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어떻게 한국 카페 시장을 점령했나
유재석의 비틀어보기
때는 바야흐로 1997년. 열댓명의 직원이 한 오피스텔에 모여 있다. 모인 이들은 신세계그룹과 스타벅스 본사의 공동 투자로 ‘스타벅스코리아’ 설립을 준비하던 초창기 멤버다.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신세계 측은 30억원을 제시했다. 당시 카페라는 개념은 다방의 세련된 표현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큰 규모의 투자는 쉽지 않았을 터.
30억원은 카페 사업을 시작하기에 넉넉한 금액은 아니었다. 스타벅스 규모의 오프라인 매장을 한 개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최소 5억원은 든다. 공격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총알이 필요했다. 결국 어찌어찌해 스타벅스 본사의 투자액만큼을 신세계도 투자하겠다는 확답을 얻어냈다. 각각 100억 씩, 총 200억의 자본금으로 스타벅스코리아가 출범했고 2년 뒤 이화여대에서 첫 매장을 연다.
그 이후 스타벅스코리아는 어마어마한 성장 곡선을 그린다. 직영점은 2016년 850곳을 넘어섰다. 커피산업이 침체라고 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몇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석구 대표
이석구. 그가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로 합류했던 건 신의 한수였을까. 그는 스타벅스코리아의 네 번째 대표이며, 역대 최장기(9년)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스타벅스에 합류하기 전에는 조선호텔의 대표직을 역임했다. 이는 커머스와 서비스의 영역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물론, 역대 대표들도 각각 시기에 맞는 역할을 해왔다. 초기 자본금을 200억원으로 시작하기 위해 미국 본사와 신세계 그룹을 조율했으며, 스타벅스의 영업이익 증가를 위해 적재 적소의 인력 배치 및 긴축 경영을 주도했던 인물도 있었다. 이 시기에는 인센티브가 넘쳤다는 후문도 있다.
“리테일은 디테일이다.”
이석구 스타벅스코리아 대표. 출처: 스타벅스코리아 |
스타벅스가 한국에 자리를 잡은 2007년 합류한 이 대표의 경영 전략은 ‘디테일’에 있었다. 그는 스타벅스에 합류하고 곧바로 액션을 취하는 대신, 1년 동안은 회사가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2년차에는 그렇지 않았다. 적극 조직을 개편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팀장급 스케줄을 꿰뚫고 있었고, 매주 정기/비정기 미팅을 주도했다. 그리고 현장으로 나갔다.
이석구 대표는 2007년 취임 이후 매장 방문만 5000회가 넘는 등 매주 이틀 동안은 항상 현장을 찾아 직원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다. 매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고객이 만족하거나 불편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현장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임직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매장에 방문해 칭찬하거나 격려할 ‘파트너’를 보게 되면 늘 소지하고 다니는 칭찬카드를 현장에서 자필로 적어 건네면서 감사를 표한다. – 이석구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의 ‘닉네임 경영'(서울파이낸스)
이 대표의 목표는 스타벅스 모든 매장에서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마침, 스타벅스코리아는 가맹점을 보유하지 않았다. 본사 차원의 운영 철학 때문이었다. 한때 공격적인 가맹점 확보를 통해 빠른 속도로 매장을 늘려온 카페베네, 엔제리너스, 이디야 등의 커피 브랜드가 무섭게 영역을 확장했으나, 스타벅스는 고객에게 주는 ‘동일한 경험’에 집중했다. 스타벅스가 매장 숫자에서 밀리더라도, 매출과 고객 숫자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었다.
스타벅스식 모바일 전략
평일 점심 스타벅스 무교점 앞. 이석구 대표와 팀장급 실무진들이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긴줄에 질린 사람들은 길 맞은편 A 커피집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본 이 대표 질문을 던진다. “저 떠나는 고객들 어떻게 합니까? 왜 저렇게 줄서서 기다리게 하는 건가요?”
스타벅스코리아 마케팅팀에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오프라인 매장의 고객 체류시간(Retention)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실내의 고객 위치를 파악해서, 모바일로만 주문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피키캐스트는 아..아니고,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다. 고주파 비콘을 매장에 설치해 매장별 고객의 위치를 식별하는 ‘사이렌오더’란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얍(YAP) 컴퍼니의 기술이 도입됐다.
얍컴퍼니 |
다음 난관이 있었으니 스타벅스 미국 본사였다. 스타벅스 지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할 때는 반드시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신 메뉴, 인테리어, 음악 등 아주 세부적인 부분에도 승인이 필요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고주파 비콘 도입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스타벅스 본사도 일찍이 저전력블루투스(BLE), 실내 측위 장치 등을 통해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수차례 시연과 설득을 통해 마침내 본사로부터 도입을 허락받았다.
사이렌오더는 출시 1년 반만에 400만 주문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 중이다. 스타벅스 본사는 사이렌오더를 높게 평가해 스타벅스 홍콩지사에도 고주파 기반의 비콘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유통업계에서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때문에 한국 시장에 잘 안착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은 다른 생각이다. 아무리 해외에서 유명한 브랜드라도 시장 진출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 까르푸, 월마트도 견디지 못했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온오프라인 고객에게 높은 품질의 동일한 경험을 주는 것, 이것이 지금의 스타벅스코리아를 만들었다.
모바일 마케팅, 디지털 마케팅이 화두라고들 한다. 모바일과 온라인의 이용자 패턴을 분석해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게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이에 따라 너나할 것 없이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페이스북에서 마케팅을 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겉으로는 모바일과 디지털을 표방하나, 속은 여전히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다.
스타벅스 역시 오프라인 기반의 서비스다. 딱 보기에 카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 모바일과 디지털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는지를 집중했다.
사이렌오더나 스타벅스카드앱 모두 고객 체류시간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다. 이들은 할줄 모르는 것에 무모하게 뛰어들지 않았다. 모바일이나 디지털의 영역은 얍컴퍼니와 같은 O2O 전문 기업과 협력했고,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오프라인 매장 마케팅에 도입했다. 모든 전략에는 스타벅스코리아와 이석구 대표의 철학이 담겨져 있었다.
“리테일은 디테일이다.”
글. 유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