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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축구’ 낌새조차 내비치지 못한 이란, 더는 조롱거리가 되지 않아야

OSEN

이란은 아시아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이 가장 높은 나라다. 20위(10월 기준)로, AFC(아시아축구연맹) 46개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올라 있다. 아시아 맹주로 손꼽히는 한국(28위)을 비롯해 일본(24위)과 호주(38위)보다 순위가 높다.


이란의 강세는 2022 카타르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최종 예선에서 , 이란은 A조 수위로 본선 티켓을 따냈다. 한국은 그 뒤를 이어 조 2위로 10회 연속 본선 티켓을 획득하는 위업을 이뤘다.


국가별 역대 전적에서도, 한국은 이란에 뒤져 있다. 10승 10무 13패로 열세다. 아시아에서, 이란은 아주 미세하게 앞선 호주(9승 11무 8패)와 함께 한국에 우위를 보이는 두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이란이 자랑하는 특성은 수비 축구다.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으로 골을 노리는 전술에 능하다. 선제골을 뽑으면 지키는 데 치중한다. 이때 구사하는 전술이 ‘침대 축구’다. 그라운드에 누워 시간을 보냄으로써 상대를 초조한 상태에 빠뜨리려는 심리 전술이다.


“전쟁은 속이는 방법이다[兵者詭道也·병자궤도야]”라고도 한다(『孫子兵法』 「始計篇」). 그러나 침대 축구는 전술이라기엔 치졸하다. 장기적으로, 한 팀이 운용하는 전술은 축구 발전에 작게라도 도움을 줘야 한다. 이 맥락에서, 침대 축구는 백해무익하다고 할 만하다. 침대 축구가 일정 수준에 오른 팀들로부터 배척받을 만큼 악명이 높은 까닭이다.


이란이 수비 축구의 뒤에 숨어 비장의 무기처럼 구사하는 침대 축구는 아무래도 실력 차가 별로 없을 때 효과가 있다. 침대 축구가 제대로 위력을 나타내려면 선취 득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상대하기 힘든 강력한 상대를 만나 오히려 선제골을 내주면 침대 축구를 써 볼 기회조차 찾기 어려운 게 아킬레스건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드러난 이란의 성적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침대 축구가 나타난 2010년대 이후, 이란은 본선 마당에선 맥을 못 췄다. 2014 브라질 대회에선 1무 2패로, 2018 러시아 대회에선 1승 1무 1패로 모두 그룹 라운드 관문을 뚫지 못했다. 물론, 1승(對 모로코 1-0)을 거둔 1경기를 뺀 나머지 5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두 대회에 이어 포르투갈 출신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다시 지휘봉은 잡은 2022 카타르 대회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까? 잉글랜드와 만난 첫 경기 결과는 ‘역시나’였다. 예상했던 대로 장기인 침대 축구는 시도할 낌새조차 보이지 못했다. 아니, 역대 최악의 결과 앞에서 망연자실한 케이로스 감독과 그 구성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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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로스가 지휘한 이란, 각종 참패의 기록 앞에서 망연자실

지난 21일(이하 현지 일자)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월드컵 그룹 라운드 B조서, 이란은 잉글랜드에 2-6으로 크게 졌다. 전반 34분까지 밀집 축구로 버티다가 35분 첫 골을 내주며 균열이 간 이란 수비는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며 참패의 쓴맛을 봤다.


아무리 상대가 ‘축구 종가’ 잉글랜드라고 해도 쉽게 내다볼 수 없었던 이란의 붕괴였다. 앞선 두 대회와 대비하면 더욱 그렇다. 2014 대회 때 4실점(1득점), 2018 대회 때 4실점(2득점) 등 모두 8실점(3득점)했던 이란이건만, 이번 대회에선 ‘자린고비 축구’와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이란의 아픈 상처에 더욱 쓰라림을 안긴 건 불명예 기록이었다. 참패 기록은 찢어진 상처에 끼얹어진 소금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이란의 골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런 이란이 한꺼번에 여섯 번이나 골문이 꿰뚫리고 말았다. 이란 축구 역사상 두 번째 치욕이었다. 72년 전인 1950년 5월 28일 이스탄불에서, 터키와 친선 A매치를 치러 1-6으로 대패했을 때가 6실점의 첫 기억이었다.


반면, 잉글랜드는 메이저 대회에서 두 번째로 6골을 터뜨렸다. 2018 대회 때 그룹 라운드(G) 파나마전에서 올린 6-1 대첩을 4년 만에 재현했다.


이란은 비록 2골을 뽑아냈을지라도 다득점 경기의 제물이 됐다. 양 팀이 기록한 8득점은 역대 통산 다득점 경기 순위에서 공동 10위에 해당한다. 1934 이탈리아 대회 16강 이탈리아-미국전(7-1)을 비롯해 지금까지 9경기에서 8골이 터진 바 있다.


이란은 또한 잉글랜드 득점자들이 빛나는 데 희생양이 됐다. 특히, 첫 골을 잡아내 잉글랜드 대승의 기폭제가 된 주드 벨링엄에게 이란은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벨링엄은 금세기에 태어나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골을 터뜨린 첫 번째 선수의 영예를 안았다. 벨링엄은 또 마이클 오웬이 1998 프랑스 대회 때 세운 잉글랜드 최연소 득점(18세 190일) 기록에 다가서며 두 번째 나이 어린(19세 145일) 득점자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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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2골을 뽑아낸 부카요 사카를 비롯한 잉글랜드 득점자 5명(벨링엄, 라힘 스털링, 마커스 래시퍼드, 잭 그릴리시) 모두는 월드컵에서 첫 골을 기록하는 기쁨을 누렸다. 2골을 잡아내며 응수한 메흐디 타레미 또한 월드컵에서 처음 골을 기록했다는 점이 이란엔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하루 뒤인 22일, 그룹 라운드 C조 개막전에서, 이란과 함께 서남아시아 양강으로 손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에 2-1로 역전승을 거두는 초반 최대 격변을 일으켰다.


첫판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이란이 남은 두 경기(웨일즈, 미국)에서 선전해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아울러 침대 축구로 말미암은 오명을 씻어 내는 데 힘썼으면 한다. “침대 축구 빼면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는 이란”이라는 조소를 더는 들어서야 하겠는가.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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