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매장의 비밀
강남역 지하상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지하철역을 향하고 있거나 버스정류장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바쁜 발걸음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마무리하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출근할 때보다 왠지 모르게 밝아 보인다.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바로 지하상가 속 수많은 매장들이다.
다들 도시에 살다 보면 지하상가에 한 번쯤 들어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강남역, 영등포역, 수원역, 부평역 등 지하상가 매장을 들어가 보면 대개 패션과 관련된, 특히 여성의 패션과 관련된 매장들이 굉장히 많다.
그렇다면 지하상가 매장에 여성과 관련된 매장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상가에는 여성이 많아서 그런가? 혹은 여성이 남성보다 쇼핑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일까?
오늘은 지하철역의 지하상가에 숨겨진 비밀들에 대해 살펴본다. 왜 여성 패션과 관련된 매장이 많은지, 왜 바깥엔 싼 물건들이 많은지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남성과 여성의 쇼핑 패턴 차이
남성과 여성의 구매패턴 차이 / 출처 : 아이보스 |
우리는 본격적인 글에 들어가기 전, 남성과 여성의 구매 패턴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쇼핑을 하는가?
남성과 여성은 일반적으로 ‘쇼핑’ 이라는 행위를 다르게 인식한다. 남성들에게 쇼핑은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일 뿐이며, 목적에 맞는 물건만 구매하기 때문에 쇼핑 체류시간이 매우 짧다. 실제 패션 매장에서 남성고객이 많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반면 여성에게 쇼핑은 일종의 ‘즐길거리’ 다. 앞서 남성과 달리 여성은 쇼핑을 할 때 다양하게 검색하고 자신에게 물건을 맞춰 보며 만약 내가 이 물건을 샀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하나의 물품을 사기 위해 무엇보다 꼼꼼히 체크하기 때문에 남성과 달리 쇼핑 체류시간이 매우 길다.
즉, 남성과 여성은 쇼핑의 목적 자체가 물건 구매와 취미생활, 즐길거리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쇼핑매장에서의 체류시간 자체가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한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난다. 남성에게 쇼핑의 과정이 번잡하다면 남성은 구매하는 행위를 중단한다. 남성이 중요시하는 건 구매를 했다는 것이지 구매를 하면서 얻는 과정이 아니니까. 따라서 남성용 매장에서는 최대한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매장을 구성한다.
반면 여성은 ‘장바구니’ 나 ‘위시리스트’ 를 자주 활용한다. 우리가 온라인 쇼핑몰이나 화장품가게에 가면 ‘바구니’를 볼 수 있다. 이는 여성들의 구매패턴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만 넣어두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꼼꼼히 따진 후 구매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매장에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이유는 소비에 대한 남성과 여성 간 인식 차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지하상가엔 왜 여성매장이 많을까?
과거 지하상가는 ‘휴대폰 개통’의 메카였다. 지금의 패션 매장보다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휴대폰을 개통해 주는 대리점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휴대폰 대리점을 오기 위해 굳이 지하상가의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하상가의 상권은 낙후되었다. 사람들이 굳이 바쁜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휴대폰을 개통할 사람이 매우 많을까?
지하상가의 상인회는 수많은 고민 끝에 휴대폰 매장의 비중보다는 다른 매장의 비율을 더 두면서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었다. 무엇을 팔 것인가? 먹을 것을 팔자는 의견이 나왔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 만큼 사람들이 간단히 먹을 것을 사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먹을 것은 대개 ‘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음식 냄새가 잘 빠지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화재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
액세서리와 사무류를 팔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지하상가라는 이미지는 지상상가와 달리 채광이 거의 없고 과거 휴대폰매장이 많던 낙후된 이미지 때문에 값비싼 액세서리를 사려는 사람도, 그 곳에서 금과 은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상인회는 문득, 앞서 필자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남성과 여성의 쇼핑패턴’ 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매우 구체적으로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남성을 많이 봤는지, 여성을 많이 봤는지에 대해서 정도는 떠올렸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매장에 체류한 시간은 여성이 압도적으로높았고, 결론적으로 지하상가는 남성보다는 여성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지하상가는 여성들이 제일 많이 구매하는 제품을 위주로 지하상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결론을 세우게 된다.
결국 종합한 결과, 패션, 즉 신발이나 의류, 액세서리 등과 관련된 물건들이 많아야 여성들이 상가에 체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지하철역 지하상가에는 휴대폰 매장보다 여성매장의 비율이 더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 전략은 지하상가가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일종의 넛지 전략이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여성들이 매장에 체류하기 위해서 매장 내에서도 은근한 찌르기를 통해 고객들을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단순히 여성매장이 많은 것으로는 지하상가가 활성화되는 것을 기대하긴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갔을까?
동조, 3의 법칙 : 3명 이상이 매장 밖에 서 있게 하기
동조 이론이란, 개인이 집단의 압력에 의해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개인은 독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국가, 계층, 동호회, 가족 등 다양한 집단 내에 소속되어 있다. 대개 개인은 집단 내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행동을 판단하고, 집단과 개인의 행동이 맞지 않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동조 이론의 대표적인 실험은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1907~1996)가 실시했던 ‘선분 실험’ 이다.
솔로몬 애쉬의 선분 실험 / 출처 : 네이버 백과 |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하나의 선이 그려져 있는 카드를 받은 후, 길이가 다른 선분 세 개가 그려진 또 다른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선분 중 길이가 같은 선분을 고르라는 질문을 받는다. 실험실에는 피실험자를 포함한 또다른 6명의 피실험자들이 있었다.(물론 이 사람들은 결과도출을 위해 고의로 오답을 이야기하라고 사전에 모의된 사람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총 7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선분을 짝 맞추게 되는데, 참여자 한 명 이외 다른 여섯 명은 실험 도우미로 고의적으로 오답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실험자가 정답을 이야기해야 하는 방식이다.
실험 결과, 혼자 정답을 이야기한 정답률은 99%인데, 집단 상황에서 정답률은 무려 36%가 감소한 63%인 것으로 확인됐다. 종이가 갑자기 바뀌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답률은 왜 이렇게 극적으로 감소했을까? 이는 실험에서 6명이 오답을 이야기한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피실험자는 오답을 이야기하는 6명을 보며 ‘어? 이게 맞는 거 같은데… 내가 틀린 건가?’ 라고 내적 갈등을 하며 옳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도 6명이 고른 답으로 가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념과 반하는 답변을 선택한다.
애쉬는 후속 실험을 통해, 혼자나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는 동조 현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협력자가 3명일 경우 동조 현상이 가장 강하게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동조 이론을 기본으로 한 법칙 중에서 ‘3의 법칙’ 이라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3명 이상이 똑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행동을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명 이상이 하늘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이처럼, 사람은 사회적 상황과 맥락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대가 설령 ‘나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사람이라고 자부할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신도 어느 순간 집단의 상황에 동조할 상황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동조는 절대 무 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사회적 상황에 동조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명 이상이 ‘매장 밖’ 에 서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3명이 서 있는 모습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그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2~3명이 매장 밖에 있도록 하기 위한 넛지 전략을 세운다. 매장은 사람들이 매장 안이 아닌 밖에 서 있도록 하기 위해 옷 중 예쁜 옷들을 진열한 뒤, 할인율을 표시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을 제시하는 넛지 전략을 사용했다.
이것은 단순히 할인으로 인한 효과라기보다는 할인을 통해 몇몇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를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매장에 들렀다 가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구매행위를 유도하는 넛지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즉, 3명의 사람들을 세워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3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와 물건을 고르게 하는 넛지 전략인 것.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하다가 몇몇 사람들로 인해 방향을 선회해 구매를 고민하고 있던 것이다. 이 이유 때문에 지하상가에는 싼 가격이 명시되어 있는 옷들이 안이 아니라 밖에 진열되어 있다. 또한 옷을 꼼꼼히 체크하는 여성의 특성상 밖에서 옷을 보면 안으로 들어와서 입어 보면서 다른 옷들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동선이 생김에 따라 여성들의 쇼핑 패턴을 이용한 또 하나의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바쁜 시간이 아니라면 여성은 지하상가 내에서 또다른 매장을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여성들은 하나의 매장만을 들르지 않고 다양한 매장을 들르는 쇼핑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매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장의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가지고 온 전략으로 통하게 되었고 많은 지하상가에서 애용(?) 하고 있는 전략이다.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 행동경제학과 사회심리학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