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 30년 만에 대법서 다시 심리할 듯
검찰개혁위, 검찰총장에 ‘비상상고’ 권고
학대 등 ‘최소 513명’ 사망
당시 대법 “정당행위” 무죄
개혁위 “내무부 훈령 위법”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30년 만에 법정에서 다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13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라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비상상고란 형사사건 확정판결에서 법령 위반이 발견되면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직접 상고하는 비상구제절차다. 문 총장은 검찰과거사위 활동이 종료되는 11월 초 이후 비상상고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개혁위는 형제복지원 사건 무죄 판결의 유일한 근거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부랑인 등의 단속·수용·보호 등 헌법상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그 근거 법률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개혁위는 “해당 훈령은 위헌·위법성이 명백하다. 이를 적용해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씨(2016년 사망) 등의 원생들에 대한 특수감금 행위를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로 판단한 당시 대법원 판결은 형사소송법이 비상상고 대상으로 규정한 ‘법령 위반의 심판(판결)’에 해당한다”고 했다. 개혁위는 수사 과정에서 검찰권 남용으로 인권침해가 벌어진 사실이 밝혀지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도 권고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6년 12월 김용원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현 변호사)가 경남 울주군의 한 작업장에서 원생들이 강제노역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수사를 벌이면서 실상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을 가둬두고 강제노역, 학대, 성폭행을 일삼았다. 공식 집계로 이곳에서 513명이 숨졌다.
김 전 검사는 1987년 1월 원장 박씨를 특수감금,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대법원은 1989년 7월 내무부 훈령에 따른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김 전 검사는 복지원 본원에 수용된 원생 3000여명에 대한 인권침해도 수사하려 했으나 검찰 지휘부의 압력 때문에 포기했다.
과거사위는 4월 위헌인 내무부 훈령에 따른 수용은 불법감금에 해당한다며 재조사를 권고했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당시 ‘윗선’의 수사방해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당시 부산지검장으로 재직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최근 조사했다.
김 전 검사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가의 적극적인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피해자들이 고령화하면서 사망자도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경기·인천지역 대표는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국가로부터 사과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왜 잡혀갔고 왜 강제로 일을 했으며 왜 두들겨 맞았고 왜 맞아 죽었고 왜 굶으면서 살았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진상을 밝혀내려면 공소시효를 무시할 수 있는 특별법밖에 없다”며 “비상상고를 통해 특별법이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했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는 2016년 7월 진 의원 등이 다시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은 사건 진상 및 국가책임 여부를 규명해 피해자·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소속 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정대연·이보라·유희곤 기자 ho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