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부사장된 대기업 임원이 3년 만에 사표내고 벌인 일
고액 연봉, 남부러울 것 없는 사내 복지를 자랑하는 대기업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존재인데요. 신입사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1년이 채 안 되는 기업이 수두룩한 요즘, 신입부터 시작해 무려 26년간 한 직장에 일하며 대기업 부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인물이 갖은 차별을 감내해가며 오른 대기업 부사장 자리를 3년 만에 제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것인데요. 주변의 우려 섞인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가 회사 밖을 제 발로 나올 수 없던 이유는 무엇인지, 또 현재 그가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사진출처_조선일보/유퀴즈온더블럭 |
사진출처_국제신문 |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는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출연했는데요. 최 씨는 삼성그룹 최초의 공채 출신 여성 부사장으로, 일하는 여성을 앞세운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베스띠벨리), 자유를 새로운 관념에서 바라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 등의 히트작을 보유한 카피라이터로 광고 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본래 그녀의 꿈은 카피라이터가 아닌 기자였는데요. 한 신문사의 최종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우연히 마주한 광고 회사 모집 공고에서 카피라이터라는 문구를 보고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끝에 ‘라이터’가 붙으니 막연히 글 쓰는 일이겠거니 하고 지원한 것이 카피라이터로서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사진출처_유퀴즈온더블럭 |
사진출처_유퀴즈온더블럭 |
최 씨의 직장 생활은 첫해부터 순탄치 않았는데요. 그녀는 “대학에선 분명히 남자와 여자는 같다고 배웠는데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같지 않았다”라며 “학교에서는 ‘같다’라고 배운 것이 현실에선 ‘같아야 한다’라는 당위였다는 것을 회사 다니며 하루하루 익혀갔다”라고 전했습니다. 예컨대 부사장 직위로 회사 밖을 나온 그녀가 회사를 다닐 당시 불렸던 첫 칭호는 ‘미스 최’ 였는데요.
분명 카피라이터로 입사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또 다른 업무는 보리차 끓이기와 책상 청소로 남자 동기보다 월급도 더 적었을뿐더러 직급 연차도 3년가량 늦었습니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사할 땐 남자 이상의 능력이 있다고 해서 뽑아 놓고는 남자 동기는 호봉을 3급, 나는 4급으로 인정해 줬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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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각종 차별을 비롯해 입사한지 다섯 달도 안돼 선배로부터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으니 이쯤에서 관두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조언을 들었음에도 오히려 최 씨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제작 회의에서 회사 사람들과 의견을 다툴 때 혹여 상대방의 머릿속에 걸레를 든 본인의 모습이 연상될까 싶어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선배들 책상을 닦아 놓고 차를 끓여 팀에 가져다 놓는가 하면, 조직 내 몇 안 되는 여자로서 자신이 실수를 했을 때 혹여 개인의 실수가 ‘여자들은 다 그래’라고 비칠까 더욱더 동동거리며 살았다고 하는데요.
사진출처_유퀴즈온더블럭 |
사진출처_서울시50플러스재단 |
조직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 덕분에 그녀는 입사 16년 만에 상무 자리에 올랐으며, 지난 2009년 입사한지 26년 되던 해에는 그룹 정기 인사에서 첫 여성 부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간 그녀가 이끄는 조직이 대한민국 광고대상, 런던 국제광고제, 칸 광고제 등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 굵직한 광고 제의에서 받은 상만 해도 무려 32여 개에 달하는데요.
사진출처_유퀴즈온더블럭 |
그렇게 각종 차별과 편견을 딛고 마침네 대기업 임원 자리에 오르게 된 그녀는 돌연 3년 만에 사표를 내게 됩니다. 그녀가 이러한 중대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조직을 위해서였는데요. 그녀는 “2000년대 초반 영국 토니 블레어 수상 시절 여성 교육부 장관이 ‘이 막중한 임무를 계속 수행하기에는 나는 내가 무능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임기 중에 스스로 내려왔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이 사건이 참 감명 깊게 다가왔다”라며 “어떤 일을 하다가 물러날 때 이것보다 더 멋있는 변이 있을까 싶더라”라고 밝혔습니다.
사진출처_제일기획 매거진 블로그 |
그녀 역시 광고업계에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본인 능력의 한계를 마주하고, 자신보다 디지털을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하는데요. 최 씨는 “조직이 겪는 가장 큰 비극이 그 자리가 요구하는 역량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자리에 계속해서 앉아있는 것이라고 오래도록 생각해왔다”라고 퇴사를 하게 된 연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후배들의 그녀를 위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는데요. 최 씨는 “퇴직할 때 식당에서 후배들이 환송회를 열어줬다”라며 “당시 후배들이 장미 한 송이씩을 제게 안겨줘 집에 갈 때 장미 200송이를 들고 갔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녀는 임원으로 재직 당시 일 때문에 야근한 적은 없어도 후배들에게 축하카드를 쓰느라 야근한 적이 많았다는데요.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가 되기 위해, ‘저 선배라면 믿고 같이 가볼 수 있겠다’라는 확신을 후배들에게 주기 위해 애써 온 결과가 인정받는 것 같아 환송회 당시 영상을 볼 때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사진출처_공감신문 |
사진출처_한국일보 |
그렇게 오래도록 몸담은 직장에서 사표를 낸 뒤 최 씨가 벌인 일은 책방을 여는 것이었는데요. 2012년 사직서를 제출한 뒤 4년간의 시간이 흘러 그가 책방을 열겠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선언했을 당시 이를 들은 모두가 만류했습니다.
‘지금 나이에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다’, ‘요즘 누가 책방에서 책을 사느냐’ 등 갖가지 이유를 댔지만 그녀의 결심을 말릴 순 없었는데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며, 그간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이 바로 책방 운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_유퀴즈온더블럭 |
그녀의 책방은 독특한 책 분류법으로도 유명한데요. 그저 문학, 소설, 자기 계발서, 문제집 등으로 책 종류를 구분하는 일반 서점과 달리 그녀의 책방에 들어서면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들에게’, ‘불안한 이십 대 시절 용기를 준 책’ 등 최 씨 주변에 믿음직한 이들이 꼽은 ‘추천서가’가 눈에 띕니다.
책마다 해당 책을 추천한 이들의 이름과 추천 이유가 적혀 있는데요. 최 씨는 “사람들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 있지만,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라고 설명하면 구미가 당길 것 아닌가”라고 책방의 독특한 분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사진출처_최인아 페이스북 |
이외 그녀는 책방을 찾아주는 독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에도 나서고 있는데요. 책방을 연지 1년 만에 시작한 북클럽 회원들에게 매달 직접 고른 책을 추천 이유가 담긴 편지와 함께 발송합니다. 그녀에게 매달 편지를 받는 이들이 재작년 기준 570여 명에 이르죠. 최 씨는 “무슨 책이 올지 북클럽 회원들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책방과의 신뢰가 없으면 힘든 일”이라며 “독자와 작가가 함께 얘기 나누는 모임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진출처_유퀴즈온더블럭 |
코로나19 이후 최 씨는 책방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는데요. 그는 요즘 심리적으로 힘들지만 병원을 찾길 망설여하는 이들을 위해 일대일 마음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하죠.
지금까지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해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뒤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돌연 3년 만에 회사 밖을 나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최인아 씨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시대의 흐름을 읽는 카피라이터에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책을 추천하는 책방 지기로 변한 그녀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