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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노컷뉴스

'2차 가해 비판' 이소정 앵커 하차론 나올 이유 있나

소설 문장 인용 故 박원순 성추행 사건 피해자 2차 가해 비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중립성+고인 명예훼손…앵커 교체하라" 반발

성폭력 사건들마다 앵커 논평 멘트 있었지만 '하차론' 번진 적 없어

'피해자 중심주의'는 언론에 요구되는 기본적 역할과 의무

민언련 측 "정치적 입장·생각 다른 게 공공성과 공익성 위배는 아냐"

언론학자 "국민청원 게시판, 진영 논리 나뉘어 이해관계 관철 수단 되기도"

"피해자 중심의 멘트 전체 방향에는 동의…단정적 뉘앙스는 경계해야"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노컷뉴스

(사진=방송 캡처)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 형태의 가해였다."


KBS 이소정 앵커의 멘트를 두고 뒤늦게 하차론까지 대두됐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명예를 훼손했고,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앵커는 지난 16일 KBS '뉴스9'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보도 이후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개한 문장에 대해 "누군가의 죽음이 살아남은 이에겐 돌이킬 수 없는 가해가 된다는 의미"라며 "이 문장이 수없이 공유됐다는 건 그만큼 공감하는 마음이 많았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했다.


해당 문장은 이미 박 전 시장 사망과 관련해 SNS에서 많은 공감을 받아왔다. 박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을 남기고 사망한 여파가 피해자에게 신상털기, 모욕 등 2차 가해로 고스란히 돌아온 탓이다.


이 앵커는 "진실의 무게는 피해자가 짊어지게 됐고, 피해자 중심주의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려하던 2차 가해도 범람하고 있다. 4년간 뭐하다 이제 와 그러냐는 한 방송인의 발언이 논란이 됐고, 한 현직 검사는 팔짱 끼면 다 성추행이냐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했다"고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현상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피해자의 고통을 염두에 두고 진실을 찾아가는 것.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 아닐까 싶다"는 당부의 말로 멘트를 마무리했다.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를 문제 삼은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KBS '뉴스9'의 이소정씨는 공영방송 앵커 역할을 함에 있어 현재 경찰에서 확인 중인 사안을 소설의 한 문구로 시청자를 확증 편향에 이르도록 해 방송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사 중인 사안을 마치 결론이 난 것처럼 방송해 사법부의 판단에 이르기 전에 결론을 내리고 고인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멘트 이전 보도에 대해서도 "박 전 시장 뉴스에서 '피해호소인'의 입장을 첫 꼭지에 다뤄 모든 사안이 결론이 난 것처럼 시청자가 생각하도록 보도했다"고 편향성을 강조하며 앵커 교체를 요구했다.


이 같은 논평식의 앵커 멘트는 비단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도 '미투' 운동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판결 등 굵직한 성폭력 사건들을 전하면서 '뉴스룸' 앵커브리핑 코너에서 이를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앵커 브리핑이 '하차론'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이하 언론노조 성평등위)는 지난 14일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관련 언론 보도에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했다.


언론노조 성평등위는 "언론의 책무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그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라며 "'고인에 대한 예의'를 명분으로 피해자의 호소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회는 또 다른 약자들을 침묵과 고통 속에 몰아 넣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보도에서 피해자 입장을 첫 꼭지에 다루는 것 역시 공공의 이익을 저버린 부적절한 보도 행태로 보기 어렵다. 언론노조 성평등위 성명문에서 보듯이 '사회의 성인지감수성을 높이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길을 찾고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소정 앵커의 멘트에만 이렇게 강력한 하차 여론이 생겨난 것일까. 미디어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 성향에 따라 편향적 여론 형성이 보편화된 지점을 꼽는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관계자는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가운데 시민들은 유튜브나 SNS 등 다른 공간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맞는 정보들만 취사 선택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여론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 혹은 찬성하는 행위도 굉장히 거센 집단행동으로 나타난다. 서초동 집회와 태극기 집회만 봐도 그렇다"면서 "과거보다 시청자들이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합리적 수준의 의사표현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건강한 여론 형성의 한 과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성공회대 최진봉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해당 멘트가 박 전 시장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의 뜻으로 들렸을 수도 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경우, 은폐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진영 논리로 나뉘어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공익성'·'공공성'의 가치와 무관하게 보도를 비판한다면 이 또한 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언련 관계자는 "공영방송에 대한 기준과 잣대가 상당히 엄격하다. 그러나 공공성과 공익성을 보는 게 아니라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과도한 비판이나 요구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요구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이나 존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인용일지라도 방송사 또한 앵커 멘트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맞지만 아직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최 교수는 "피해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해당 멘트의 전체적 방향성은 맞다. 다만 아직 수사결과 등이 나온 상황이 아닌데 가해가 확정적인 뉘앙스의 멘트는 조심할 부분"이라면서 "그러나 이로 인해 하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민언련 관계자 역시 "박 전 시장 사망 당시 언론 보도들에 상당히 문제점이 많았고, 이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KBS 해당 보도는 공익성에 부합하는 것이고 문제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사건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만큼, 너무 단정적인 앵커 멘트는 방송사로서도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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