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무겁고 '당근'도 안되는 애물단지 '명품백', 대세는 리폼
블로거 찐순이씨는 몇 년전 직장인인 어머니께 사드렸으나 이후 들지 않아 집구석에 박혀있던 빅 토트백을 꺼냈다. “명색이 프○다인데 나나 동생이 들기에는 올드한 감”이 있어 리폼을 결심한 그는 여러 업체의 견적을 뽑았다. 10일 정도 리폼 작업을 마친 가방은 작은 복주머니 모양의 버킷백으로 재탄생했다. 찐순이씨는 “동생에게 전달했더니 바로 들고 다닌다며 인증샷을 보내왔다”며 “20대 중반이 들고 다니기에 딱”이라며 만족해 했다.
블로거 찐순이씨의 집구석에서 빛을 보지 못하던 빅사이즈의 핸드백(위 왼쪽), 리폼 제작 과정, 리폼이 끝난 가방을 든 동생의 인증샷(아래 오른쪽) | 블로거 찐순이 제공 |
첫 월급 기념 셀프 선물로, 결혼 예물로, 혹은 트렌드에 따라 구비해야 한다며 ‘잇백(It Bag)’으로 불리던 고가의 가방을 장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요한 날만 들고 다녀서 새 것과 다름 없지만, 지금 들자니 크고 무겁고 심지어 중고마켓에 내놔도 안 팔리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가방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바로 ‘리폼(reform)’을 통해서다.
10년 전 유행하던 빅백은 가방을 해체해 새로 고치는 리폼 작업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미니백으로 가볍고 말쑥해졌다. 온라인커뮤니티에는 미니 토트백이나 버킷백, 카메라백, 탬버린백, 핸드폰백 등으로 변신한 리폼 백 사진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스피디백이나 갤러리백 등 스테디셀러로 알려진 가방의 경우 어떤 디자인으로 리폼하면 제격인지 일종의 ‘공식’이 회자될 정도다. 심각하게 손상되지 않은 이상 기존 가방의 피혁은 물론 로고나 장식, 부속을 그대로 사용한다. 남은 자투리 피혁까지 미니 클러치나 카드지갑, 키홀더로 살뜰하게 되살려낸다.
오래되어 변색되고 모양도 틀어진 쇼퍼백이 실용적인 미니백과 카드 지갑 3개, 키링 3개로 대변신했다. | 한땀가방 제공 |
작년 초 가방리폼 전문업체 레더 몬스터를 연 이일호 대표는 최근 들어 “견적 의뢰가 200~300% 늘어났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카드 지갑 정도만 들어가는 미니백이 대세가 되면서 오만가지 잡동사니를 다 싣고 다니던 빅백은 자연스레 장롱 신세가 됐다.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리폼이 더욱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명품 백을 새로 구입하기보다는 기존 백을 바꿔보자는 의도로 리폼을 의뢰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온라인에 올라온 리폼 완성 사진에는 하나 같이 업체명과 가격을 알려달라는 ‘비밀’ 댓글이 붙는다. 업체와 제품에 따라 리폼 비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업체에서는 전화나 온라인메신저 1대1 상담을 통해 견적을 뽑는다. 작은 클러치나 소품은 비교적 저렴하고, 특피를 사용하거나 특별 주문의 경우 가격대가 높아진다. 블로거 찐순이씨도 “리폼 견적을 내다보니 웬만한 중저가 브랜드 가방 하나 값”인 업체도 있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핸드백의 리폼 비용은 20만~80만원대 정도라고 전했다.
한때 사랑 받았던 L브랜드의 가죽 백팩이 요즘 인기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남은 피혁은 지퍼달린 반지갑과 키링이 됐다. | 한땀가방 제공 |
리폼 시장이 각광받으면서 가방 리폼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 수선을 전문으로 하던 업체도 리폼으로 전향하는 추세다. 이일호 대표는 “1년 전에는 서울에서 10여 개 업체가 눈에 띄었는데 30~40개 가량 증가한 것 같다”고 했다. 수제 가방전문점을 운영하다가 2006년부터 리폼 및 수선을 병행하고 있는 한땀가방 최용일 대표는 “4~5년 전부터 이 시장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겸임교수를 역임한 청주시 그의 공방에는 전국에서 리폼 의뢰가 날아든다.
틀이 무너진 빅백은 사이즈는 줄이되 옆라인과 바닥을 보강해 꼿꼿한 자태의 날렵한 토트백으로 바뀌었다. | 레더 몬스터 제공 |
리폼의 핵심은 업체 선정이다. 이일호 대표는 “고가이고, 리폼의 기회는 한 번 밖에 없으니 업체 선정이 정말 중요하다”며 “고객과 잘 소통 하는지, 디자인 능력과 제작 기술을 두루 갖췄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찐순이씨는 “멀쩡한 가방 맡겼는데 리폼 후 망가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리폼 업체)장인의 설명과 본인만의 노하우를 들으면서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최용일 대표는 리폼 업체가 우후죽순 생기다 보니 실력이 부족한 업자들이 늘고 (전문기술자의 인건비 수준도 안되는) 적정 가격선이 무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가죽공예나 가죽공방 클래스를 단기 수강하고 리폼 업체를 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업체를 고를 때 “대표가 오리지널(가방 제작) 기술을 갖고 있는지, 가방 제작 관련 업계 용어를 잘 알고 있는지”를 살피면 좋다고 조언했다. 또 홍보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완성된 가방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정해서 올리는 경우도 있으니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실력을 내세우는 업체는 타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 고객이 맡긴 가방의 해체·제작 과정을 영상에 담아 보내주기도 한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제작 기간은 열흘에서 길게는 두 달까지 소요된다.
전혀 다른 디자인의 새 핸드백으로 탄생한 리폼 예. | 레더 몬스터 제공 |
리폼을 두고 “괜히 ‘명품’ 손대서 ‘짝퉁’ 만드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간혹 시판 중인 ‘명품백’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 최 대표는 “장인 정신으로 하는 일이라 특정 가방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고객의 요청을 반영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무리 내 소유의 가방이지만, 리폼을 통해 시판 제품 디자인을 ‘카피’할 경우 문제는 없을까. 김태연 변호사(법률사무소 동반)는 “2차 판매로 인해 수요자에게 상표를 오인하게할 가능성이 있다면 상품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긁힘 자국과 변색으로 손이 가지 않던 핸드백이 각잡힌 새 핸드백으로 바뀌었다. | 레더 몬스터 제공 |
환경을 생각한다면 에코백을 새로 구입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는 가방을 리폼해서 쓰는 것이 백번 옳다. 핸드백 디자이너이기도 한 이일호 대표는 리폼을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백’ 만드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그는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의 경우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반해 리폼 작업으로는 덜 부담스런 가격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리폼 제품의 질이 높아지며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