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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기다린 봄…희망도 꽃피우리다

梅花의 마을, 경남 산청·함양 지리산에 가다

경향신문

남명 조식의 이름을 딴 남명매는 산청 삼대 매화 중 하나다. 조식의 공부방인 산천재 뜰에 핀 남명매. 사람들은 남명매를 보며 청빈과 지조를 떠올리곤 한다.

남명 조식이 머문 산천재 인근

‘남명매’ 등 다양한 매화나무들

보통 지조와 절개 상징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에 상춘객 발길


근처 동의보감촌·허준 순례길

힐링하며 한방의료체험도 가능


지리산은 경남 산청·하동·함양과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3개도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이들 지역이 다들 지리산을 내세우는데, 정상 천왕봉이 주소지를 둔 곳은 산청이다. 산청군은 ‘지리산과 동의보감의 고장’이라고 선전한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일대 자연지리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시천면과 심장면에 걸친 구곡산은 ‘천왕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홉 굽이’ 산이다.


남명 조식(1501~1572)이 연고 없던 산청에 올 때 준거 하나가 지리산이다. 61세 때인 1561년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 들어온 뒤 ‘덕산복거(德山卜居)’라는 시를 남겼다. “봄 산 어느 곳인들 아름다운 풀 없겠는가마는/ 천왕봉이 상제 거처에 가까운 것이 좋기 때문이라/ 빈손으로 왔으니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은하 십리의 물 먹고도 오히려 남으리.”


지리산을 10여차례 답사한 뒤 산천재를 지었다. 천왕봉이 내다보인다. 후학들은 툇마루에 앉아 남명매와 천왕봉을 바라보며 조식의 생애를 헤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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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 예담촌 홍정매는 고사목에서 살아남은 가지에서 피어난다.

조식이 산천재 뜰에 심은 매화나무가 호를 따 붙인 남명매다. 앙상하되 강고한 나뭇가지에서 피어난 꽃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전날(25일) 산청 일대에는 비가, 천왕봉엔 눈이 내렸다. 조금 더 기온이 낮았더라면 설중매(雪中梅)를 봤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산천재는 임진왜란 때 소실돼 1818년 복원한 것인데, 이 매화나무는 450여년을 버텨왔다. 조식의 매화에 관한 시가 ‘설매(雪梅)’다. “한 해 저물어 바라보니 홀로 서 있기 어려운데, 지난밤에 눈이 내려 새벽이 되었구나, 선비 집 오래되어 외롭고 가난함이 심한데, 다시 나 돌아오니 더욱더 맑게 되었네.” 학자들은 가난해도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살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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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매는 정당매, 원정매와 함께 ‘산청 삼매’로 불린다. 정당매는 고려 말 대사헌과 정당문학을 지낸 통정공 강회백(1357~1402)이 단속사에 심은 것이다. 조식은 ‘단속사정당매(斷俗寺政堂梅)’도 썼는데, 고려가 망하고도 조선에서 벼슬(동북면도순문사)을 한 강회백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 한 토막이 매화를 두고 이렇게 이어진다. ‘경남의 하회마을’이라 불리는 남사 예담촌에도 고려 말, 조선 초 역사의 일단이 내려온다. 정몽주 후손이 이곳에 귀양 왔다.


산청 삼매 중 하나인 원정매가 고려 말 원정공 하즙(1303~1380)이 살았던 고택 마당에 있다. 고사목에서 살아남은 가지들이 매년 홍매화를 피워낸다. 하씨 집안 고택의 이 원정매와 박씨, 이씨, 정씨, 최씨 고택의 매화나무를 ‘오매불망(寤寐不忘)’의 음을 따 ‘오매불망(五梅不忘)’이라 부른다. 이씨 고택 골목길에 ‘X’자 모양으로 굽은 300년 된 회화나무와 산청곶감의 원종인 620년 수령의 하씨 고가의 감나무도 예담촌을 상징하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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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서원 담벼락 모서리 끝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서원 건물 하나가 매화를 노래한다는 뜻의 영매헌(詠梅軒)이다.

산청은 황매산 철쭉으로도 유명하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상춘객들이 몰려갔다. 분홍빛 철쭉 군락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하는 게 산청의 매화나무들이다.


매화는 주로 군자나 지사, 선비 같은 유교적 인간상을 상징한다. 모두가 매화 앞에서 지조와 기개, 청빈을 떠올리는 건 아니다. 춘정(春情)이나 정인(情人) 같은 문학적 상징도 포함한다.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꽃 중 매화만 한 건 없다. 봄 매화 찾아 떠나는 ‘탐매(探梅)’는 지금도 전국 매화 명소에서 이어진다. 이 탐매가 탐미(耽美) 같기도 하다.


매화가 감상의 대상만도 아니다. 조선 시대 문인 어무적은 매화나무에 매긴 과도한 세금에 분노한 주민이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린 사건을 두고 ‘작매부(斫梅賦)’라는 시를 지었다. 관리의 횡포를 규탄한 것이다.


산청은 ‘지리산과 동의보감의 고장’이라 했는데, 허준(1539~1615)과 산청의 관계는? 허준이 산청에 살았다는 구체적 기록은 없다. 32세 때인 1569년 내의원으로 천거되기 전 허준의 기록은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 동의보감촌 홈페이지 ‘산청 인물여행’ 중 허준 항목에도 ‘산청’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추정이 있을 뿐이다. 경희대 한방병원장을 지낸 노정우가 1965년 산청 출생설과 성장설을 제기했다. 드라마 <동의보감>이나 소설 <동의보감>이 이 추정에 근거했다.


그렇다고 산청이 한방이나 약초를 대표할 자격이 없는 지역은 아니다. 드라마와 소설 속 가공 인물인 ‘유의태’의 모델 ‘유이태(?~1715)’가 산청 출신이다. 초삼·초객 형제도 명의로 알려졌다. 산청엔 지리산에 자생하는 약초를 오래전부터 채취하며 민간요법을 계승하는 이들이 있다.


동의보감촌은 고령토 고갈 뒤 광산 자리에 지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보통 사람들의 기원과 기복을 구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체현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한방기체험장’이고, 그중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귀감석’이다. 사람들은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에 팔을 뻗어 기를 받으려고 한다. 무병장수와 소원성취도 빈다.


산과 숲이 주는 기운과 효과는 분명하다. ‘허준 순례길’ 같은 둘레길을 만들었다. 한방기체험장 부근 전망대에선 황매산~정수산의 능선도 드러난다. 주소지는 금서면 특리(特里)인데 ‘특’자를 쓰는 데는 서울특별시 말고는 없다.


경남관광재단과 산청군, 함양군은 ‘경남 웰니스 관광’을 홍보하려 기자들을 초청했다. 거창과 합천까지 ‘한방항노화 웰니스관광’ 클러스터로 묶여 있다. 2000년대 초반 나온 ‘한방의료관광’ 개념이 구체화된 게 동의보감촌과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다. 함양군은 올해 9월10일~10월10일 전시관이 들어선 상림공원과 대봉산 휴양림에서 엑스포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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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상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최치원 역사공원도 주변에 만들었다.

이곳도 ‘스토리텔링’에 기반했다. 상림공원 주제 전시관엔 진시황과 불로초, 서복에 관한 전설을 전시해놓았다. 늙음을 피하려면, 효도를 하려면 산양삼을 먹고 선물하라는 메시지가 전시관에 가득하다. 2016년 8월 채취한 100년 이상 된 천종삼도 전시물 중 하나다. 담금주 용기에 담긴 건 폼알데하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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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상림공원 내 항노화엑스포 주제 전시관에 나온 100년 이상 된 천종삼. 2016년 8월 채취했다. 폼알데하이드에 담겨 먹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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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종삼을 보며 엉뚱하게도 상어를 폼알데하이드에 넣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이나 동물과 식물의 대비에 용기에 담긴 전시물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미국산 산삼(화기삼)과 베트남 산삼(녹린산삼)이 있다는 것도 폼알데하이드 전시물을 보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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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전망공원에서 운무 때문에 정작 천왕봉 등 조망은 하지 못했다.

상림은 1100년 전 최치원이 조성한 방풍방재호안림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실개천도 만들어 가뭄에 대비했다. 지리산을 떼어놓을 수 없다. 최치원이 직접 나서 지리산의 여러 활엽수를 상림에 옮겨심었다고 한다. 상림 함화루는 함양읍성 남문인데, 조선시대 망악루(望嶽樓)라 불렀다.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 이렇게 이름 지었다. 함양의 지리 중심도 지리산이다. ‘오도재/지안재’는 예나 지금이나 함양읍에서 ‘지리산 가는 길’이다. 도로명도 같다. 이 길 위 지리산조망공원도 들렀지만, 운무 때문에 천왕봉을 볼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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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재의 도로명이 ‘지리산 가는길’이다. S자 모양의 길을 촬영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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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동의보감촌 조망대에선 황매산 등을 볼 수 있다.

함양에서도 매화를 봤다. 남계서원은 1552년 일두 정여창(鄭汝昌)을 기리려 지은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존속했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9개 서원 중 하나다. 서원 담벼락 모서리 끝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남계서원 건물 하나가 매화를 노래한다는 뜻의 영매헌(詠梅軒)이다. 중국 고사에 따르면 매화는 글을 좋아하는 나무라는 뜻의 ‘호문목(好文木)’이라고 부른다. 진나라 무제가 공부에 힘을 쏟으면 꽃을 피우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피지 않았다고 한다. 서원 매화나무는 감시목(監視木) 역할도 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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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밖으로는 솔밭과 대밭이 이어진다.

산청·함양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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