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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다고?…맞아, 그걸 노렸어! 자본주의 질서에 한 방 날리다

초현실주의와 마네킹


유사인간에 생기는 호감도

비호감으로 떨어지는 ‘언캐니 밸리’

초현실주의자, 마네킹에 대한 불쾌감 예술에 도입

프로이트 “밀랍인형 등 유사인간 사물들

삶과 죽음의 혼란 일으키며 일종의 쾌감 줘”


20세기 더 이상 마네킹에 거부감 안 느껴

사물이 인간의 대체물로 다시 맹종케 해

초현실주의자들 과감하게 톱·망치 꺼내

사지 절단하고 이질적 재료 다시 이어 붙여

합리화된 자본주의에 불쾌감 선사

경향신문

일본 사진작가 가타야마 마리는 희귀성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다. 패치워크 직물, 장식된 쿠션과 옷을 자신의 육체와 바느질로 결합하거나 배치한다. 자신의 육체를 이질적 혼종의 존재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세상의 편견에 구속되지 않고 사물화된 육체를 넘어선다.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뀌는 ‘불쾌한 골짜기’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1970년 인간이 유사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 이론을 발표했다. 밀랍인형과 같은 유사인간을 보고 생기는 호감과 비호감의 그래프를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즉 ‘불쾌한 골짜기’라 했다. 그래프로 볼 때 그 대상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인간을 닮으면 호감도가 곤두박질친다. 곧 그것에 익숙해지면서 비호감은 호감으로 바뀌는 골짜기형 그래프선을 만든다. 인간을 그대로 닮은 인형과 로봇들이 쏟아지는 오늘날, 그래서 많은 제작자들은 ‘불쾌한 골짜기’에서 보이는 불쾌감에서 쾌감으로 바뀌는 그 지점에 신경 쓰고 있다.


프로이트는 가장 불쾌한 사물로 “밀랍인형, 마네킹, 자동인형”을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이런 사물들이 생물과 무생물, 인간과 비인간을 결합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일종의 혼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감정에서 일부 사람들은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혼란’의 감정이 유년기에 느꼈던 “실명, 거세, 죽음”에 대한 불안과 그 속에서도 살고자 발버둥 치던 원초적인 감정이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유사인간 사물들이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혼란’을 일으키면서 일종의 쾌감을 준다는 것. 만약 ‘불쾌(언캐니)’에 대한 프로이트 이론이 맞는다면, 마네킹이나 휴머노이드의 일차적 목표는 인간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쾌함이 유쾌함으로 전환되는 또 다른 쾌감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패션인형’에서 마네킹으로

아직 패션 카탈로그가 없던 14세기부터, 왕실 간에 최신 유행 패션을 과시하기 위해 인형이 교환되었다. 특히 프랑스 왕 앙리 4세(1553~1610) 때 이 ‘패션 인형’이 그의 약혼녀 마리아 데 메디치(1575~1642)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프랑스 패션 스타일로 꾸며진 이 인형은 피렌체의 새 신부가 혼수 장만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 시기에 베르사유 궁정의 최신 패션 경향을 반영해 일상복은 작은 인형으로, 만찬용 고급 의상은 큰 인형으로 재현돼 매달 유럽의 궁정에 보내졌다. 나무나 석고로 만들어진 몸통에 유리 눈을 박고 머리는 실제 머리카락을 지니고 팔다리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패션 인형’을 통해 파리 스타일이 유럽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유럽 각국 사람들은 이 인형을 보기 위해 관람료를 지불해야 했으며 장인들은 고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이 인형을 가져다가 옷 치수를 재고 패턴을 유지한 채 고객의 몸에 맞게 의상을 제작했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의 ‘패션 인형’을 그들 나름대로 새롭게 변용해 발전시켰다. 18세기 영국에 있었던 ‘패션 인형’의 모습이 화가 조지프 라이트(Joseph Wright, 1734~1797)의 ‘고양이 옷 입히기(Two Girls Dressing a Kitten by Candlelight)’에 나타난다. 우측 하단에 누워 있는 인형은 설화석고로 만들어진 프랑스산 ‘패션 인형’이다. 마네킹이 등장하는 19세기 이전까지 ‘패션 인형’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1900년대 윈도 디스플레이에 유행 패션이 전시되면서 마네킹이 일반화되었다. 이 마네킹은 거북함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 모양이나 크기가 인간 신체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신 마네킹이 사용되지 않다가, 1920년대에 마네킹에 친숙해지자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밀랍으로 제작된 이 마네킹은 그 말랑말랑한 피부 질감이 시각적으로 느껴지면서 친근감이 더해졌다.

초현실주의의 등장과 육체의 사물화

경향신문

독일의 대표적 초현실주의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의 ‘신부의 해부학’(1921·왼쪽 사진)과 이탈리아의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헥토르와 안드로마케’(1912). 이들은 마네킹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았다.

마네킹에 대한 불쾌감과 쾌감을 예술계에 계획적으로 도입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다. ‘초현실주의(Surrealisme)’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는 마네킹을 모티프로 한 일련의 시들을 썼다. 또한 아폴리네르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1888~1978)와 그의 동생 알베르토 사비니오(1891~1952) 역시 마네킹을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 화가 막스 에른스트(1891~1976)는 ‘신부의 해부학’(1921)을, 사진작가인 한스 벨머(1902~1975)는 기형적인 마네킹들의 사진집 <인형>(1934)을 내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작품에는 온통 마네킹들이 넘쳐났다.


20세기 초에 초현실주의자들이 등장한 이유가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기계는 장인의 도구이자 보조물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기계는 인간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인간이 스마트기기를 만들었지만 그 작동원리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계를 다룰 수가 없어서 기계의 작동 방식에 자신을 맞추는 것과 같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기계(의 작동 방식)를 닮아가고 기계는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인간은 기계의 도구이자 기계의 보조물이라는 자각이 시작되었다.


사실 우리는 마네킹을 볼 때마다 인간의 육체를 사물(상품)로 개조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인간을 모방해 유행 패션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까지 잔뜩 갖춘 이상적인 마네킹을 만들었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마네킹을 모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신체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도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다이어트를 하며 자신이 입는 옷의 색상 조화에 신경을 쓰는 것도 사실은 자신의 이상적 모습에 육체를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근사한 마네킹이나 모델의 몸매를 따라 하는 것은 주체성을 잃고 육체가 사물이 되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당시 마네킹은 인간의 모방품일 뿐만 아니라 끔찍한 대체물도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로봇이 우리 인간과 똑같아지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사물처럼 취급되는 것은 아닌지 서글프기도 하다.

사물이 된 육체를 넘어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불쾌가 유쾌로 넘어가는 그 지점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들은 패션계에서 친근하게 사용되던 마네킹이 다시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나무, 금속, 플라스틱, 유리, 털 등 다양한 재질로 마네킹 부위를 제작해 절단하고, 때로는 다른 물질들과 결합시켜 ‘혼종’의 형태로 만들었다.


이들이 이렇듯 불쾌한 것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이 작성한 <초현실주의 선언문>(1924)에 잘 나타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토대로 의술을 펼친 군의관이기도 했던 시인 브르통은 선언문에서 마네킹과 ‘경이(merveilleux)’를 연결시키고 있다. 육체의 사물화인 마네킹을 보면서 인간은 불쾌하고 섬뜩하게 느낀다. 하지만 생명성과 물질성이 섞여 있는 그 마네킹으로부터 어떤 ‘경이로움’을 보게 된다. 불쾌한 것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삶과 죽음, 또는 생명과 물질이 뒤섞인 혼란에서 오는 쾌감이었다. 브르통은 이것을 유쾌한 감정이자 아름다움이라 여겼다.


어떤 끔찍한 충격은 억누르기만 할 수 없는 법이다. 개인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있지만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 사물은 마음에 남아 있다. 공포심을 주었던 대상은 일반적으로 반복되면서 우리를 괴롭히는데, 이것을 ‘반복 강박’ 또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사물이 재등장할 때 불안감은 잦아들고 어떤 쾌감이 생기는데, 이것을 ‘언캐니’라고 한다. 이 단어를 ‘불쾌한’이라고 번역하면 또 다른 매혹적인 감정의 내포를 담지 못하기 때문에 외래어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한 ‘불쾌한 골짜기’에서 비호감으로 하락했던 선호도가 다시 호감으로 바뀌는 곳이 바로 ‘언캐니’의 지점이다. 요즘 한창인 각종 좀비류 문화 콘텐츠들을 볼 때 좀비는 처음에는 굉장히 거북한 존재이지만 무엇인가 다른 감정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브르통이나 프로이트의 설명처럼 ‘불쾌함’이 쾌감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좀비가 생명과 죽음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존재, 그러니까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이중적 혼종의 존재가 오히려 더 많은 매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삶과 죽음의 이중성을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계 상품 속에서 보았다. 그들은 마네킹을 보면서 이런 이중성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20세기 사람들이 어느덧 마네킹에 익숙해져 어떤 거부감도 없게 되자, 과감하게 톱과 망치를 들었다. 마네킹이 인간의 상징물로 옷을 입히는 도구가 아닌 이상, 또 그 사물이 인간의 대체물이 되어 인간을 맹종케 하는 이상 ‘토막 절단’을 계획한 것이다. 마네킹의 사지를 절단하고 이질적인 재료로 다시 이어 붙였다. 이들이 예술에 가한 새로운 버전은 “토막 절단(dismemberment)이 곧 구축”임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절단된 마네킹을 통해 이들은 합리화된 자본주의 사회에 다시 불쾌감을 선사한 것이다.

우리의 상처를 승화시키는 예술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자신의 육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한 작가가 있다. 가타야마 마리(1987~)는 패치워크 직물, 장식된 쿠션과 옷을 자신의 육체와 결합하거나 배치하여 작품 활동을 했다. 다리와 손에 영향을 미치는 희귀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그녀는 결국 아홉 살에 다리를 절단하고 보조기를 차고 생활했다. 기성복을 입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익숙해진 실과 바늘로 화려한 옷과 장식품들을 만든 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전시관에서 이질적인 재질로 그녀의 몸과 배열되거나 착용된 그의 사진 작품들을 보았을 때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학비를 벌기 위해 재즈바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타야마는 손님에게 “여자가 하이힐을 신지 못하면 더 이상 여자가 아니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의족에 맞는 하이힐을 제작해 보란 듯이 걸었다. 이것 때문에 ‘하이힐 프로젝트’가 탄생했다고 한다.


인간은 삶과 죽음이 뒤섞인 존재를 통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자신 속에 갖고 있는 두 요소 중 죽음의 성질을 계속 억누르면 죽음은 자아로부터 분리되어 저승사자 내지 유령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육체의 사물화를 넘어서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노력은 이 죽음에 직면해 그것을 승화하는 어떤 정신세계를 보이려는 것이었다. 그 하나의 예가 마네킹을 절단해 새롭게 배치시킴으로써 가능했다. 우리는 거기서 일종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 시대보다 더 상품화된 우리 육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가타야마는 자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구속되지 않고 죽음과도 같은 육체, 사물화된 육체를 넘어서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육체를 이질적인 혼종의 존재로 만드는 것은 과거 모든 흔적들을 승화시켜 불쾌를 유쾌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상품이 되어버린 우리의 육체를 극복하기 위해 가타야마처럼 자신의 몸을 꿰매 작품을 만드는 바느질을 하고 싶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마네킹에서 느꼈을 그런 ‘경이로움’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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