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 반영 못한 전기료…한전, 60년간 번 수익 다 까먹을 판
◆ 위기의 한전 ◆
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전력도매가격(SMP)이 지난 4월 전력도매시장 개설 이후 처음으로 kwh당 200원을 돌파했다. 사진은 8일 서울 시내 한 다세대주택 전기 계량기를 관리인이 점검하고 있는 모습. [박형기 기자] |
한국전력이 1961년 창사 이후 60년간 벌어온 수익을 넘어서는 적자를 올 한 해에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
연료비 등 원가 상승분을 반영한 전기료 인상은 치솟는 물가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전은 올해 들어 발전사에 지급하는 비용인 전력거래대금에 대해 외상 지급을 허용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요원한 상황이다.
8일 전력업계에서는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이 30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한전이 그동안 쌓아온 수익인 이익잉여금 29조4000억원(작년 말 기준)과 맞먹는 규모다. 가장 큰 이유는 연초부터 석유·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가 급격히 오르고 있지만 이에 상응하는 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를 비싸게 생산해 싸게 판매하다 보니 팔수록 적자가 나는 '역마진'이 발생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5조8600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냈다.
한전 위기의 단기적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파로 석유·LNG 등 연료비가 급등한 영향이 컸다. 근본적으로는 연료비 등 원가 변동을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일례로 최근 연료비 급등세는 올 하반기에도 지속될 전망이지만 전기요금 인상이 언제 어느 정도 폭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정부에선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원가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나섰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이 불러올 기업과 가계 부담 증가를 고려할 때 말처럼 현실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원가주의에 따라 요금을 인상한다 해도 물가뿐 아니라 기업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산업용은 전체 전력 판매량의 과반인 54.6%(작년 말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일반용(22.4%)과 일반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15.0%)을 합한 것보다 많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원전 비중을 높여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원전 비중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 폭을 낮추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산업계에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지면 설비투자 등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업의 생산단가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물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면서 산업계는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을 우려해왔다"며 "새 정부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데 적용되는 전력도매가격(SMP)도 지난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SMP 상승은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 크다. 지난달 SMP를 산정할 때 LNG가 차지하는 비중은 98.6%에 달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SMP는 국제유가에 6개월 '후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올 1분기 내내 유가가 크게 오른 만큼 올 하반기에도 SMP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용이 급증하면서 한전 실적이 전인미답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현 정부에서 탈원전 등을 강조하면서 원자력발전 비중을 줄이고 친환경 비중을 높이면서도 연료비 연동제를 사실상 무력화해 요금 인상을 인위적으로 눌러온 게 축적됐기 때문이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한전 영업손실 전망치는 작년보다 3배 많은 17조4723억원으로 관측됐다. 최근 들어선 30조원대 영업손실을 예측하는 증권사도 등장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 4일 보고서를 내고 한전의 올해 영업손실이 30조3003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 1분기 영업손실도 8조6570억원으로 추정했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연료비 상승에 따른 한전의 손실을 만회하려면 전기요금을 50% 이상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의 적자가 누적될수록 국민 혈세 부담만 커지게 된다. 손실 보전을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입돼서다. 적자 때문에 발생한 이자 비용도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송광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