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뒤집어 놓으셨다” 최초의 연고대 ‘여대생’, 누구?
‘라떼’ 시절 입시 그리고 취업
연세대와 고려대에 입학한 첫 여학생 인터뷰를 실은 1984년도 <레이디경향> 기사 |
지난 16일,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학 입학시험이 치러지면서 한국의 많은 지역이 멈추어 설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명문대 진학이 대기업 취업의 필수 경로로 여겨진다. 때문에 매년 열리는 수능시험이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설명하며 일명 ‘입시 셧다운’을 언급했는데요.
좋은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입시와 취업에 대한 열정은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는 성역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는 영원한 라이벌, 연세대와 고려대, 고려대와 연세대가 있는데요. 마치 평행이론처럼 팽팽하게 이어지는 두 학교의 경쟁 구도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오늘 ‘옛날잡지’는 두 학교의 첫 여성 입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다뤄볼까 합니다. 1984년도 <레이디경향> 기사에서 찾아낸 ‘최초의 여학생’ 인터뷰입니다.
<옛날잡지> 가 찾아낸 ‘최초의 연세대 여학생’ 김혜선님 |
‘최초의 연세대 여학생’ 김혜선님은 1947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주위의 반대를 애써 물리치고 당당히 남자대학을 남녀 공학으로 바꿔놓은 용감한 여학생”이었다고 하는데요. 연세대학교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는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광복 후 1946년, 연희대학교로 종합대학으로 변모하면서 ‘남자’에 국한됐던 조항을 삭제했고 이듬해인 1947년 9월 10명의 여학생 입학을 허가함에 따라 ‘공학’이 됐죠.
‘공대 아름이’와 같았던 김혜선님의 재학 시절은 어땠을까요? 인터뷰가 진행된 건 입학 후 37년이 흐른 시간이었지만 그는 학창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총장이었던 백낙준 박사의 부인인 최이순 여사가 총장실 바로 옆에 여학생 휴게실을 만들어주고 혹 불편해하진 않을까 챙겨줬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도 그를 ‘김군’이라고 부르면서 아껴줬고요.
그러나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연대 역시 휴교가 진행됐고, 이분 역시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어수선한 시대에도 꺾이지 않았던 열정! 김혜선님은 동문인 남편 이병용 변호사와 결혼한 후에도 대학 강의를 하며 교단에 섰습니다. 딸도 연세대, 사위도 연세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온 가족이 ‘연대 동문’으로 묶였다고 하네요.
과거 대학 입시 방법을 소개하는 <옛날잡지> 갈무리 |
이번엔 최초의 고려대학교 여학생을 만나보겠습니다. 연세대보다 1년 이른 1946년 9월, 법대에 입학한 김미경님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지원 동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서울대 지원서가 몽땅 떨어져서” 고려대를 지원했다고 하는데요. ‘클릭’으로 원서 접수가 해결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입시 제도가 인상적입니다.
김미경님 역시 전쟁으로 인해 8년간 대학을 다녔다고 합니다. 함께 입학했던 여자 동기들과 달리 이분은 졸업까지 성공한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는데요. 광복 후 혼란스러운 시대, 한국 정치사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이 그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잡지> 가 찾아낸 ‘최초의 고려대 여학생’ 김미경님 |
그러나 아쉽게도 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동창과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결혼한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녹록하지 않았던 환경, 40여 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부모님이 모두 고대 출신이라는 획일성에 반기를 든” 자녀들은 어느 대학을 선택했을까요?
80년대 여성들의 대학·사회 생활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옛날잡지> 장면. |
여기서 잠깐, ‘여대생’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남대생’은 없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4년제 대학을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합니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지른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죠?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도 고학력이었고, 일부 대학을 진학한다고 하더라도 공학보다는 여대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학과 선택도 가정교육과, 유아교육과, 간호학과 등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여대를 가는 학생’, 즉 여대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죠.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도 학업을 이어가거나 취업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민간 기업 중 ‘대졸’ 여성을 뽑는 곳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달 <레이디경향>에 출간한 책 속 부록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시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식 여성론’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84년도 <레이디경향> 책 속 부록 |
‘80년대식 여성론’이라는 제목의 부록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격려하며 낸 제작한 것인데요. “여자도 남자다워야 한다”, “남자 말씨를 적당히 가려 쓸 줄 아는 여성은 쾌활함을 느끼게 한다” 등의 문구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지금 시대 성인지 감수성 기준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노곤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90년대생들은 모르는 80~90년대 캠퍼스 그리고 직장 생활. ‘라떼’ 시절을 걸어온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함께 읽어 더 재밌는 <옛날잡지>에서 함께 해요.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