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고 ‘이름’ 붙이자 예술이 된… 세상 가장 유명한 소변기
현대미술의 혁명가 뒤샹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표작 ‘샘’ 국내 최초 공개
주요 작품 미니어처로 넣은
빨강 가죽 ‘여행가방 속 상자’
한국 소장품과 비교하는 재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라고 해야 할까. 마르셀 뒤샹(1887~1968·사진)의 그 유명한 작품 ‘샘’이 지난 2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소장품이다. 다른 작품 150여점도 함께 한국을 찾았다.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뒤샹이란 이름을 들어보고 사진으로라도 ‘샘’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책으로, 또는 영상으로만 뒤샹을 접하던 미술 애호가들이 고대하던 행사다. 올해는 뒤샹이 세상을 떠난 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22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마르셀 뒤샹의 1950년작 ‘샘’. 뒤샹이 1917년 내놓은 원본을 ‘재제작’한 것으로 프랑스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구매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뒤샹이 1917년 내놓은 ‘샘’은 당시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미 이름난 화가였던 뒤샹은 이사로 일하고 있던 미국 뉴욕독립예술가협회가 ‘민주주의와 수용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수호하는지 시험해보고자 협회의 첫 전시에 평범한 남성용 소변기를 내놓았다. 출품자 이름으로 리처드 머트(R Mutt)라는 가명을 썼고 작품에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시회 감독들은 ‘샘’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예술품이 아니다’란 결론을 내렸다. 뒤샹은 이에 항의해 이사직을 사임했다.
‘샘’은 뒤샹이 창안한 ‘레디메이드’(‘기성품’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미술의 맥락 안에 놓여 의미를 가진다)라는 개념의 작품이었다. 뒤샹은 이미 1913년 작은 의자에 자전거 바퀴를 붙여 작품으로 내놨고, 1914년에는 와인병을 건조하는 금속스탠드를 사서 ‘병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샘’을 시작으로 기성품을 ‘선택하고 이름을 붙인’ 것도 작가의 창작으로 봐야 하는지 치열한 논쟁이 시작됐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샘’은 뒤샹이 1950년에 만든 ‘재제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지회 학예연구사는 “ ‘원래 샘’은 사진만 남아있고 1919년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작품은 뒤샹이 1950년 파리 전시회를 위해 직접 벼룩시장에서 구매해 서명한 것으로 ‘재제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뒤샹은 많은 재제작품이 만들어질수록 작품의 가치는 떨어지고, (레디메이드란)개념의 의미는 더 커진다고 봤다”고 말했다.
뒤샹이 미술계에 논란을 부른 것은 ‘레디메이드’가 처음이 아니었다. 1912년에는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를 프랑스 파리 ‘살롱 드 앙데팡당’에 출품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뒤샹은 누드 형상을 움직이는 기계로 묘사했는데, 심사위원회는 뒤샹에게 ‘수정’을 요청했다. 누드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재현한 방식, 캔버스 하단에 굵은 글씨로 써놓은 제목 등이 문제가 됐다. 뒤샹은 수정 대신 작품을 거둬들였고, 이듬해 뉴욕 아모리쇼에 출품해 큰 명성을 얻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 역시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뒤샹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따라간다. 1부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한 그림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2부는 ‘샘’을 비롯한 ‘레디메이드’ 작품들로 구성됐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뒤샹의 1966년판 ‘여행가방 속 상자’(위 사진).국립현대미술관이 2005년 6억여원을 주고 구매한 뒤샹의 1941년판 ‘여행가방 속 상자’(아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3부에서는 2개의 ‘여행 가방’을 주목해야 한다. 1·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뒤샹은 자신의 작품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전시용 상자를 만들었다. ‘신부’ ‘샘’ 등 주요 작품을 소형으로 만들어 넣었다. 이 시리즈는 7개 버전으로 총 307개가 제작됐는데, 이번 전시장에 2개가 나란히 배치됐다. 빨강 가죽 가방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갖고 있는 1966년판, 갈색 나무 가방은 1941년판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5년 이 작품을 구입하면서 역대 최고액(약 6억원)을 지불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뒤샹 아카이브인 4부의 말미에는 ‘에탕 도네’(불어로 ‘주어진 상태’를 의미)가 ‘디지털판’으로 준비되어 있다. ‘에탕 도네’는 관객들이 낡은 나무문에 뚫린 2개의 구멍으로 안쪽의 모습을 엿보도록 되어 있다. 풀숲에 널브러진 누드와 손에 든 가스등, 그리고 그 뒤에 실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폭포 등이 제한된 시야 속에 들어온다.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하면서, 작품 해석은 관객 스스로에게 맡긴다. 뒤샹은 죽기 전까지 비밀리에 ‘에탕 도네’를 제작한 뒤 자신의 사후에 공개되도록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필라델피아미술관과 똑같은 크기의 공간에 디지털 영상으로 ‘에탕 도네’를 구현했다. 영상으로나마 ‘에탕 도네’를 보면, 필라델피아에 가서 ‘진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뒤샹은 1946년 미국 현대미술관 회보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창의력의 소진은 언제나 한 시대의 예술가들이 기성작가의 대를 이어 그가 하던 것을 그저 계속하는 데 만족하는 순간 일어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다. 전시는 내년 4월7일까지.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