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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현대차·LG 다 있는데…'이재용 비행기' 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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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2019년 도입한 걸프스트림 G650 ER(위)과 대한항공이 지난달 초 추가 도입, 등록한 뒤 삼성과 첫 임차계약을 맺은 보잉 787 BBJ 기종(아래 오른쪽). 아래 왼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각사 홈페이지

4대 그룹 가운데 전용항공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SK다. 2009년 14인승 걸프스트림 G550, 2015년 15인승 에어버스 A319를 구입한 데 이어 2019년에도 최신예 민항기 걸프스트림 G650을 샀다.


그 중에 '럭셔리 제트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걸프스트림 G650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사랑하는 '천마(天馬)'로 유명하다. 최대 속도가 시속 704마일(1133㎞·마하 0.925), 공식 최대 항속거리는 1만2965㎞로 서울에서 미국 뉴욕은 물론 유럽과 아프리카 북동부까지 어느 민항기보다 빨리, 중간급유 없이 한번에 갈 수 있다. 700억~800억원을 오가는 가격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촌각을 다투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대기업 경영진이나 스타 연예인 입장에선 줄을 설 수밖에 없는 항공기다.


LG도 이 기종을 갖고 있다. LG는 SK보다 3년 빠른 2016년 G650을 도입하면서 이전 모델이던 G550를 매각, 현재 전용기 1대를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2014년 들여온 보잉 737-7GE(BBJ)를 8년째 사용하고 있다. 이 기종은 여객기로 유명한 737 시리즈의 비즈니스용 개조 버전이다. 약자로 따라붙는 'BBJ'가 '보잉 비즈니스 제트'라는 뜻이다. 737 BBJ는 전용기 시장에서 1997년부터 150여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안정성을 인정받았다. 이보다 한 등급 높은 보잉 747 시리즈가 우리나라와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공군 1호기)로 쓰인다.

삼성은 전용기 0대…전세기 빌려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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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동안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지난 6월18일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때 전용기를 3대까지 운영했던 삼성은 현재 전용기가 없다. 2015년 삼성서울병원 의료용 헬기 1대를 제외하고 보잉 737 2대, 봉바르디에 BD-700 1대 등 전용기 3대와 전용헬기 6대(EC-155 2대, AW-139 4대)를 모두 대한항공에 매각했다. 당시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소속이던 전용기 운항팀 조종사와 승무원, 정비인력 100여명도 대한항공으로 인계했다.


전용기 매각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경영진은 해외출장을 갈 때 일반 여객기를 이용하거나 대한항공에서 전세기를 대여한다. 출장기간이 길고 방문지가 여러 곳일 때는 전세기를 대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이 부회장도 일반 여객기를 타는 경우가 많다.

구입비 못지 않은 유지비…연간 비용만 수십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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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전용기는 구입비도 구입비지만 유지비 부담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전용기를 정비하거나 실내에 주기(주차)하기 위해 격납고를 이용하는 비용만 항공기 크기에 따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 기준으로 하루 200만~350만원에 달한다.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비용은 별도다. 세금과 정비비, 인건비까지 더하면 1년에만 수십~수백억원이 들어간다.


SK그룹이 지난해 공시한 업무용 항공기 공동관리계약 비용 분담금을 토대로 추산하면 기종에 따라 1년 운영비가 70억~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SK그룹의 전용기는 SK텔레콤이 운영하고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등이 이용빈도 등에 따라 공동분담금을 내는데 SK하이닉스가 2022년 분담금으로 77억8000만원을, SK이노베이션은 77억5300만원을 공시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700억원짜리 전용기를 10년 동안 유지하려면 항공기 가격만큼의 비용이 별도로 든다"고 말했다. 2015년 삼성이 전용기를 매각했을 때 삼성에서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 스타일이 반영된 결정이라고 설명했던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용기 효용, 값으로 못 따져…1990년대 들어 도입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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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12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교체를 앞둔 대통령 전용기 공군 1호기 보잉 B747 400이 계류돼 있다. /사진=뉴스1

막대한 구입비와 유지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전용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전용기로는 직항이 없는 나라나 소형 공항이 있는 지역에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별도의 전용기 터미널을 이용하기 때문에 통관과 검색 시간도 줄어든다. 시간과 비용의 효용 가치를 따지면 이만한 투자가 없는 셈이다. 괜히 '하늘 위 회장실'로 불리는 게 아니다.


일례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2013년 유럽 4개국 출장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3박5일만에 러시아·슬로바키아·체코·독일 등 유럽 4개국의 해외사업장을 순회할 수 있었던 게 전용기 덕이다. 일반 항공사를 이용했다면 8~9일이 걸렸을 일정이다.


이런 편의를 받아들인 국내 대기업들이 전용기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국내 최초의 기업 전용기는 쌍용그룹의 캐나다산 항공기였다. 김석원 당시 쌍용그룹 회장이 1991년 도입했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매각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 곳곳을 종횡무진했던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대 초 이 기종을 샀다가 외환위기 당시 그룹이 해체되면서 매각했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1995년 14인승 전용기(4-SP, 미국 걸프스트림)를 170억원에 들여와 2007년 전용기 임대사업용으로 활용한 뒤 매각했다.

억지 규제 고치는 데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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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31일 국회 본회의. /사진=뉴스1

삼성이 2015년 전용기를 매각했던 이유를 옛 항공법(현재 항공안전법) 규제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이 법 6조는 외국인이나 외국법인이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기업의 경우 구매했거나 임차한 항공기를 국토교통부에 등록할 수 없도록 했다.


외국 항공사가 국내에 항공기를 등록해 항공사업을 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의 조항인데 법 자체가 1961년 제정된 탓에 일반 기업이 업무용 전용기를 도입하는 경우나 자본시장 개방 이후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확대되는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2000년대 전후부터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오간 삼성전자의 경우 전용기를 등록할 수 없었다.


이 조항은 시대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외에도 수시로 바뀌는 외국인 지분율을 항공기 등록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로도 법적 안정성이나 타당성에서 논란이 많았다. 현재까지 거의 유일하게 이 조항으로 문제가 됐던 삼성전자만 해도 최근에는 외국인 지분율이 49% 수준으로 떨어져 규정 자체만 따지면 전용기를 등록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그동안 사실상 논란을 방치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조항은 지난해 12월에야 항공사업 목적인 경우가 아니면 외국인 지분율이 50%가 넘는 기업의 항공기라도 등록할 수 있도록 보완 입법됐다. 시행은 올해 12월8일부터다. 국회가 불합리한 규제를 시정하는 데 법안 시행부터 따지면 꼬박 60년, 국내에 업무용 전용기가 처음 도입된 이후부터 따져도 30년이 걸린 셈이다.


덧붙여.


대한항공은 지난달 초 보잉 787-8 BBJ 1대(HL8508)를 추가로 국토교통부에 등록하면서 첫 고객으로 삼성과 임차 계약을 맺었다. 삼성이 이용하지 않는 기간에는 다른 기업이나 개인도 대한항공과 계약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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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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