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맛을 놓치지 않는 해남군의 맛집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해남, 두륜산 도립공원과 달마고도, 땅끝천년숲옛길과 땅끝해안산책로까지 그렇게 해남군의 지원을 받아 “트레킹 마니아를 위한 팸투어”의 코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 다양한 루트로 답사를 진행했으나 끝내 거리상의 문제 및 야영지와의 연계성 등을 고려하여 살리지 못한 구간들도 많다. 그런 구간들이라 할지라도 정보는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맛 본 음식은 몸과 마음으로 남는다.
해남군의 음식들을 대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은 화려하고 비싼 음식들이 아닌, 정말로 기본적인 상과 반찬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에 있다. 아침에 받아든 아침백반 한 상, 면 소재지의 허름한 중국집, 팥칼국수 한 그릇으로 전국으로 이름난 식당까지 그 밥상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이 먼 곳까지 온 여행자들의 배는 편안할 수 있겠다. 가격에 흠칫 놀라 메뉴판을 훑어보며 머리 속으로 덧셈 계산을 하거나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낯선 음식에 기대감에 반비례한 위화감을 억지로 감출 필요가 없다.
그 소박하고 흔한 찬 하나를 입에 넣고 “아, 이것 참 맛있다…”하고 밥 한 공기를 비워낼 수 있는 일상적인 식사가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해남의 맛집들을 소개한다.
1. 매화식당
매화식당의 외관 |
군청에서 트레킹 팸투어의 코스와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코스 근방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물색하며 다양한 안이 오가는 중에 누군가가 “매화식당도 있고…”하고 입을 열었다. 그 때 축제 담당 주무관이 “아~ 매화식당 좋지요잉~”하며 웃음을 지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놓칠리가 없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난 후 바로 다음 날 아침 찾아간 곳이다. 아침백반 2인분을 시킨다. 꽤 이른 시간부터 식사가 되는 집으로 알고 있다. 일단 08시 약간 넘어 들어갔는데 바로 차려주신다.
그래, 이게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상이렷다. |
막 구워낸 생선에 아침이 행복하다. |
쇠고기 미역국이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
커다란 쟁반 가득 반찬이 나온다. 하나하나 상으로 내리려니 “요로케 쟁반채로 두고 편히 드시요이.” 하고 나가신다. 익숙한 반찬이지만 그 가짓수에 놀라고 하나하나의 맛에 놀란다. 쇠고기미역국의 시원함, 별도로 내어주신 두 세가지의 젓갈찬까지 그대로 아침을 배부르게 시작하기에 부족함 없다. 막 구워낸 생선까지 더해지니 ‘집에서도 아침밥상으로는 이렇게 못 받아봤지… 아니, 어느 집이 아침을 이렇게나 잘 차려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상호만을 듣고도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은 이런 상을 마주했던 그 푸짐함이 주는 기억때문일게다.
2일차의 아침상 |
뭐 결론만 말하자면 일주일여를 있으며 세 번의 아침상을 차려받았다. 보리순을 넣은 들큰한 맛의 된장국도, 갈치속젓의 쿰쿰함도 그 모든것이 이 너른 땅에 온 여행자를 배불리 먹여주고 채워줬음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아침이 생각난다. 하루 내내 걸어야 할 일정을 전혀 걱정케 하지 않을 정도로 뱃심을 두둑히 만들어주던 그 백반이.
매화식당
- 위치 : 전남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204-2 / 061-536-9595
- 메뉴 : 아침백반 7,000원, 생선백반 8,000원, 육회비빔밥(특) 10,000원 , 불백 12,000원 등 (각각 1인가격)
- 영업시간 : 07:30 ~ 20:00 (새벽식사 가능, 예약시)
- 주차가능
2. 중국관
중국관 |
결국엔 해남군의 북평면은 행사코스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다만 언제라도 그 아름답고 소박한 해안을 어떻게든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히 남았다. (펜션과 리조트, 카페가 가득한 바다에 익숙한 이들이 해남군 남동쪽의 해안을 둘러본다면, 그 농어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에 처음엔 당혹스러워하다가 나중엔 큰 감동을 느낄 것이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주린배를 쥐고 찾아간 곳, 해남까지 와서 중국집이냐고 타박할 만도 하다만, 그래도 그 추위에 비에 젖은 몸을 위로하는데에 짬뽕 한 그릇만큼 확실한게 있던가?
돼지고기와 굴이 가득한 짬뽕 |
곁들여 먹기 위해 시킨 볶음밥도 수준급이다. |
이 곳의 짬뽕, 꽤나 특별하다. 굴과 돼지고기를 잔뜩 넣어 그 맛이 눅진하고 부드럽다.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매콤한 짬뽕보다는 들큰하고 구수한 고추장찌개에 더 가까운 맛이다. 풍성하게 들어간 양배추와 버섯이 뿜어내는 단 맛이 국물에 제대로 스며있다.
그 자체로 차라리 찌개라 부르는게 낫다 싶다. 바로 공기밥을 부르는 국물이었지만 면의 양이 어마어마하기에 볶음밥을 하나 시켜 나누어 먹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이 볶음밥 또한 꽤나 맛있다. 짬뽕 국물에 볶음밥을 담가 먹는 방식은 인천에서 배워온 터다. 그렇게 한 입 먹으니 흠뻑 젖은 몸이 되살아난다. 떨려오던 마디가 가라앉는다. 그대로 일정을 마무리하고픈 만복의 힘은 무섭다.
중국관
- 위치 : 전남 해남군 북평면 달량진길 29 / 061-533-1215
- 메뉴 : 짜장면 4,000원, 짬뽕 5,000원, 간짜장 5,000원, 탕수육 18,000원 등
- 영업시간 : 10:30 ~ 20:00
- 주차불가 (인근 무료 공터 주차장 있음)
3. 땅끝 정인숙 칼국수
땅끝 정인숙 칼국수 외관 |
팥칼국수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란 것을 깨닫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실 팥죽이나 팥칼국수가 그렇게 쉽게 주변에서 접하는 음식은 아닌 법이고 집에서 한 번 한다해도 확실히 특식, 별식의 개념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것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꽤 정성을 요한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내 기억엔 팥죽, 팥칼국수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었고 누구나 사랑하는 음식일거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있었다.
그래서 의외로 사회에 나가서 다른 이들의 식성을 알고 존중하게 된 이후엔 이전보다 더 멀어지게 된, 아니 자주 접할 수 없게 된 음식이 되어버렸다.
아 참, 팥칼국수를 거진 전라도 지역에서만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엔 놀랍기도 했다. 물론 내가 남도의 손맛을 가진 어머니에서 나왔고 그 손맛을 보고 자랐으니 자연스레 보고 먹고 배운것이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 나 조차도 팥죽 하면 이 남도지방에선 흔히 팥칼국수를 의미하는 것이고 우리가 아는 팥죽은 동지죽이라 따로 부른다는 것을 안 것은 이 정인숙 칼국수에서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자료를 뒤져봤던 때였다.
제대로 된 팥칼국수 한 그릇을 받아들다. |
설탕을 팍팍! 콩국수고 팥죽이고 남도는 설탕이다! |
쫄깃하고 두터운 면이 씹는 맛을 더한다. |
해남에서 팥칼국수로 가장 유명한 곳. 아니, 해남을 넘어 남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인 정인숙 칼국수. 군청의 미팅에서도 꼭 드셔보시라는 말이 나왔던 곳이다.
일정을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걸음으로 도착한 이 곳에서 위에 쓴 팥죽, 팥칼국수의 의사소통 불일치를 살짝 겪은 후에 드디어 팥칼국수 한 그릇을 받아든다. 뱃속에서부터 배운대로 콩국수나 팥죽, 팥칼국수에는 설탕이다. 그 설탕을 듬뿍 듬뿍 넣고 잘 저은 후 그 걸죽한 팥국물 부터 한 수저 입 안에 떠 넣는다.
뭐랄까, 그 팥 자체의 구수한 맛과 높은 점도, 깊이 있는 맛에 눈이 제대로 떠졌다. 내 하루의 노곤함을 보상하는 한 그릇이 이 날 이 팥칼국수라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세상에, 이만치도 진하고 구수하고 달콤한 죽이 어디 또 있던가.
칼국수의 면도 두툼하지만 쫄깃한 탄력이 살아있어 치감을 더한다. 당도 높은 국물에 취한 혀를 잡아내는 것은 중간중간 곁들이는 푹 익은 김치가 해야할 일이다.
좋은 농산물을 정직하게 제대로 쓰면 그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 진리를 이 팥 국물에서 느낀다. 부른 배를 부여쥐고 잠시 쉬며 많은 이들이 인생 팥칼국수라 칭하고 팥죽을 싫어하는데 여기와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는 글들을 읽어본다. 과연 그럴만 하다.
이제 어디에서 맘 편히 팥칼국수 먹을 수 있으려나…
땅끝 정인숙 칼국수
- 위치 : 전남 해남군 현산면 현산북평로 805 / 061-532-8448
- 메뉴 : 팥칼국수 7,000원, 해물칼국수 8,000원(2인이상 주문가능), 콩국수 8,000원(하계), 동지죽 8,000원(동계) 등
- 영업시간 : 10:00 ~ 19:00
- 주차가능
by 장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