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도 미화도 없다" 대림동 배경으로 한 '빅 포레스트'의 시도가 빛나는 이유
tvN '빅 포레스트' 에서 임청아(최희서)는 중국 연길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싱글맘’이 됐다. 아들과 함께 대림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tvN 제공 |
“근데 아줌마 조선족이죠? 아까부터 말투가 좀 이상한 것 같애.” “진짜 조선족이에요? 조선족같이 안 생겼어요.” “그러니까, 조선족은 막 <범죄도시>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도 험악하게 하고 행동도 무식하고 그래야하는 거 아냐?” “맞아.”
지난 5일 방송된 tvN 금요드라마 <빅 포레스트> 5회의 한 장면이다. 히치하이킹으로 차에 태운 커플이 소란을 피우자 임청아(최희서)는 견디다 못해 “예의를 지키라”고 한 소리를 한다. 그러자 커플은 청아에게 ‘조선족이냐’고 되묻고 이런 대화를 이어간다. ‘조선족’이란 단어가 등장한 순간 일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도 영화 <범죄도시>의 ‘장첸’과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을 것이다.
tvN 금요드라마 '빅 포레스트' 는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방송계에서 퇴출당한 연예인 신동엽(신동엽)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숨어지내며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tvN 제공 |
<빅 포레스트>는 SNL코리아 제작진이 만든 10부작 드라마로,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방송계에서 퇴출당한 연예인 신동엽(신동엽)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숨어지내며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드라마 제목인 ‘빅 포레스트’는 대림동의 ‘대림’에서 따왔다. 그만큼 드라마에서 대림동이라는 배경은 중요한 요소이다.
<빅 포레스트>는 중국동포를 특정 집단이 아닌 ‘사람’으로 그려낸다. 이들은 사회에서 내쫓긴 신동엽을 받아준 유일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집주인은 요리 솜씨는 형편없지만 굶고 사는 신동엽이 안타까워 직접 만든 꿔바로우(찹쌀 탕수육)를 내밀고, 단골 중국집 사장님은 냉혹한 현실에 스스로를 ‘바닥 인생’이라 자책하는 신동엽에게 소주 한 잔과 지삼선 요리를 건넨다. “지삼선. 땅에 사는 세 신선이라는 뜻이다. 감자, 피망, 가지 셋 다 바닥에서 난 싼 재료지만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바닥이라고 무조건 나쁜 거 아니다.”
<빅 포레스트>가 중국동포의 모습을 마냥 미화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드라마는 소득은 낮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차갑고 거칠게 그린다. 주인공인 청아만 봐도 그렇다. 중국 연길 출신인 청아는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싱글맘’이 됐다. 아들과 함께 대림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생활을 꾸려 가는 그는 쉽게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낯을 가린다.
tvN 금요드라마 '빅 포레스트' 의 배경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이다. tvN 캡처 |
대림동이 주목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은 그 배경으로 대림동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영화는 대림동 주요 상권인 12번 출구 일대를 우범지대로 다뤘다. 영화 속 택시 기사는 대림동을 가리키며 “여기(대림동) 조선족들만 사는데 여권 없는 중국인도 많아서 밤에 칼부림도 자주 나요.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하면 밤에 다니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황해>(2010)를 시작으로 <신세계>(2013), <차이나타운>(2014), <청년경찰>(2017)까지 한국영화는 줄곧 중국동포를 청산해야 할 ‘범죄집단’으로 묘사해왔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묘사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던 중국 동포들은 <청년경찰> 개봉 이후 행동에 나섰다. 대림동 대림시장엔 ‘중국동포들은 범죄자들이 아니다!’란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몇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도 열었다. 영화사를 상대로 사과문도 받아냈다.
중국 동포들의 억울함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대림동의 범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대림동의 강력범죄 발생건수는 2015년 상반기 624건에서 2017년 상반기 471건으로 25% 줄었다. 전체 범죄 수로 따지면 같은 기간 60% 가량 줄었다. 대림동의 범죄율이 급감한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방범활동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영화에서 대림동을 ‘경찰도 무서워 잘 안가는 곳’이라고 묘사한 것과는 다르다.
중국 동포를 포함한 체류 외국인 범죄율도 내국인 범죄율보다 더 낮다. 지난해 IOM 이민정책연구원이 낸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내국인 범죄는 10만 명당 3649건, 외국인 범죄는 10만 명당 1585건으로 나타났다. 내국인 범죄율이 외국인 범죄율의 두 배가 넘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거주 외국인의 인구 대비 범죄 발생 비율에서 중국은 전체 16개국 중 7위에 불과했다.
tvN 금요드라마 '빅 포레스트' 공식 포스터. tvN 제공 |
캐나다 국영방송 CBC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은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달 14일 넷플릭스 코리아에 공개되며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의 주인이자 이민 1세대인 김상일은 불법주차 차량이 일본산 자동차라고 착각하고 딸에게 경찰에 신고할 것을 지시하지만, 이내 한국산 현대 자동차라는 걸 알고 황급히 말린다. 아들 정은 직장 동료에게 똥침을 했다 직장 내 성추행으로 오해 받는다. 정은 ‘한국식 놀이’라고 해명한다.
일각에선 <김씨네 편의점>이 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왜곡을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극 중에서 그 누구도 이들을 사회의 이방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러한 포용과 어울림이 <김씨네 편의점>이 한국 역수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한국에서 이민자를 다룬 콘텐츠를 그 나라로 수출한다고 했을 때, 지금 수준에서는 공감을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빅 포레스트>의 방송 소식이 알려지자 즉각 중국동포 비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연출을 맡은 박수원 PD는 지난 8월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대본 작업을 하거나 연출 하는 데 있어서 비하하는 그림도 없고 그렇다고 미화하는 점도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PD는 이 약속을 드라마 중반까지 잘 지켰다. 그러나 드라마 내용이 알려지기도 전에 비하 우려가 일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