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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인생]①'억대' 연봉 대신 '자격증' 선택한 김과장, 도대체 왜?

직장생활 길어야 10년인데…"늦은 결혼, 아직 애들 중·고등학생"

직장 대신 '평생 직업' 찾는 30·40세대…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중개사 도전


[편집자주] 청년실업 100만시대에 잘 나가는 대기업을 때려 치우는 30·40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그들도 '미친 짓'이란 주위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학원가다. 세무사·공인회계사·공인중개사·9급 공무원 등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은 독서실·수강실·자택에서 폭염을 견디며 '제2의 인생'을 도모하는'열공생'들을 만났다. '억대' 연봉 조차 마다하고 사표를 쓰는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뉴스1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에듀윌 주최로 열린 '2018 공무원 합격전략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피고 있다.2017.12.1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날은 푹푹 찌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중년의 김명호씨(가명·44·서울 마포구)는 요즘 대학 입시생의 마음으로 독서실을 향한다. '세무사 기출문제'라고 적힌 교재를 펼친다. 세무사 시험 준비 중인 그는 집 인근 독서실에서 주 40시간 이상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6월까지 국내 주요 대기업을 다녔다. 성인 근로자 평균연봉의 약 3배인 금액이 급여 통장에 찍혔다. 보다 못한 오랜 친구는 "회사 잘 다니다가 왜 그러느냐"며 김씨를 말렸다. 김씨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노후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60세 정년인 직장이 아닌 평생 가능한 '직업'이 필요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애들 대학에 보내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탄탄대로였던 삶의 방향을 전환한 계기는 결혼이었다. 그는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S급 인재' 반열에도 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이는 어느덧 마흔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서른 여덟에 결혼에 성공했고 아들과 딸 한 명씩 뒀다. 그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가 '잘 나가는' 대기업을 그만둔 것은 가족 때문이다. 사표를 제출한 이유는 이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하다. "10년 정도 직장을 더 다니다 퇴직해도 제 자식들은 중·고등학생입니다. 애를 대학에 보내고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세무사가 되면 매달 소득이 대기업 재직 시절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김씨는 봤다. 그렇다고 평생 소득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을 계속 다닌다고 해도 퇴직 후에는 소득이 '제로'일 수 있다.


반면 세무사는 일반적인 퇴직 연령인 60세 이상이 돼도 일할 수 있다. 노후 기간까지 고려하면 결국 대기업을 다니나 세무사가 되나 '총 소득'은 비슷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대신 세무사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벌이'를 할 수 있지요. 대기업과 평생 직업 중 무엇이 현명한 선택일까요?"


엘리트 직장인의 '자발적 퇴사'는 김씨만의 사연이 아니다. 30대 이상 중·장년 직장인들이 남부러움을 샀던 회사를 그만두고 인생 제2막을 준비하고 있다. 세무사·공인중개사·공인회계사·주택관리사 등으로 눈을 돌린다. 실제로 교육업체 에듀윌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시험 30·40·50대 수강생 비율은 무려 84%(30대 34%, 40대 31%, 50대 19%)에 달한다.


자격증이 있으면 평생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게 경쟁력이다. 반면 아무리 급여 수준이 높은 대기업을 다녀도 임원이 되지 못하면 고용 불안에 떤다. 임원이 돼도 국내 기업 풍토상 대부분 '계약직 신분'이라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3대 성인 교육업체에 재직 중인 이모씨(43)는 "지금은 주요 보직에 있지만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일"이라며 "이미 한국사 자격증은 땄고 공인중개사 같은 전문직 자격증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 시대에 평생 직장이 어디 있느냐"며 "제2의 인생 설계는 필수"라고 덧붙였다.


◇"출세·성공 상징 '대기업'이 더는 행복 보장하지 않아"


제2의 인생은 사회적인 현상이다. 대표적인 요인은 급격한 고령 인구 증가다. 한국 사회는 지난해 고령화 사회를 지나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14% 이상일 경우 '고령사회'로 규정한다.


초혼 연령까지 늘어 자녀 교육을 포함한 노후 대비는 필수가 됐다. 결혼정보 회사 듀오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과 여성의 초혼 평균 연령은 각각 36.2세로 여성 32세로 2년 전보다 1세씩 늘었다. 여기에 '워라밸(삶과 일의 균형)' 문화가 확산돼 근본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9급 공무원 시험을 공부 중인 박성은씨(가명·여·33)는 "기업 재직 당시 잦은 밤샘 근무와 출장에 시달리다가 지금 남편과 결혼했다"며 "도저히 가정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워라밸'을 보장하는 9급 공무원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출세와 성공을 상징하는 대기업 재직이 과거와 달리 사회구성원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며 "성취보다는 '안정'와 '자유'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구성원들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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