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가 최고의 혁신 결과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그 사이에서도 시선을 잡는 자동차가 있다. 누군가는 선망의 눈으로, 누군가는 호기심의 눈으로 이 자동차들을 바라본다.
어떤 것보다 묵직한 울림을 토해내는 질주감, 균형 잡히고 안정적인 형태와 비례, 그리고 색상, 무게감을 드러내는 중후한 외모, 시선으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시트와 가죽, 기하학적 문양의 프론트 그릴, 도도한 인상을 주는 헤드 램프와 리어 램프…. 자동차의 탄생 이유이자 존재의 본능 이상의 무엇을 갖추고 있다. 모든 것이 즐거운 자극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 BMW 7시리즈, 볼보의 S90, 포드의 올-뉴 링컨컨티넨탈, 마세라티의 콰트로포르테, 롤스로이스의 팬텀, 벤틀리의 뮬산, 마이바흐 s600, 아우디 A8, 재규어 XJ, 렉서스 LS, 인피니티 Q70….
그리고 11월27일 출시된 G90(제네시스의 럭셔리 플래그십형 세단).
즐거운 자극의 주인공들이다. 자동차 위의 자동차들이다. 일명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이라고 불린다. 귀족적인 감성과 안락함으로 주목받는 자동차다.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의 명확한 정의는 없다. ‘회장님차’, ‘사장님차’로 통칭된다. 그렇게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연유를 찾기 위해서는 ‘플래그십(flagship)’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플래그십이란 두 척 이상의 선단에서 사령관이 타는 배 혹은 선단 중 화력이 가장 막강한 배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사령관의 배’다. 의미가 확장됐다. 지휘선이 지휘자로, 더 나아가 특정 집단 혹은 단체에서 우두머리 혹은 사회의 지도자로 확대됐다. 이를테면 ‘회장님’, ‘사장님’이다. 플래그십 세단의 이미지가 ‘회장님차’, ‘사장님차’로 굳어졌다. 성공한 사람이 즐겨 구입하고 이용하는 차라는 얘기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자신을 표현하고 매력을 재생산하며 진화하고 있다. 자동차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특히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은 신분, 지위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은 성공과 재산의 거울이라는 얘기다.
‘플래그십 세단’ 앞에 럭셔리가 붙은 것은 경쟁의 산물이다. 플래그십 세단은 자동차 업체의 대표 브랜드다. 공급업체의 최고 기술은 물론 생산자의 가치를 담은 디자인이 적용된다. 자동차는 ‘최고의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점점 화려하고 첨단화됐다. 눈에 띠고 배기량이 큰 고가의 자동차에 투자를 늘려갔다. ‘럭셔리’한 차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동차가 생산된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 부사장은 ‘럭셔리’의 의미를 “우아하고 섬세하며 정제되고 완벽한 마감을 의미한다”고 규정하면서 “럭셔리는 생산업체가 부여한 가치를 소비자와 공유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럭셔리’란 화려한 자동차의 스타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곧 자동차 업체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요소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정체성과 스타일을 갖추지 못한 차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 럭셔리란 곧 ‘혁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인 셈이다.
생산업체들은 플래그십 모델로서의 존재감과 철학을 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가장 익숙한 모습을 버리고 용기 있는 변화를 추구해 왔다. 진화의 과정은 하나의 역사이자 선물이다.
1886년 최초로 내연자동차가 등장한 이래 1900년 초까지 자동차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졌다. 일명 ‘엔진 실은 마차’로 여겨졌다. 거기에 지붕을 덮고 문을 달았다. 근대적 형태의 자동차 형태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자동차는 결정적인 기능적 결함이 있었다. 전진만 가능한 이동수단이었다. 운전수와 함께 조수가 탑승해야 했다. 주차나 후진을 위해서 차를 밀어야 할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1911년에 카레이서인 레이 하룬이 자동차에 후사경을 달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아내가 화장대 앞에서 뒷머리를 손질하는 데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이것이 자동차의 차별화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가내 수공업 자동차 메이커들이 거울을 부착한 자동차에 브랜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엠블럼을 달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해도 자동차는 지주나 대상공인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귀중품이었다.
자동차의 대중화시대를 연 인물은 우리 잘 아는 헨리 포드다. 포드가 1913년 포드자동차 생산 공정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했다. 고기덩어리를 갈고리에 걸어 이동시키는 모습에서 착안했다. 포드는 다량생산된 제품 판매를 위해 자동차 할부금융 시스템을 도입했다. 드디어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포드자동차와 경쟁사인 제널럴모터스는 제품의 다양화로 맞섰다. 모델의 차별화와 개성 창출을 추구한 것이다. 소비자의 다양한 부의 정도 또 그에 따른 취향과 기능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제품라인을 구성했다. 규모의 경제를 위해 수 많은 수공업 자동차 업체를 흡수한 것이 기반이 됐다. 1920년대 당시 최고가의 제품은 바로 캐딜락이었다. 가장 싼 쉐보레보다 6배나 가격 차이가 났다. 캐딜락이 명실상부한 최초의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이 된 셈이다.
자동차는 기능적 발전과 함께 디자인의 진화를 거듭했다. 주행 성능과 디자인 등이 발달하면서 속도와 안전성 그리고 색다른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자극했다. 특히 최근의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은 인공지능과 결합된 첨단 안전장비와 디자인의 경합장이 되고 있다. ‘플래그십 마케팅 싸움’과 ‘럭셔리의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드 모델 T 조립라인 |
올해 연말은 특히 한국의 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최상위) 모델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국산차는 제네시스 G90이 앞장서고 있다. 수입차로는 폭스바겐과 도요타, 재규어 등이 기존 독일 3사의 프리미엄 세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시장에서 럭셔리 플래그십 세단을 주도하고 있는 상품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다. S클래스는 세대 바꿈을 9차례나 이어온 명실상부한 지존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언론은 S클래스에 대해 “S클래스는 모방을 용납하지 않는다”면서 “S클래스의 S급 품질과 인테리어 스타일, 순수한 세련미는 어떤 차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모방이 없다는 의미는 신기술의 적재를 의미한다. S클래스에는 스테레오 카메라를 통해 도로 노면을 파악하는 액티브 서스펜션인 MBC(Magic Body Control), 진일보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인 디스트로닉 플러스, 한시적 자율 주행기능인 스티어링 어시스트 플러스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적용돼 있다. ‘안전이 곧 벤츠가 추구하는 이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S클래스와 라이벌은 BMW다. BMW는 ‘즐거운 드라이빙을 위한 이노베이션’을 추구한다. 특히 차량에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탑재된 것이 특징이다. 다이내믹한 디자인, 민첩한 핸들링, 디스플레이에 멀티미디어 기능 등이 이런 개념에 수렴하고 있다. 특히 BMW7는 ‘기술력이 당신을 그 누구보다 앞선 세상으로 안내한다’는 모토 아래 최상의 웰빙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제네시스 G90 |
현대자동차는 벤츠, BMW와 같은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에 도전장을 냈다. 글로벌한 이름으로 개명한 G90이 그것이다. G90은 제네시스 브랜드가 지난 2015년 브랜드 최초로 국내에서 선보인 초대형 플래그십 세단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제네시스 EQ900은 미국 시장 조사업체인 제이디파워의 ‘신차 품질조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최우수품질상을 수상했다. EQ900의 자랑인 ‘네비게이션 자동무선 업데이트 시스템’, ‘지능형 차량 관리서비스’ 등 IT신기술도 한층 강화시켜 G90에 탑재했다. 이를테면 소음을 능동적으로 제거하는 신기술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 등이 대표적 예다.
이런 품질의 자신감 위에 진보적인 디자인을 입혔다. 획기적인 변신을 통해 한결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G90 디자인의 핵심 정신은 ‘역동적 우아함(Athletic Elegance)’이다. 이런 의미의 표출을 위해 ‘수평의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은 “G90은 형상이 아니라 빛을 디자인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캐릭터라인(자동차 자체 옆면 가운데 수평으로 그은 디자인 라인), 직선의 쿼드와 리어램프에 반영됐다. 수평선 그리고 빛은 공격적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후발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도전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G90은 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 G90만의 고유패턴인 ‘G-매트릭스’가 그것이다. 이것은 럭셔리의 대명사인 다이아몬드가 빛의 난반사를 일으키는 것에 영감을 받아 정밀하게 세공한 보석에서 느낄 수 있는 고급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 무늬는 자동차의 얼굴인 프론트 그릴은 물론, 타이어의 휠과 쿼드램프, 실내 시트 등 곳곳에 사용했다. 종전의 럭셔리 플레그십 세단에서도 볼 수 없던 형태다. 하나의 독창적인 디자인 패턴이 브랜드의 기준이 되는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