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창업하면 안 된다: 많은 초짜 창업자가 모르는 창업의 기본 5가지
내가 학교에서 하는 일 중 꽤 비중이 높은 하나는 창업을 돕는, 더 정확하게는 창업의 마음가짐부터 창업한 뒤에 잘 설 수 있을 때까지를 (도우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돕는 일이다. 5월이 창업지원 관련한 성수기였다. 세금에서 유발된 여러 창업 진흥 프로그램이 대규모로 출몰하는 시기다. 그래서 신규로 창업을 하겠다는 상담이 많았다.
창업 지원을 업무로 하는 사람으로서, 또 가끔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꽤 전에 선후배들과 창업 또는 창업 비스무레한 것을 해 본 경험자로서, 한 말씀 드리면… 놀랍고 훌륭한 분들도 더러 계시지만, 창업을 하시겠다고 오는 초짜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1.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만능 백종원 짤 / 출처: SBS |
막연한 기대와 추측이 난무한다. 잘될 것 같다는 기대, 나와 내 주변의 아주 조그만 문제가 남들도 모두 가진 문제며 그 남들 숫자가 적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그거다. 한 번이라도 창업 강좌 동영상을 봤거나, 창업101 강의를 제대로 들었거나, 책방에 서서 창업에 관한 책을 훑어보기만 했어도 해봤을 논리적/산술적 사고를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뭘 하시겠다는지, 어떻게 하실 것이지, 뭘 기대하는지 들어보면 ‘이분이 자기 전에만 생각하셨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전에 생각난 것을 바로 적고 아침에 아닌 건 줄을 그어야 하는데 자기 전에만 계속 생각하고 그게 길이요 진리라고 착각한다. 그다음 아침에 줄 그은 거 다 빼고, 나머지만 가지고 소위 말하는 시장 조사를 해보자.
우선 고객이 될 가능성이 100%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들 먼저 만나자. ‘이런 것이 필요해?’가 시장 조사가 아니고 ‘이런 거에 얼마 낼 수 있어?’가 시장 조사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필요할까?’ 이걸 물어봐야 한다. 그 아이템이 필요하지만, 사업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남들은, 그 아이템에 꽂힌 나보다 훨씬 객관적이다.
그리고 그 100%인 분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다면, 나중에 우리가 ‘돈 들여’ 설득해야 하는 위의 ‘다른 사람’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한다. 여기서 옳은 질문은 ‘이런 게 있다는 데 얼마랍니다. 어떠실 거 같아요?’다. 그리고 모든 답에 ‘왜요?’를 물어봐야 한다.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내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객관적 느낌을 가져야 한다.
2. 진짜 시장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위 시장 조사는 말로 하는 건데, 말은 말이고, 예상은 예상이고, 희망 사항은 희망 사항이다. 실제 사업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은 생각나자마자 시장에 뛰어 들어가 말이 아닌, 조그만 실행을 먼저 한다.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 생각 대신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구상한 아이템이 통할지 진짜 ‘팔아봐야’ 한다.
뭐라도! 누구에게라도! / 출처: tvN |
물리적인 특별한 제품인 경우, 팔아볼 수 있는 시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초짜들의 사업은 남이 만든 물건이나 서비스를 중계하거나, 또는 가내 수공업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걸 준비해서 단 한 명이라도 진짜 고객에게 팔아봐야 한다.
직접 안 해보고도 할 수 있는 사업은 이미 레드오션인 곳밖에 없다. 기존의 시장 플레이어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른 시장 플레이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먼저 봐야 한다. 나도 그걸 할 수 있는가? 그걸 못하면 난 그 시장의 플레이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이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나의 조그만 경쟁력인 거다.
3. 돈이 얼마나 들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원가에 대한 개념이 없다. 사실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원가 산정인데 초짜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사업 아이템이 하나기 때문에 기성 사업보다 원가 산정이 쉬울 수도 있고, 아직 사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적인 원가 산정을 해보면 된다. 위 시장 조사나 시장 테스트 결과가 꽝이면, 원가라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다. 시장 조사 결과 어렴풋이 시장의 규모가 나오면 이제 원가를 생각해보자.
모든 원가에는 크게 나누어 고정비와 판매량에 연동되는 비용이 있는데, 정말 큰마음 먹고 퉁치지 않으면 고정비 부분은 어렵다. 고정비에는 인건비, 임대료, 시스템개발/유지보수비, 마케팅비, … 등등이 있는데 초짜들은 그 금액이 얼마인지 모른다. 조사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조사가 매우 어려운 것도 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예측해야 한다.
또 고정비용에 자기 월급을 계산하지 않는 초짜들 많다. 대표나 창업자들이 월급을 못(안) 가져 간다는 것은 일단 슬픈 일이고. 본인 또는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정비에 최저임금이라도 계산을 해야 한다.
판매량에 연동되는 비용은 대체로 판매량에 따라 달라진다. 즉 처음에는 잘 안 팔릴 것이므로 높게 계상해야 한다는 거다. 유통에 따른 비용도 계산해야 한다. 많은 초짜는 자기가 발품 팔아서 구할 수 있는 가격과 온라인의 가격 차이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데, 대체로 그런 사업은 실패로 결론 난다. 누가 봐도 경쟁자가 있는 시장의 마진은 이미 충분히 박하다. 내가 해도 그럴 것이다. 그 박한 마진 와중에 유통이 가져가는 돈을 내가 먹겠다고 하면 시장 접근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4. 내가 물건을 판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적다
내가 물건을 판다는 것은 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이 팔리면 많이 만들어야 한다. 많이 팔리면 만들 물건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들거나,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은 내가 원하는 만큼 만들 재료를 공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고민은 나중에 사업이 잘되면 약간 즐거운 고민인데… 초짜들은 초기에 얼마 안 되는 시장에서도 자기가 시장에서 ‘얼마 안 되는’ 재료를 살 때나 ‘시장이 잘 모르는’ 완성된 물건을 팔 때나 모두 ‘을’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내가 재료를 살 때나, 완성품을 팔 때나 시장은 나를 위해 뭔가를 준비해놓고 기다리지 않는다.
모든 상품은 팔고 나면 서비스 이슈가 발생한다. 소위 말하는 CS 전화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또 반품/교환/수리를 준비해야 한다. 이 부분이 많은 회사를 시장에 진입하고 얼마 안 돼서 망하게 하는 이유이다. 이 모든 비용은 원가에 반영되어야 하며, 지금으로서는 발생할 수 없다고 믿거나, 발생하면 안 되는 일들을 나열하고 미리 작전을 마련해야 한다.
5. 투자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투자자는 Series F(Family, Friends, Fool)를 뺀 나머지 전부를 의미한다. 정부 지원이든, 엔젤이든, VC든, 혜성처럼 나타난 김밥 할머니든…
어쨌든 당신과는 다 상관없는 이야기다 / 출처: 경향신문 |
초짜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유니크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업계획을 듣는 투자자(심사역)들에게 돈이 좀 될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본 기억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열 손가락을 다 쓰기가 어렵다. 구글에 잘 검색해보라. 이미 그 아이디어는 누군가 찝쩍거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아주 잘 봐야 한다. 저녁에 샘솟는 아이디어를 잘 적어두었다가 아침에 뽀송뽀송할 때 검색해봐야 한다.
워낙 신박한 아이디어란 별로 없기 때문에, 놀라운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면, 투자자들은 사람에 집중하는 편이다. ‘진-정-성’ 그걸 가장 많이 본다. 말이 좋아 진정성이지 쉽게 이야기하면 ‘이 인간은 이 사업이 실패해도 뭔가 다른 걸 해서, 내 돈을 떼어먹을 것 같지는 않네…’ 이런 거다. 그러려면 위 1–4를 많이 해봐야 한다. 진정성이란 위 1–4를 진짜 해보고 피드백을 받아보는 과정이다. 또 ‘진정성’일부는 대화의 기술 이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성을 확보한 뒤에도, 투자자들은 위 1–4에 대한 증거를 원한다. 증거란 숫자이다. 스티브 잡스가 눈앞에 나타나서 뭘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면, 맨정신의 투자자들은 100% 숫자로 보여달라고 한다. 혹 틀릴 수는 있어도, 그 숫자가 1–4에 대한 고민의 깊이, 즉 ‘이 자가 제대로 하는구나’ 하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No numbers, No money다. 산수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내 돈을 맡길 용자는 없다.
결론
간혹 신문에 나오는 멋진 사업 시작과 투자받은 이야기는… 그냥 남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로또 당첨된 사람 주변에서 본 적 있나? 그런 거다. 또 누가 봐도 뭐든지 잘하는 천재 소년 주변에 좀 있다. 그들은 우리와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의 리그는 따로 있다. 그냥 친하게 지내면 된다. 우리는 그냥 우리다.
사업을 하려면 날 더울 때 아이스박스에 생수를 담아서 팔아보든지, 비 오는 날 지하철에서 우산을 팔아보든지, 뭐라도 plan-do-learn 사이클을 진짜 시장에서 한번 해보고 하자.
물론 그렇게 해서 시작한 사업의 성공과 실패 여부는 좀 다른 이야기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하고 시작하자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주변의 백만가지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성공할 거라는, 또는 실패할 거라는 판단 자체는 매우 어렵고 잘 맞지도 않는다. 다만 대부분 사업은 실패하기 때문에, 일단 ‘그 사업은 안 돼!’라고 하면 90% 이상의 확률로 정답이다.
현 국민대학교 교수. 70년대에 하루 종일 땜질을 하면서 전자공학을 하겠다고 생각하다가 80년대 초에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것을 보고 세상이 열림. TCP/IP 프로토콜 등 지금은 당연한 많은 것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상품화함. 90년대 후반에는 리눅스로 스마트폰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했음. 18년동안 교수를 하면서 산업체에 의미 있는 과제와 연구를 수행. 한중일 공개소스 포럼의 인력양성분과,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자 양성을 위해 노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