는 어디로든 튀어 오를 일만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농담으로라도 바닥 밑에 지하 있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과연 그가 본 것이 바닥인지, 그래서 이제 튀어 올라가는 일만 남은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극적으로 9회 말 역전승을 거두고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지만-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금수저란 사람들은 이길 때도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지만 질 때는 더 지저분하게 굴었다. 샘터 사옥을 팔고 퇴각할 때 김성구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거나 지저분하지 않았다. 매각을 추진하면서도 샘터 사옥을 돈벌이로만 보려는 사람들에게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돈 몇 푼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성공과 실패는 최종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성공했다고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나쁜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김성구 대표의 삶은 악전고투였고 앞으로도 그런 가능성이 크지만 그는 그런 과정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을 만들어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를 만나면서 어쩌면 이런 모습이 보수의 진면목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그에게 어떤 이념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불필요해 보였다.


김성구 대표를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흙수저들은 알기 어려운 금수저들만의 미덕이 있는데 김성구가 그런 미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지인의 말이 맞는 듯한데 최종 평가는 아직 이르다. 아직도 그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 더 남아있고 그 시간을 다 겪은 후에도 그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윤춘호(논설위원) 기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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