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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홀리」

편집자의 책 소개

13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온 어느 기묘한 틈입자의 신작 장편 

 

75통이다. 석 달간 선생님과 주고받은 이메일이. 펜실베이니아라는, 그러니까 파주 출판단지에서 10,887.5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계시다는 물리적 거리감도 한몫했지만, 서로 할말이 많았던 게 더 큰 이유였다. 75통의 이유. 전체적인 구조에서부터 디테일한 단어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나누었다. 어느 책이 쉽겠냐만서도 이 책 편집은 특히나... 낱낱이... (이하 생략ㅎ) 

「아메리칸 홀리」

@문학동네

14년 전 한국을 떠난 작가 양헌석. 도미(渡美)의 '도' 자는 '도망'의 '도' 자와 다른데, 도미라는 단어를 들으면 쫓기듯 떠나버리는 이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왜 한국을 떠났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선생님은 1982년에 등단했다. 1988년, 1990년 두 권의 소설집을 냈고, 2003년 좌익 집안 남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첫 장편소설 『오랑캐꽃』을 냈다. 두번째 소설집을 내고도 13년이나 지나서였다. 이번 작품은 선생님이 또 한번 13년 침묵한 끝에 내놓는 장편소설이다. 올해로 작가 인생 34년이니 보통 과작(寡作)인 작가가 아니다. 그래서라고 핑계를 대도 될까, 사실 나는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잘 몰랐다. 다만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문학 담당 기자였고, 사회부로 옮기면서 그 자리를 기형도(!) 시인이 맡게 되었다는 것. 이승우(!) 선생님과 함께 동인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 

 

어쩌면 선생님은 본인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의식을 충분히 통과해낸 뒤에야 비로소 작품을 써내려가는 사람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첫 장편 <오랑캐꽃>도 자전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번 작품도 선생님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뉴욕 맨해튼에서 인종차별에 의한 테러를 당한 한 언론인의 목소리를 담은 이번 작품&2002년 도미, 파이낸셜뉴스 워싱턴 특파원, 뉴욕 중앙일보 편집위원, 미주 국민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낸 선생님의 이력. 

“모 일간지 미국 지사 편집국장인 ‘나’가 어느 날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양쪽 아킬레스건이 잘렸고 성기를 자르려고 시도한 상흔도 발견되었다. 증거 부족으로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낯선 미국 땅에서 경쟁자들을 비인간적으로 짓밟으며 살아온 ‘나’는 용의선상에 올릴 이름이 적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의 추적 과정은 점차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물음으로 귀결되며, ‘나’는 자신이 찾는 범인이 사실상 자신이 만든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이 작품의 외형적 소재인 9·11테러, 그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역학관계와 묘하게 맞물린다.”

보도자료에 적은 줄거리. 이 작품 덕분에 미국 내 한인사회라는 특수한 집단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라도 비자를 얻으려는 사람들, 그런 이민자들에게 사기치는 한인 변호사, 부정부패로 얼룩진 종교집단… 포식자와 피식자가 존재하고,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가 존재하는 크고 작은 집단은 도처에 있으며 그것은 모국의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더욱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그 속에서 17년을 버텨낸 작품 속 화자인 '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지식인의 양심은 그 세월 속에 서서히 흘려보낸 인물. 그가 버티고 살아내려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낯설지만은 않다. 자신을 테러한 데 대한 복수라는 미명 아래 범인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인물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그를 냉혈한이라고, 악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작품을 주욱 읽다보면 자신이 없어진다. 정의를 향하고, 옳은 일을 하고, 선한 것을 좇는 것이 약한 자, 도태되는 자의 몫이 되어버린 이 일그러진 세계에 사는 우리가 과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아메리칸 홀리」

@문학동네

책이 나오고서야 저자를 만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날이 아주 좋았던 엊그제 파주로 찾아오신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는데, 75통의 메일을 주고받은 것이 무색하게 낯설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10,887.56킬로미터를 날아온 선생님은 더 그랬겠지. 오랜만에 독자들 앞에 내놓는 작품이라 긴장도 설렘도 크겠지. 이곳과 그곳에 모두 속해 있는, 아니 어쩌면 이곳과 그곳 모두에 속해 있지 않은 느낌으로 살았던 시간이 오래인 분. 그 기묘한 ‘틈’, ‘사이’에 선 작가가 날 선 시각으로 써내려간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궁금하다. 

 

+ 조정래 선생님이 추천사를 써주셨다. 추천사 써주시는 것 잘 못 본 것 같은데...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옮겨보며 마무리....

『아메리칸 홀리』는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뉴욕에서 한 언론인이 테러를 당하자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외형상 골격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추적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다. '9·11'이라는 서사성을 바탕으로 한 양헌석의 이 작품은 강자의 눈에 비친 냉혹한 세상을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묘파하고 있다. 선하거나 약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통상적인 소설과는 달리 악의 심연을 형상화해내는 쉽지 않은 독창성을 보인다. 악의 완성이란 특이한 주제에 도전한 작가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의 오랜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성공작이다.

-조정래

「아메리칸 홀리」

편집자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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