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조정은 "답이 정해져있지 않아 더 어렵고, 재밌죠"
뮤지컬 배우 조정은이 꽤 오랜 휴식기를 거쳐 '드라큘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배우에게 폭넓은 여지를 허용하는 작품인 만큼 무대에서 그의 애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뮤지컬 '드라큘라'에 출연 중인 조정은과 최근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공연계가 타격을 입었지만 '드라큘라'는 많은 관객들의 사랑 속에 성황리에 공연을 진행 중이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강화되면서 3주간 잠시 멈췄어도 그의 작품을 향한 애정과 열정은 끊이지 않아 보였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고 스스로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 그런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자체로 굉장히 반가웠고 하겠다고 했을 때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했죠. 저는 안할 이유가 없었어요. 다른 것보다도 미나를 연기하면서 어떤 하나의 틀을 갖고 하기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표현할 수 있고 여지를 갖고 연기할 수 있어서 다른 작품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죠. 무엇보다 연기가 정말 재밌다는 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라 애정이 가요."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뮤지컬배우 조정은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4.14 pangbin@newspim.com |
극중 미나는 드라큘라 백작의 전생의 연인 엘리자벳사의 환생으로 끊임없이 그의 구애를 받는다. 현재의 삶에서 약혼자 조나단을 뿌리치지 못하지만, 미나는 드라큘라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며 갈등한다. 인간을 죽음으로 이끄는 잔인한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를 연기하며, 조정은이 줄곧 느껴온 감정들은 어땠을까.
"사실 초연 때 미나를 대본으로 처음 접하고 '미친 거 아냐?' 생각했죠.(웃음) 그때 데이빗 스완 연출과 얘기를 많이 나눴고 납득할 수 있게끔 표현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업하며 의견을 공유하고, 생각지 못한 것들을 연출님이 얘기해줬죠. 저도 제안을 하고요. 그땐 결과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많이 싸우면서 했어요. 한 사람이 답을 갖고 가기보다 배우의 해석을 많이 열어주셨죠. 누가봐도 개연성이 느껴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 각자의 역할이 있고 각자의 여정을 만들어갈 수 있죠. 참 힘들었지만 재밌는 부분이었어요."
미나는 드라큘라의 애정공세에 끌려가기도 하고, 잔혹하게 인간을 살해하는 상황에 맞딱뜨리고 주로 반응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향해 끌려가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흔한 평면적인 여성 캐릭터이기보다 관객을 극에 깊게 몰입하는 주요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초연, 재연 때와 생각과 느낌이 달라진 부분은 있어요. 그래도 분명한 건 어느 장면에서든 결말이 딱 지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죠. 계속해서 바람이 불면 촛불이 흔들리는 것처럼요. 어느 순간 훅 불어서 꺼지는 게 아니라 흔들리지만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어떤 계기나 상황들로 인해 이 여자의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관객이든 저든 공감도 돼야했죠. 개연성을 부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재밌었어요. 참 양면적인 매력이 있는 역할 아닌가 해요. 아마 어느 배우가 해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캐릭터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누구나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지만 마음이 막 가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뮤지컬배우 조정은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4.14 pangbin@newspim.com |
조정은이 연기하는 미나의 감정은 마치 인간이 드라큘라라는 악의 존재, 어둠에 물들듯 그라데이션처럼 표현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드라큘라 백작을 경계하지만 묘하게 끌리고,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고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 심리 변화를 표현하는 그의 생각이 어땠을지 물었다. 그는 연습실에서는 물론, 매 무대에서 달라지는 디테일들을 인정하면서도 "특별히 정하려고 하는 점은 없다"고 웃었다.
"미나의 감정은 무 자르듯 확 빨려드는 게 아니라 한지에 물감이 떨어지면 점차 번져가듯 그렇게 되기를 저도 바랐죠. 하지만 그러자고 뭔가를 할 수는 없었어요. 다만 드라마나 음악 위에 얹혀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연습실에서 할 때랑 공연장에서, 또 공연이 계속될수록 달라지기도 해요. 큰 맥락은 동일하게 가져가지만 계속해서 뭔가를 발견하게 되죠. 상대역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고요. 뭔가를 정해놓기는 어려워요. 이 배우랑 할 때 이렇게 됐다고 다른 배우랑 또 그렇다는 보장도 없고요. 각 배우가 갖고가는 여정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드라큘라라는 작품이 특히 그래요. 채울 수 있는 게 굉장히 많고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극이 달라지죠. 이 작품의 매력이자 어려운 점이에요."
조정은이 직접 얘기했듯 현재 그는 세 명의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초연 때부터 함께 한 류정한, 김준수와 뉴캐스트 전동석은 각자 다른 매력과 장점을 가진 배우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한 인간으로서 로맨스 호흡을 맞추며, 조정은은 그들 각자를 어떤 드라큘라로 느끼고 있을까.
"동석씨는 이번에 새롭게 합류했는데 왕자님 같아요. 'She'라는 넘버에서 말하는 그 '한 왕자' 같은 느낌이죠. 거기 딱 들어맞는 배우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는 게 느껴져요. 이 대사나 드라큘라의 상황에 대해 개연성을 가져가기 위해 가고자하는 여정이 분명히 있죠. 그걸 지켜가려고 노력하고요. 준수씨와 할 때도, 처음과 끝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이 과정과 여정이 정말 세명이 모두 달라요. 이미 첫 등장에서 똑같은 대사를 주고받으면서도 각자의 느낌이 정말 다르고 재밌죠. 정한 오빠는 초연 때도 같이 오래 해서 많이 맞춰보지 않아도 안정감이 느껴져요. 준수 씨는 소년 같은데 애절함이 굉장해요. 뭔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굉장히 믹스된 것 같은 매력이 있죠. 세 분이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재밌죠."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뮤지컬배우 조정은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4.14 pangbin@newspim.com |
조정은은 미나를 연기하면서 "드라큘라와 미나의 관계도 있지만, 미나 스스로와 싸움에 집중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초연과 달라진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납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납득이 안된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이란 점에서 지금의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미나 스스로의 싸움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져요. 계속 선택하게끔 상황이 찾아오기도 해요. 우리도 답을 알면서도 상대방한테 묻죠. 하지만 본인은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피하려는 마음이 드는 건 이유가 있을 거예요. 마지막에야 미나가 자신과 싸움을 비로소 멈추게 돼요. 계속 밀어내려다 마지막에 인정하는 거죠. 재연 때 새로 생긴 엔딩이 신에게 되묻는 부분이에요. 연습 때는 '이게 필요할까?' 싶었는데 미나에 의해 구원을 얻는다, 혹은 미나에 의해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결말이 의미있게 느껴져요. 너무 정리하려는 느낌도 있지만, 이젠 그 장면이 있어 마무리가 되고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좋은 엔딩을 맞는 것 같아요. 드라큘라를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미나가 하게 돼서요."
조정은은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지 벌써 20년이 넘은 베테랑 배우다.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터닝포인트'를 묻자, 단번에 '드라큘라'를 꼽았다. 반복해 물어도 그가 이렇게도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래서 당장은 사랑하는 이 작품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다만 수많은 뮤지컬 팬들이 자주 보기를 원하는 만큼, 그가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과 앞으로 가고싶은 길에 관해 얘기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연기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바로 미나였어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뮤지컬이 꿈이었고 현실로 이루는 게 즐거웠지만 '연기가 재밌었나?' 하면 잘 모르겠어요. 부담이 컸달까요. '그만해야하나. 배우가 안맞는구나'란 생각이 극에 달했을 때 미나를 만났죠. 그래서 더 치열했던 것 같아요. 대사 한 마디라도 알고 하고 싶었어요. 모르고 무대에 올라가는 건 공포예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하는 건 괴롭죠. 그래도 계속 다시할 수는 없고요.(웃음) 지금이 딱 적당히 다시할 수 있는 기회였고, 다행이다 싶어요. 다른 작품은 '레미제라블'의 판틴 역을 할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하고 싶어요.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을 받아들이고 해나갔음 해요. 발레리나 강수진 씨를 참 좋아하는데 그분 공연을 봤을 때 발레를 잘 알지 못함에도 그 얘기로 쓱 빨려들어갔죠. 저도 관객들이 어떤 작품을 보시든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초대할 수 있는 역할을 만나고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디서든 자연스럽게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