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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 요원이었던 '푸틴'은 어떻게 대통령이 됐을까?

옐친, '자유주의자' 푸틴 후계자로 임명해

"후계자에 자리 물려준 옐친의 교훈 명심해야"

뉴시스

[파리=AP/뉴시스] 9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러시아·우크라이나·독일·프랑스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를 갖고 있다. 2019.12.10.

러시아 정상들이 권력을 쥐게 된 방식은 다양하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소비에트 연방 시절 혁명조직인 볼셰비키의 지도자였다. 이후 소련 공산당을 창립하며 스스로 권력을 창출했다.


레닌 사후 공산당 서기장이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권력 투쟁에서 승리, 당서기장 직함을 유지한 채 소련을 통치하게 됐다. 이후 공산당 조직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는 정치 새싹들의 텃밭이 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역시 공산당 서기장 출신이다.


그러나 2000년, 러시아 권력 이양이 새로운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실인 크렘린궁에서 권력을 물려받으면서다.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선발한 푸틴은 이후 러시아를 21세기로 이끌었다.


왜 푸틴이었을까? BBC는 17일(현지시간) 이같은 질문에 답을 내놨다.

뛰어난 부관, 후보자에 오르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사위인 발렌틴 유마셰프 전 크렘린행정실장은 푸틴을 대통령으로 만든 1등 공신이다.


유마셰프는 옐친 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었다. 그는 1997년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 실장으로 푸틴을 임명했다.


유마셰프는 "러시아 전 경제부총리를 지낸 아나톨리 추바이스는 당시 자신이 훌륭한 관리인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푸틴을 내게 소개해줬고 우리는 함께 일했다. 나는 즉시 푸틴의 환상적인 업무 능력을 알아차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푸틴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자신의 입장을 분석하고 주장하는 데 뛰어났다"고 말했다.


유마셰프는 푸틴의 가능성을 봤을까?


그는 "옐친 전 대통령은 자리를 물려줄 몇몇의 후보자를 검토 중이었다. 보리스 넴소프, 세르게이 스테파신, 니콜라이 악세넨코 등 말이다. 옐친 전 대통령과 나는 후계자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푸틴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했다.


유마셰프는 "옐친 전 대통령이 '푸틴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최고의 후보'라고 답했다"며 "푸틴이 일을 하는 방식을 지켜본 결과 그는 더 어려운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KGB 출신이라는 사실이 매력적이었는가?'라는 질문에 유마셰프는 "푸틴을 비롯한 KGB 요원들은 기관이 신뢰를 잃자 조직을 떠났다. 그가 전 요원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푸틴은 시장 개혁을 원하는 자유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였다"며 그가 강력한 후계자로 꼽힌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뉴시스

[모스크바=AP/뉴시스] 2000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만난 모습. 2019.12.18.

비밀스러운 계승

1999년 8월 옐친 전 대통령은 푸틴을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했다. 푸틴의 크렘린 행이 명백해진 순간이었다.


옐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자리를 내놓은 것도 순식간이었다.


유마셰프는 "옐친 전 대통령은 1999년 12월보다 일찍 대통령직을 내려놓기로 갑작스럽게 결정했다. 그는 푸틴을 모스크바로 소환했다. 그의 새로운 행정실장인 알락산드르 볼로신도 함께 불렀다. 옐친 전 대통령은 다음 해 7월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며 12월31일 사임하겠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옐친 전 대통령의 사임 연설을 작성한 것도 유마셰프다.


그는 "쓰기 힘든 연설이었다.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 메시지는 중요했다. 내가 그 유명한 '국민의 용서를 구한다'는 구절을 쓴 이유다"라고 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12월31일 대통령실에서 마지막 TV 연설을 녹화했다. 공식 사임 발표가 나오기 4시간 전이었다.


유마셰프는 "참석한 모든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감정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뉴스가 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녹화를 지켜본 사람들은 방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유마셰프는 녹화된 비디오를 들고 직접 방송국으로 운전해 이동했다. 그의 연설은 이날 정오에 방송됐다.

사라진 '가족 정치'

유마셰프는 정권의 '가족'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1990년대 옐친 전 대통령은 건강이 악화하며 점차 소수의 친척, 친구, 재계 인사들과의 교류를 강화했다. 유마셰프는 이 중에서도 대표적인 옐친 전 대통령의 내부 인사다.


그러나 푸틴은 측근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지 않는다.


러시아 정치학자 발레리 솔로베이는 "푸틴이 좋아하는 인물은 두 부류"라며 "어린 시절 친구인 로텐버스 형제(보리스 로텐버그, 아카디 로텐버그)라든지, 과거 함께 일했던 KGB 요원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의 충성심 역시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솔로베이는 "옐친 전 대통령이 가족들을 믿었던 것과 달리 푸틴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자리 양보한 옐친의 교훈"

푸틴은 총리 시절까지 합해 올해로 19년째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앉아있다. 푸틴의 임기는 2024년 끝이 난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권력 체계를 구축한 그는 러시아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강탈하며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솔로베이는 "옐친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특별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푸틴도 그렇다"고 말을 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옐친 전 대통령은 자신을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끝낼 '신'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의 임무는 이를 과거로 다시 돌리는 것이다.


솔로베이는 "푸틴은 소련의 몰락에 대한 복수를 원하는 것 같다. 그와 함께하는 전 KGB 요원들은 소련의 파괴가 서방 정보 기관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푸틴에게서는 유마셰프가 발견한 '진보'와 '민주주의'를 찾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유마셰프는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여전히 푸틴을 신뢰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유마셰프는 다만 "러시아 대통령들은 옐친 전 대통령의 사임을 교훈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교훈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옐친 전 대통령에게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soun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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