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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경향신문

빌딩·공장만 있다고요?… 고분군·억새밭도 공존하는 도시죠

‘대도시’ 이미지 강한 이곳에…가 볼만한 ‘비대면 여행지’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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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유수지 억새밭 사이로 생태 탐방로가 나 있다.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 리듬에 맞춰 걷는 맛이 좋다. 유수지 제방 너머 달성습지도 탐방로가 만들어졌다. 유수지 길은 대구수목원(대구둘레길 10코스)과 강창교(9코스)로도 이어진다.

대구 하면 ‘보수’ ‘산업’ ‘광역’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코로나19 최초 확산지란 이미지도 강하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대구 여행’은 조금 낯선 말이었다. 대구에 네번 갔는데 다 출장이었다. 여행을 가려 한 적은 없다. 여행 목적지를 고를 때 ‘대도시’는 우선 제외하곤 했다. 대구에서 가본 곳이라곤 기차역과 경기장, 컨벤션센터 같은 데뿐이다. 건물과 건물을 오가며 바삐 움직인 기억밖에 없다.


동선의 문제, 무지의 문제라고 깨달은 건 동구 불로동 고분군(不老洞 古墳群)에 도착했을 때다. ‘대구 여행’에 관한 선입견과 이미지가 깨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대구 지도’가 넓어졌다.


불로동 고분군은 요즘 말로 비대면(언택트) 여행지로 적격이다. 학계에선 4~5세기 이곳 지배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누가 왜 무덤을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금동제 장신구와 철제 무기가 나왔다. 상어 뼈도 나왔다. 물론 이곳은 바다는 아니었다. 염장한 상어 고기(돔배기)를 먹었으리라고 추정한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제사상에 돔배기를 올린다.


장관이다. 무덤 211기가 29만9746㎡(약 9만673평) 면적에 고루 퍼져 있다. 묘지나 납골당을 곁에 두기 싫어하는 게 보통 한국인의 정서인데, 옛사람들의 무덤은 기피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라졌다. 이곳을 ‘대구의 전망대’로 부르기도 한다. 83타워와 앞산, 월드컵경기장 같은 대구의 랜드마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완만한 능선에 넓게 퍼진 이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은 덱이나 수직의 콘크리트 건축물로 지은 전망대에서 보는 그것과는 다르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풍경을 즐기거나 상념에 빠질 수 있다. 걸음마다 도시가, 산이, 무덤이 엇갈리며 시야에 들어온다. 능선 따라 곳곳에 솟아난 무덤 하나하나가 각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흙을 쌓아 올린 무덤(봉토분, 封土墳) 밑지름은 21~28m, 높이는 4~7m다.


불로동에선 고대와 근대, 현대 역사가 중첩된다. 불로동은 기원 전 1~2세기 초기 철기시대 유적지다. 1935년 일제의 공항 건설 때문에 불로동 농민들이 농지를 잃을까 봐 걱정한다는 기록이 기사로 남아 있다. 고분군은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팔공산 지맥과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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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왼쪽 사진)은 대구의 여러 랜드마크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도심 한복판의 수성못은 지난 4월 한국관광공사의 ‘야간경관 100선’에도 뽑혔다.

고분군은 지금 ‘대구올레 팔공산 6코스’ 중 하나다. 봉무공원으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폭력의 역사가 남았다. 동굴 진지(10개)는 태평양전쟁 때 수세에 몰린 일본이 동촌비행장(현 대구공항)에 착륙하는 미군 전투기에 대비하고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3000여명이 강제 징발돼 곡괭이로만 굴을 팠다. 공원 내 단산지는 1932년 축조됐다. 농업용수 공급 목적으로 지은 저수지 둘레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오리보트 선착장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문을 닫았다. 반쯤 물에 잠긴 오리보트 너머 수면 위로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수성못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도 1927년 농업용수를 공급하려 만든 저수지다. 가로등과 조명에다 주변 상업시설과 주거단지에서 나오는 불빛이 도심 한복판의 거대한 밤 풍경을 빚어낸다.


대구의 비대면 여행지는 ‘광역’과 ‘산업’의 이미지를 되새기게 한다. 고즈넉한 풍경 너머로는 공단과 아파트단지가 드러난다. 풍경의 한쪽엔 도로가 길을 내며 지나간다. 옛 건축물과 현 건축물이 경계를 이루면서 한데 어우러지며 대구만의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냈다.


대명유수지도 그중 하나다. 27만7685㎡(8만4000평) 면적 유수지 하이라이트는 억새밭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출렁이는 억새 너머로 건축물이 드러난다. 위로는 외곽순환고속도로 건너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굴뚝이, 오른쪽으로는 달서대로와 대구환경공단이 들어섰다. ‘맹꽁이 생태 학습장’인데 육안으로 그 생물을 확인하긴 어렵다. 생태로에 들어가면 그저 억새에 파묻히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맹꽁이보다는 억새를 보러 오는 듯했다.


낙동강 쪽 제방 너머는 달성습지다. 달성군 화원읍 구가리, 달서구 파호동, 경북 고령군 다산면 일대에 걸친 달성습지를 제대로 보려면 화원동산으로 가야 한다. 이곳 전망대에선 금호강과 낙동강 사이 수위에 따라 한반도나 남미대륙으로 보이는 습지가 드러난다.


화원동산에도 역사가 흐른다. 신라시대(추정) 토성과 상화대 흔적이 남았다. 동산 가는 길 낙동강변 사문진나루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교통 요지다. 1472년 대일 무역 중심지 역할을 한 왜물고(倭物庫)가 설립됐다. 1900년 미국 선교사 리처드 사이드보텀이 피아노를 이곳을 거쳐 대구로 운송했다. 일제가 1928년 화원유원지로 조성했다. 이규환의 1932년 작 <임자 없는 나룻배> 배경이 이곳이다.


화원일대는 한국전쟁 때 ‘대구방어작전’이 벌어졌다. 전망대 옆엔 필승기원비가 서 있다. “ ‘작전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것을 기려 1951년 4월 세운 비를 다시 복원해 단장한다며 ‘이곳이 호국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성지’가 되길 바란다”는 글이 ‘2000년 6월 대구시장 문희갑’의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 대구·경북이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지난 6월 낸 보고서 중 자체 진단도 “지역의 이미지 훼손과 관광산업 침체여파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시 초청으로 대구를 방문한 지난 8~9일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6~7일째 0명이었다. 이후 꾸준히 1~0명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관광뷰로 관계자는 “ ‘대구 봉쇄령’ 말까지 나왔던 상황을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다른 지역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 대구의 많은 시민이 예민할 정도로 방역에 신경을 쓴다. 다시는 이런 일(확산)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다짐을 하신다. (그 고통과 피해를)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론 매콤 ! 때론 담백 ! …입맛 돋우는 대구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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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 수제화거리와 북성로는 대구 골목 탐방 1번지다. 옛 문화예술인들의 자취가 곳곳에 남았다. 골목엔 싸고 맛난 식당들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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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웠다. ‘대구 10미’ 중 동인동찜갈비와 무침회를 먹으면서 느낀 맛이다. 혀를 파고드는 얼얼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맛있다. 자꾸 젓가락이 갔다. 회나 갈비보단 양념에 중독되는 듯했다.


대구시는 10가지 음식을 ‘대구 10미’로 홍보한다. 따로국밥, 소막창구이, 뭉티기, 논메기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야끼우동, 납작만두도 포함한다. 소막창구이와 뭉티기, 누른국수, 납작만두를 빼면 모두 마늘과 고춧가루를 주재료로 만든 매콤한 양념이 들어간다. 납작만두가 무침회와 곁들여야 제맛이고, 뭉티기도 양념에 찍어먹어야 하는 음식인 걸 감안하면 10미 중 8미가 매운 양념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음식이다.


매운 양념을 기본으로 한 음식이 왜 유독 대구에 많을까. 구체적 일단이 나온 건 따로국밥이다. 1973년 7월26일자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따로국밥의 시조 격인 국일식당이 1950년대 후반 일반 육개장보다 고추, 마늘을 세 배 이상 넣은 국밥을 내놓는데 ‘히트’를 친다. 식당 주인은 손님들이 즉석에서 매운 양념을 만드는 데서 따로국밥을 착안했다고 한다. 택시 기사는 “여름에 입맛을 돋”운다며 음식평을 한다. 이열치열 음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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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고기, 돔배기전, 자장면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 불리는 기후 특성이 작용한 듯하다. 휴식과 수면, 운동, 식사를 잘하는 게 과학적인 건강 비법이라지만, 매운 음식의 화끈함과 포만감이 온몸과 기분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순 없다.


내 음식 취향에 더 맞는 곳은 향촌동 수제화거리 일대 골목 음식점이다. ‘싸고 맛난’ 집들이 즐비했다. 너구리 주물럭은 잔치국수를 2000원, 연탄불고기를 3000원(소자)에 팔았다. “이 가격이라니” 자꾸 감탄하게 되는 건 연탄으로 익혀낸 일품의 고기맛 덕이다.


진미식당에선 대구 제사상에 오른다는 돔배기전(6000원)과 배추전(4000원)을 먹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돔배기의 부드러운 식감과 배추의 아삭함이 절로 느껴졌다. 해주분식의 자장면(4000원)은 속재료가 감자, 무, 당근이 다다. 어김없이 고춧가루가 등장한다. 선택권을 준 다른 지역 자장면집과 달리 애초 양껏 고명으로 뿌려 내놓는다. 고기도 기름기도 없는 ‘담백한 자장면’을 맛본 건 처음이다. 면이 잘 풀어져서 또는 고기가 없어(풀뿐이라서) ‘풀자장’이라는 이름이 애칭처럼 붙어 있다. 밑지고 파는 장사는 없다지만, 수제화거리 가게를 돌며 제값을 받아 수익을 내는지, 노동력을 갈아내는 건 아닌지, 임대료는 어떤지 걱정도 됐다.


향촌동은 ‘가장 번화한 지역’이란 뜻으로 지어졌다. 수제화거리는 대구읍성의 북쪽 성을 허물고 낸 북성로와 이어진다. 이 일대는 한때 대구 최고 번화가이자 문화예술 거점이었다. 대구 골목여행 제1길 ‘경상감영 달성 길’이 향촌동과 북성로 곳곳을 이어낸다.


대구 | 글·사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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