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도망가” 장담한 기자…14시간 夜택배노동 해보니
코로나19, 추석 명절에 택배 폭증…물류센터 화물 지옥 현장 르포
택배 상하차 작업 현장의 모습 / 사진=한전진 기자 |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언박싱" / 사진=한전진 기자 |
지난 25일 오후 충청북도 옥천의 한 택배 물류센터 앞. 6시가 좀 넘어서자 수원, 대전, 구미, 포항 등 전국 각지의 푯말이 붙은 버스 20여 대가 늘어서기 시작했다. 인근 흡연장에는 이미 신입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담배 한 개비에 긴장감을 녹이고 있었다. 대부분이 20대~3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운동복에 모자를 눌러쓴 기자도 이들 틈에 섰다.
“문진표 작성하고, 2층 가 있어요.”
흡연장에서 만난 인력관리 반장의 지시였다. 신입들과 간이진료소에서 발열 체크 후 문진표를 작성하고 식당인 2층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각 소속 팀별로 모여 있었다. ‘허브‧직영1팀’. 이날 기자가 속한 근무조다. 이곳에서 혈압과 맥박 등을 쟀고, 반장은 건강 상태를 깐깐하게 캐물었다. 코로나19도 원인이겠지만, 2년 전 인근 물류센터에서 잇따라 발생했던 사망 사고가 큰 영향을 준 듯했다. 당시 8월 한 달에만, 두 명이 상하차 업무 중 각각 감전사와 과로사로 숨졌다.
반장은 기자에게 일용직 근로계약서를 건넸다. 시급은 8590원 올해 최저임금이다. 근로시간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인 8시간, 식사 겸 휴게시간은 12시부터 새벽 1시로 명시되어 있었다. 다만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은 물동량 및 회사의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6시간을 초과해 총 14시간을 일하게 될 줄은.
코로나19와 잇따른 물류센터 사고로 건강 검진 등 절차가 강화됐다. / 사진=한전진 기자 |
“상당히 고될텐데, 할 수 있겠어요?”
걱정스레 묻는 반장의 말에 “도망가지 않겠다”라고 장담했다. 사실 과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내비칠 수 있던 자신감이었다. “추석이라고 택배가 늘어야 얼마나 늘었겠나” 속으로 자만했다. 이후 반장의 말에 따라 안면인식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고 ‘근무 시작’을 눌러 내 얼굴을 등록했다. 반장은 “위치 추적이 되니 이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근무 이탈’로 급여 지급이 안 된다”라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한 시간 반 가량의 안전교육과 간단한 업무설명을 듣고 근무 장소로 향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소음과 트럭의 후진음이 귓가를 때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산처럼 쌓여있는 택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기자가 물류센터에서 봐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화물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오늘 할 일은 이 산을 밤새 다 옮기는 일일 것이다. 긴장감이 엄습하자 손과 등에선 땀이 축축하게 젖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알바몬에 등록된 ‘택배 상하차’ 관련 공고만 5161건. 코로나19에 택배 물량이 증가한 데다, 추석 명절까지 코앞이니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기자도 전날 당일 아르바이트 구직을 통해 일을 손쉽게 구했다. 택배업계는 올해 추석 택배 물량이 평소보다 20%, 지난해 추석 대비로는 15%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농산물 등의 화물도 많았다. / 사진=한전진 기자 |
트레일러 내부의 모습, 컨베이어 벨트 위로 송장번호가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야 한다. / 사진=한전진 기자 |
밤 10시, 마스크는 금세 ‘턱스크’로
밤 9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 “하차!”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물류센터 안쪽에는 트럭의 짐칸이나 컨테이너를 댈 수 있는 각각의 라인이 있다. 이곳에서 물건을 내리거나 싣는 상하차 작업이 이뤄진다. 노란 안전모를 쓴 기자는 흰 안전모의 고참과 한조가 되어 4번 하차 라인을 배정받았다. 하차는 컨베이어 벨트에 물건의 송장번호가 위를 향하도록 일정하게 내려야 하는 작업이다. 마구잡이로 물건을 내렸다간 관리자의 따끔한 질책을 들어야 한다.
첫 번째 컨테이너부터 사과와 배, 선물세트 등 고중량 물건이 기자를 반겼다. 기자가 추석 시즌 이전에 경험했던 보통의 상하차와는 스케일부터 달랐다. 시작 30분 만에 입안에선 단내가 났고, 겨드랑이와 목덜미에선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마스크에 안전모까지 머리를 조여오니 답답함이 가슴 끝까지 차올랐다. 단단히 여몄던 마스크는 어느덧 턱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코로나19보다 숨이 막혀 죽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밤 12시, 도망갈 궁리를 하다
몇 대의 트럭을 해치웠을까. 정신없이 11톤 트럭의 트레일러 속에서 화물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즈음. 휴식 시간을 알리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드디어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던 식사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같이 일하던 고참 근로자는 이미 뛰쳐나가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아직 12시 밖에 안됐다는 사실에 한숨부터 나왔다. 목이 너무 말랐다.
상하차 시작부터 12시까지 휴식시간은 단 5분도 주어지지 않았다. 트럭 한 대가 끝나면, 다음 트럭 주차 전 1~2분 남짓 한 시간 동안 알아서 ‘눈치껏’ 쉬어야 한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정도면 기사 쓸 만큼 충분하지 않은가”, “도대체 몇 시까지,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건가”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인적 드문 1층 구석 출구로 계속 눈이 향했다. “저기로 도망가면 되겠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날 대다수의 지원자는 20대~30대로 보였다. / 사진=한전진 기자 |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