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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의 여성혐오, MBC는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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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8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에 5주 만에 복귀한 기안84는 “사실은 이제… 사는 게 참”이라면서 ”제가 참 많이 부족하고 죽기 전까지 완벽해질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다“며 잘못을 얼버무렸다. MBC 화면 캡처       

여성 비하적 내용의 웹툰 <복학왕>으로 논란을 일으킨 기안84(36·본명 김희민)가 5주 만에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복귀했다. 지난 18일 방송, “유난히 반가운 분들이 와 있다”는 환대 속에 등장한 기안84는 “멤버들과 시청자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여성이 성관계를 무기로 채용상의 이득을 본다는 여성 혐오적인 웹툰 내용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이 “죽기 전까지 완벽해질 수 있을까”라며 잘못을 얼버무렸다. 출연자들은 “완벽한 사람이 어딨냐”며 그를 위로했고 뒤로는 따뜻한 배경 음악이 흘렀다.


잘잘못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안84를 안고 가겠다는 제작진과 방송사의 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반복되는 약자 혐오 표현에 반기를 들고 기안84의 웹툰 연재 중단과 방송 하차를 요구한 거센 비판 여론에 MBC가 택한 대응은 ‘모른 체’였다. 그간 빗발친 문제제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최소한의 변명조차 없었다. 13만여명이 동의한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폭발한 약자들의 분노는 그저 ‘묵음 처리’ 돼 다정한 대화의 행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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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송인 톰 브레나만이 지난 8월 신시내티 레즈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 중계 도중 동성애혐오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폭스스포츠 화면 캡처

어떤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혐오 표현 때문에 누군가 ‘밥줄’이 끊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 천국’ 미국에서도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등 혐오 표현 방송인에 대한 제재는 엄격하게 이뤄진다. 혐오 표현이 사회적 약자들의 실존적 위협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 의식 때문이다.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 등은 시카고 라디오 방송 <670 더 스코어> 진행자 댄 맥닐이 여성 리포터의 의상을 두고 ‘포르노 영화 시상식이냐’는 트윗을 쓴 뒤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하루 만에 해고당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사 측은 “맥닐의 트윗은 동료 여자 방송인을 비하하고 모욕을 줬다”며 해당 트윗으로 상처 입은 모든 이와 여성 리포터에게 사과했다.


비슷한 사례는 숱하게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NBC 아이스하키 해설 마이크 밀버리가 선수의 집중을 방해할 여성이 없다는 것이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구역 경기의 이점이라고 설명해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NBC는 “(인권) 감수성이 없는 발언”이었다며 그의 방송 하차를 발표했다. 이틀 앞서 미국 폭스스포츠 방송인 톰 브레나만은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해 출연 중지 처분을 받고 방송 도중 쫓겨났다. 지난 3월에는 배우 하틀리 소여가 온라인상에서 인종차별·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은 것이 알려져 출연 중이던 미국 CW 드라마 <플래시>에서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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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는 5주 만에 복귀한 기안84를 둘러싼 논란을 ‘묵음 처리’ 하고 그를 장난스레 위로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으로 시작됐다. MBC 화면 캡처

MBC는 어땠는가. MBC는 기안84의 여성 혐오 논란 이후 한 달 넘게 침묵만 지키다 “(기안84가)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찾아뵐 예정이니 지켜봐달라!”며 그의 복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기안84에 대한 방송 하차 요구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면 MBC는 그 논의의 과정과 결론을 공개해 그간의 비판 여론에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MBC 측은 기안84의 논란에 대한 검토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만 했다. 네이버 웹툰도 별다른 입장 발표 없이 문제된 장면만 일부 수정해 <복학왕> 연재를 지속하고 있다.


대중의 인권 감수성과 혐오 표현에 대한 민감도는 나날이 높아지는데, 미디어는 반성은 커녕 고민도 없다. 미국 사례처럼 단호한 대응이 주저된다면, 적어도 묻고 따질 줄은 알아야 한다.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를 무시할 수 있는 ‘잡음’ 취급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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