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대전’ 최후의 60일, 골든타임일까 시한폭탄일까
미 ITC 최종선고, 영업비밀 침해 소송 ‘LG 승리’로 일단락
지난 11일 서울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연합뉴스 |
미 SK 부품 수입 10년간 금지
60일 내 대통령 검토 뒤 승인
SK, 조지아주 내 공장 건설 중
바이든 거부권 행사 변수 남아
합의 놓고 배상금 수싸움 예상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계 선두권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이던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LG 측 승리로 일단락됐다.
양사가 벌이는 10여건의 국내외 소송 중에서도 핵심인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결론이 나오면서 이제 관심은 두 회사가 조기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수조원대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둘러싼 이견은 크지만 ‘60일 이내’라는 시간 제한까지 더해지면서 또다시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고 미국 내 배터리 팩·셀·부품 등의 수입을 “10년 동안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ITC는 SK가 배터리를 공급하는 포드와 폭스바겐 전기차의 미국 내 생산을 위한 배터리에 대해서는 이날부터 각각 4년, 2년간 수입을 허용하는 유예조치도 함께 내렸다. 대상은 미국에서 제조하는 포드 F-150 픽업트럭과 MEB 플랫폼으로 생산하는 폭스바겐 차량용 배터리와 소재·부품 등이다. 이 차량들은 모두 내년 상반기 출시가 예정돼 있어 SK 배터리가 전기차에 공급되는 기간은 1~3년일 것으로 예상된다. ITC의 유예조치는 이들 완성차 업체가 미국 현지에서 대체 공급업체를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LG 측이 제기한 인력 빼가기와 기밀 유출 등을 모두 인정한 이번 판결을 두고 “LG의 완승”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미국에서 향후 10년 동안 신규 수주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SK 측이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ITC 결정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변수가 남아 있다. 한국의 행정심판 절차와 유사한 ITC의 결정은 60일 이내의 대통령 검토 기간을 거쳐 최종 승인되는데, 이 60일이 양사에는 합의를 위한 ‘골든타임’이자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일단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낮다는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ITC가 최종심결에 미국 내 자동차 제조업 보호라는 ‘공익’을 들어 유예조치를 명시한 데다, ITC의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발동한 전례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SK가 약 2조90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이 위치한 미 조지아주 여론과 정치권의 움직임은 대통령을 압박하는 요인일 수 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12일 성명을 통해 “ITC 결정 때문에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조지아주가 지난 1월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민주당에 2석 모두를 안겨주며 의회 다수당 지위를 부여했다는 점도 지역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거래와 국제무역에서 특히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ITC 결정을 뒤집을 명분이 약한 것도 사실이다.
거부권 행사에 희망을 걸고 있는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기대가 무산될 경우, 북미 배터리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LG 측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만일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조기 합의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수 있다. SK의 항소 등으로 ‘소송 장기화’라는 불확실성도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양측 모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전에 타협점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건은 양측이 생각하는 배상금 격차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다. 업계 안팎에서는 LG가 2조5000억~3조원가량의 배상금을 요구한 반면, SK는 자회사(SKIET)의 상장 지분 일부를 포함한 5000억원가량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나온다. ITC에서 유리한 결정을 받아든 LG의 요구액이 높아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2조5688억원 적자를 기록한 터여서 ‘조 단위’ 배상금 마련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올해 상장 예정인 자회사 SK아이이티의 지분 제공설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