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신입 일상’ 공개되자 “이게 사람 할 짓이냐”라며 난리 난 인기 직업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PD는 업무환경이 그나마 양반인 편에 속하는데요. 방송국에 직접 고용된 정직원 형태가 많아 야간 수당, 초과 근무 수당 등 각종 수당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워라벨과 동떨어진 일상을 살기로 업계 소문이 자자합니다.
특히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10년 가까이 아침 뉴스 방송에서 일하다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둔 A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에서도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일을 대신 해줄 인력이 없다 보니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일을 다 마치고 퇴근할 때쯤 돼서 상사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보고하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가와 같은 프로그램을 맡았던 C 작가는 재작년 새벽 출근길에 빗길에 차량이 미끄러져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 다른 운전자가 대신 119에 신고를 해준 덕에 경찰차와 소방차가 사고 현장에 출동했는데요. 그런데 C 작가가 향한 곳은 병원이 아닌 방송국이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아픈 것보다 방송에 피해를 줄 순 없다는 생각에 몸보다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었다”라고 밝혔는데요. 현재 A 작가와 C 작가는 코너가 폐지됨에 따라 해고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된 지 오래임에도 방송가의 ‘밤새우는 게 일상, 휴일 없는 직업’이라는 선입견은 왜 타파되고 있지 못한 걸까요? 원래 방송 제작에 몸담은 직업군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별 소용이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방송산업의 특성상 근로시간이 일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방송업을 비롯한 프로그램제작업이 오래도록 속해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지난 2018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기존 26개에서 5개로 대폭 줄었고 이 과정에서 방송업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방송사와 프로그램 외주 제작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거듭된 고민 끝에 근로기준법에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방안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예컨대 예능이나 드라마를 제작할 시 방송에 투입될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면서 촬영한다’고 공언하는데요. 그러나 정작 계약서를 보면 ‘주 52시간 근무’가 아닌, 52시간을 3개월로 환산한 ‘3개월간 624시간’이 적혀 있는 식이죠. 물론 여기엔 일일 노동시간을 비롯한 촬영 현장 이동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연출로 일했던 김 씨는 하루 15시간씩 일을 했고, 한 주에 한 번씩은 밤샘 촬영을 했는데요. 그녀는 “밤샘 촬영이 끝나고 동이 틀 때쯤 퇴근하면 다음날 출근 전까지 잠깐 시간이 나는 데 그 ‘텀’이 유일한 휴일”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김 씨는 “방송업에 종사하면서 월 400시간 이하로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물론 노력해보려는 의지조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파 3사 방송국은 재작년 6월부터 표준 근로계약서 의무 작성을 비롯해 근로기준 법상의 노동시간 준수, 표준임금 기준 마련 등을 골자로 협의 중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지난 2019년 하반기 즈음 합의안이 나왔어야 하지만 협의가 시작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어느 것 하나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 지난 22일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 지부를 비롯한 방송국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에게 하루 14시간에서 16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면서 노동기본권을 무시할 순 없다”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는데요. 법적인 제도도 마련돼 있을뿐더러 곳곳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방송국은 어쩔 수 없어’라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앞으로 방송국 노동자들이 건전한 노동환경에서 일 할 수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