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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되는 예술… 슈퍼팝 유니버스

‘팝아트의 거장’ 케니 샤프, 아시아 첫 개인전

회화·조각 등 100여점, 한국 팬들을 위한 벽화도

핵전쟁 공포·환경 등 주제…현란하고도 선명한 메시지

일상이 되는 예술… 슈퍼팝 유니버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팝아티스트 케니 샤프의 기획전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를 찾은 관람객들이 ‘코스믹 캐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난데없이 클럽이 나타난다. 요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현대식 클럽도 아니다. 1970~1980년대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있었다는 ‘전설의 장소’ 클럽 57이다. 머리 위에서는 미러볼이 돌아가고 당시에 유행했던 음악도 흘러나온다. 벽에는 케니 샤프와 키스 해링, 존 섹스 등 클럽 57에 모여 새로운 예술을 고민했던 인물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어느새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뮤지엄에서 막을 연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는 샤프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여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1970년대부터 케니 샤프가 만들어온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100여점이 모여 있다. 한국 관람객들을 위해 샤프가 특별히 그린 벽화도 준비됐다. 팝아트에 특별히 거부감을 갖지 않는 관객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즐겁게 볼 수 있다.


샤프는 1980년을 전후해 뉴욕에서 키스 해링(1958~1990),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 등과 어울렸다. 스승이자 롤모델인 앤디 워홀(1928~1987)을 만나고 클럽 57 등에서 퍼포먼스와 실험적 전시를 계속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번 한국 전시회를 기획한 롯데뮤지엄은 샤프에게 “팝아트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사실 해링이나 바스키아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이 수식어는 그들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바스키아는 1988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해링은 1990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샤프는 죽지 않았고, 절친한 동료의 죽음에도 계속 작업을 이어가 ‘황제’가 됐다. 팝아트에서 더 나아간 ‘팝 초현실주의’와 ‘슈퍼팝’이란 용어도 샤프가 만들었다. 샤프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고, 홀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법을 배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고 말했다.

일상이 되는 예술… 슈퍼팝 유니버스

케니 샤프가 특별행사로 추첨에 뽑힌 사람의 자동차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클럽 57을 지나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되면 먼저 1979년작 ‘에스텔의 죽음(Death of Estelle)’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샤프가 뉴욕 백화점 매장에 전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외계인 덕분에 핵전쟁을 피해 지구를 떠난 여성(에스텔)의 모습이 연달아 펼쳐진다. 우주선 밖으로는 ‘버섯구름’ 영상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둥둥 떠다닌다.


‘에스텔의 죽음’에는 샤프의 초기 세계관이 모두 담겼다. 샤프는 “제가 어릴 적만 해도 20, 30년 뒤에는 모든 사람이 우주에 갈 것이라고 했다”며 “예전에 꿈꾼 것들을 제 작업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냉전시대를 맞이하고,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1979년 3월)까지 나면서 핵전쟁에 대한 공포 역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에스텔의 죽음’은 가벼워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극단적인 화려함을 추구한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대표작 ‘코스믹 캐번’은 환경 파괴에 대한 걱정을 담았다. 샤프는 1981년 키스 해링과 함께 살던 아파트 옷장 안에 주워온 플라스틱 폐기물과 형광 페인트 등으로 첫 번째 코스믹 캐번을 만들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30개가 넘는 코스믹 캐번을 선보였다.


이번 ‘한국판’에서는 한국 관람객 50명이 기증한 낡고 재미있는 장난감을 사용해 공간을 꾸몄다. 백남준의 작품을 오마주하기 위해 TV도 설치했다.


샤프는 “1960~1970년대만 해도 재활용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쓰고 나면 바로 버리는 문화가 당연했다”며 “지금은 모두가 플라스틱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면서도 그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 같다. 계속 (환경 메시지를) 작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샤프의 작품은 가볍고 현란하다. 눈에 쉽게 들어오고 메시지도 선명하다. 만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기에 ‘애들용’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샤프는 이렇게 말한다. “잠시만, 이 그림에는 보기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또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예술이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벽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탈출하게 하는 예술의 힘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이어진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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