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면 ‘반전 장인’이 설계한 ‘해석의 장’이 열린다
‘겟 아웃’ 조던 필 감독의 후속작 ‘어스’도 해석 열풍
영화 <어스> 는 개봉 이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어스 해석’이 오를 만큼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UPI코리아 제공 |
※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관람이 끝나도 감상이 끝나지 않는 영화가 있다. 지난 8일 기준 국내 136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어스>가 대표적이다. 결말부의 기막힌 반전으로 ‘해석 열풍’을 몰고 왔던 영화 <겟 아웃>을 만든 조던 필 감독의 후속작답게 <어스>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관객을 ‘해석의 장’으로 초대한다. 국내외 관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에서 영화 속 단서와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가며 풍부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샌타크루즈의 놀이동산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아이와 마주쳤던 기억에 괴로워하던 ‘애들레이드’(루피타 뇽오)는 이제 한 가정의 엄마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과거로 남는 듯했던 공포는 이들 가족이 샌타크루즈로 휴가를 떠나면서 현실로 되살아난다. 애들레이드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까지 똑 닮은 ‘불청객’들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불청객들은 과거 모종의 실험으로 탄생한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애들레이드 가족은 사투 끝에 살아남는다. 그런데 반전이 남아 있다.
1. ‘불청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① 불청객의 의미…“괴물은 우리의 얼굴…” |
“우리(Us)잖아!” 별안간 집에 들이닥쳐 가위를 들고 공격해오는 불청객을 본 애들레이드의 아들 ‘제이슨’(에번 알렉스)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와 똑 닮은, 그러나 ‘우리’의 생존을 위해 없앨 수밖에 없는 이 ‘불청객’들은 관객들이 맞닥뜨린 첫번째 수수께끼다. 영화는 이들이 실패한 실험의 결과로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채 지하에 갇혀 지상의 ‘원본’ 인간의 행동만을 그대로 따라해온 복제 인간이며,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지상에 나와 원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 서사를 단순히 ‘복제 인간의 습격’으로 읽어내지 않았다.
‘불청객’은 ‘우리’를 보호하고 ‘타자’를 배제하는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는 장치로 해석된다. 관객은 영화 속 복제 인간을 보며 ‘우리’를 위해 봉사하는 국가가 배제하고 차별하는 ‘우리 아닌 것’의 모습을 확인한다. 특히 영화 속 ‘복제 실험’이 실제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벌인 불법 생체실험 ‘MK 울트라 프로젝트’에서 착안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러한 해석에 더욱 힘이 실렸다.
영화는 ‘우리’에 대한 믿음에도 균열을 낸다. 애들레이드가 알고 보니 복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 그렇다. 믿음직한 ‘우리 가족’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이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죽이고 직업을 빼앗을 것만 같은 미스터리한 침입자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투표한 이들이든, 서로를 두려워하는 시대에 서 있다. 서로 손가락질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괴물은 우리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악은 우리일 수 있다.”
2. “우리는 ‘미국인’이야”
② US, 다시 읽으면 ‘미국인’…온정과 차별 혼재한 ‘이중성’ |
복제 인간들이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소개할 때, 영화 제목인 ‘US’는 ‘United States(미합중국)’로 다시 읽힌다. 영화가 미국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겨누고 있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특히 관객들은 영화의 초반 등장하는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Hands Across America)’ 운동에 주목했다. 1986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이 운동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는 퍼포먼스를 통해 빈민 기금을 마련하는 캠페인이었다. 당시 약 600만명의 미국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이 운동의 무용함과 함께 미국인들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온정을 나누자는 캠페인 너머에는 변하지 않는 차별적 현실, 냉혹한 자본주의가 있다.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1200만개의 눈과 1억9200만개의 이빨을 가진 자들은 금문교에서 쌍둥이빌딩까지 뻗어 있다”는 문구는 곧 이 운동에 참여한 600만 사람의 모습을 최대한 ‘비인간적’으로 묘사했다. 이 표현은 지하에서 인간들의 행동을 의미 없이 따라하는 복제 인간에 대한 묘사로도, 빈곤에 대한 구조적 접근 없는 운동의 무용함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영화는 과거의 미국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애들레이드는 복제 인간의 공격을 피해 “멕시코로 떠나자”고 주장한다. 영화 말미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를 모방해 만든 복제 인간들의 인간띠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수의 관객들은 이들 장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멕시코 장벽’을 연상했다.
3. 11:11과 호두까기 인형
③ 반복되는 11 : 11…거울쌍처럼 닮은 관계 은유 |
예레미야 11장 11절, 야구 경기 점수 11:11, 부랑자의 이마에 새겨진 숫자 1111, 우연히 본 시계에 뜬 11시11분. 영화는 ‘11:11’이라는 숫자를 통해 거울쌍처럼 닮은 ‘불청객’과 ‘우리’의 관계를 끊임없이 은유한다. 차 안에서 애들레이드 가족들이 듣는 노래 ‘아이 갓 파이브 온 잇(I Got Five on It)’도 그렇다. 10달러짜리 대마초를 5달러씩 모아서 사자는 가사 내용 역시 나와 닮은 ‘짝’이 존재한다는 <어스>의 기묘한 세계관을 뒷받침한다. 복제 인간들이 사용하는 흉기 ‘가위’ 역시 두 개의 부분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짝’의 은유를 그대로 이어간다. 동시에 이 ‘짝’을 잘라 끊고자 하는 욕망까지 표현한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영화는 애들레이드와 그의 ‘짝’ 레드가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 맞춰 춤추는 장면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호두까기 인형’의 결말은 발레단 안무에 따라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주인공 클라라가 꿈에서 깨어나 행복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는 결말과, 꿈에서 깨지 않은 채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여행을 계속하는 결말. 같은 춤을 추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꿈꾸는 두 인물은 이 중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