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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경향신문

대관령 자락이 내어줄 수 있는 맛의 모든 것

지극히 味적인 시장 (36)

평창 진부장


출장길에 또 비다. 예전 장마는 배려가 있었다. 최소한 사람이 해를 볼 수 있게끔 하고, 빨래 말릴 틈도 줬다. 올해는 배려심이 ‘1도 없는’ 장마가 온 듯, 아니면 장마가 아닌 아열대 우기가 온 듯싶다. 생각해보니 홍천, 화천, 평창 오일장까지 내내 비와 함께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취재하러 가니 한 달하고도 반이다. 강원도 평창으로 향하는 마음이 높아지는 강수량만큼 편하지가 않다. 강릉과 경계를 이루는 안반데기나 정선 옆 육백마지기에 올라 은하수 찍을 계획이 있었지만 내리는 비에 쓸려 갔다. 오락가락하는 비. 장터 구경할 때는 안 내렸으면 했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비는 계속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화천처럼 썰렁한 것이 아니라 장사꾼이나 구경꾼도 제법 있었다. 3일과 8일이 낀 날에 열리는 평창 진부장. 정선과 영월이 더 가까운 평창읍장 못지않게 규모가 있는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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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 양배추 ‘내 무기는 신선함’

강원도 평창은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서늘하다. 물론 한낮에는 다른 곳처럼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다. 서늘한 날씨 덕에 여름 채소 농사가 잘되는 평창은 한반도의 여름 텃밭이다. 평창읍을 지나 대화, 속사, 진부, 대관령까지 약 60㎞ 길 좌우 산과 하천 사이사이 넓은 밭에는 대파, 배추, 양배추, 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어느 곳은 고랭지 배추나 양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대관령 옛길 주변은 짙은 녹색 산을 배경으로 둔 푸른 밭이 참 예쁘게 펼쳐져 있었다. 8월에 평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계곡도, 목장도 아닌 여기가 아닐까 싶다. 일찍 열린 장터에도 오늘 아침에 뽑아 온 양배추가 투명 우산 아래에서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다. 평창 덕에 한여름에 맛있는 채소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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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향이란 이런 것…‘비거세우’ 칡소 불고기

여름 오일장에선 가끔 깜짝 선물 같은 과일을 만나기도 한다. 작년 영월 오일장에서는 토종 자두인 오얏을 맛봤다. 진부장에도 그 녀석이 있나 살펴보니 오얏은 없고 다른 재래종 자두가 반기고 있었다. 체리만 한 크기의 자두. 사실 체리, 자두, 앵두, 복숭아, 매실, 아몬드까지 모두 사촌지간이다. 과육 안에 딱딱한 씨가 있는 핵과류 집안이다. 아몬드만 호두처럼 딱딱한 씨 안에 있는 것을 먹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자두 사진을 찍으니 할머니께서 자두 한 개를 내미신다. 비 맞고 뭐하러 다니느냐는 표정과 함께 말이다. 입안에 넣고 과육을 씹으니 살짝 몸서리쳐진다. 혓바닥을 통통 친 신맛에 이어 단맛은 재빨리 인사만 하고 사라진다. “어우 셔” 소리가 났지만 나도 모르게 하나를 더 집어 먹었다. ‘꽁’으로 두 개 먹었으니 그 값으로 작은 바구니 하나에 3000원인 자두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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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만한 자두 녀석, 어우 셔~

여름 장마가 지긋지긋하다. 열대야가 그리울 정도로 찐득찐득한 습기가 온몸을 감싼다. 이러다 여름 다 가는 거 아닌가 싶다. 이미 절반이 지났다. 장터에는 슬쩍 가을 첨병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고운 밤고구마, 불그스레한 아오리 사과가 장터에 등장했다. 모르는 이들은 햇사과가 나왔네 하겠지만 사실은 가을 시작이다. 아닌 것 같지만 8월15일이 말복이고 8월7일 어제가 입추다.


아오리 사과는 파란 사과가 아니다. 다른 사과보다 빨리 나오는 품종은 맞지만 아오리 사과도 붉게 물들어야 맛있다. 사과의 절반쯤, 불그스레 물드는 8월 중순 이후부터 가장 맛있다. 성급한 이들이 7월에 따서 팔았기에 그리들 알고 있지만 말복 즈음에 맛보면 천하일미다. 새콤함을 누르고 튀어나오는 다디단 과즙의 맛이 일품이다. 아오리 사과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육종한 품종으로 실제 이름은 ‘쓰가루’다. 아마도 태어난 곳 이름을 줄여서 부른 듯싶다. 이름도 잘못 부르고, 먹는 시기도 잘못 알려진 품종이다. 아오리 사과도 빨갛게 익어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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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냐 비빔이냐…‘막국수 is 뭔들’

대관령 주변에는 많은 농업 연구소가 있다. 작년에 토종닭 강연을 한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국립식량과학원 고랭지연구소가 있다. 한우를 연구하는 국립축산과학원 한우연구소도 대관령면에 있다. 한우는 누런 소가 많다. 누런 한우가 많다는 것은 다른 모양새의 한우도 있다는 이야기다. 검은색, 호피처럼 줄무늬가 있는 것도 한우다. 호피 무늬를 가진 한우를 칡소라고 한다. 2004년 전북 고산에서 칡소를 처음 봤다. 칡소는 동요 ‘얼룩송아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얼룩소는 젖소가 아닌 칡소다. 몇 십 년 전부터 대관령에서 칡소를 전문으로 키우는 농장이 있다. 주변에 칡소 고기를 파는 정육점도 있고, 칡소 고기를 재료로 해서 음식을 내는 곳이 있다. 대관령 옛길 따라 대관령면 읍내에서 조금 올라가면 길가에 카페가 나온다. 칡소 파니니와 칡소 불고기가 대표 메뉴다. 칡소 고기는 보통의 한우보다 향이 좋다. 육향이라는 게 있어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향기가 퍼진다. 거나하게 차린 상차림은 아니지만 칡소 불고기를 밥에 비벼 먹다가 잘 익은 김치 한 점 더하면 그릇에 담긴 음식은 이내 사라진다. 카페 마루51(033-332-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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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고구마가 벌써…가을이 오려나보다

불고기만으로는 칡소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다시 시내로 들어서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육점이 있다. 칡소 외에 다른 것도 팔지만 목장에서 직영하는 칡소 고기 전문점이다. 대관령 칡소는 비거세우다. 거세한 수소 고기와 달리 진한 향이 있다. 25년차 식품 MD가 가장 좋아하는 한우가 바로 비거세우다. 굽는 것도 좋지만 향이 좋기에 국거리로는 비거세우가 최고다. 비거세우는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난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라는 명제가 정확히 맛으로 설명이 되는 고기다. 고기만 파는 곳이라 집에서 먹을 요량으로 등심 100g에 1만2000원 주고 샀다. 대우 정육점(033-335-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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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리 사과도 붉게 물든 게 더 맛있대요~

막국수는 어느 시·군을 가도 쉽게 맛볼 수 있거니와 저마다의 개성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막국수의 고장 강원도에서 메밀 대신 밀가루와 옥수수 전분으로 국수를 내는 곳이 있다. 막국수 고장 사람들이 먹는 별식이랄까? 진부장터 근처이기에 장터를 서너 바퀴 돌고는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자리를 잡았다. 항상 하는 고민, ‘짜장이냐 짬뽕이냐? 양념이냐 프라이드냐?’와 동급의 고민이 물이냐 비빔이냐 아닐까 싶다. 필자는 비빔보다는 물 국수를 선호한다. 특히 막국수는 기름내 가득한 김가루와 강한 참기름 향 때문에 즐기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메뉴판을 보니 비빔은 8000원, 물은 7000원이다. 1000원 비싼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비빔을 주문했다. 중면 정도의 면 굵기, 김을 구워서 큼직하게 부숴낸 모양새만으로 맛있겠다는 촉이 바로 왔다. 설렁설렁 비벼 한 젓가락 씹었다. 직접 뽑는 면과 비빔장의 조화가 비빔 국수계의 ‘끝판왕’이다. 쿨하면서 친절한 주인 할매들하고 몇 마디 이야기 나누고 국수 몇 번 씹었더니 벌써 계산하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아까 산 재래종 자두를 드렸다. 자두 살짝 베어 문 할매 두 분이 몸서리치시는 걸 보며 다음에 또 오겠다 하고 나왔다. 고바우식당(033-335-8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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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칼·만’은 사치…옹심이가 너무 맛있어

감자 전분으로 전을 부치고, 떡을 만들고, 수제비를 끓인다. 감자로 만든 것은 수제비라 하지 않고 옹심이라 한다. 간 감자에서 전분을 따로 추출한 다음 남은 것과 섞거나 아니면 전분만으로 팥죽의 찹쌀 새알 모양새로 만들어 끓인 것이 옹심이다. 순옹심이를 주문할까 하다가 만두 욕심에 ‘옹(심이)칼(국수)만(두)’을 주문했다. 옹심이를 씹는 순간, 주문 실패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옹심이가 너무 맛있었다. 옹심이만 먹고 싶었다. 쫄깃한 옹심이를 씹다가 만두나 칼국수를 씹으니 영 맹맹했다. 횡계를 지난다면 그때는 무조건 순옹심이로 먹어야겠다. 곁들이 메뉴로 주문한 찰수수 부꾸미도 맛있었다. 수수로 만든 음식을 보면 어렸을 때 생일날의 수수찰떡이 생각난다. 생일날 수수찰떡 먹으면 아프지 않고 잘 자란다는 엄마 음성이 자동 재생된다. 암튼, 차진 감자옹심이 때문인지 다음날 아침에도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국물 맛이 해장으로도 좋을 듯싶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대관령감자옹심이(033-335-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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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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