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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경향신문

‘갈색 푸들’과 ‘내 강아지’, 너희 강아지 나한테도 귀엽지

[위근우의 리플레이] 제리케이 ‘갈색 푸들’ & 성진환 ‘내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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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케이의 ‘갈색 푸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강아지를 대상화한 귀여움이 아닌 개(사자)라는 존재와 함께하는 삶의 살가움과 행복감을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 ‘갈색 푸들’ 뮤직비디오 캡처

쯧쯧, 뮤지션이라는 사람들이 음악으로 승부하지 않고 자기네 강아지의 귀여움에 묻어가서야 되겠어? 거 참 편하게들 사는구먼. 지난 12월11일에 발표된 제리케이의 곡 ‘갈색 푸들’과 1월1일에 맞춰 발표된 성진환의 ‘내 강아지’ 뮤직비디오를 하루 세 번씩 보고 들을 때마다 못마땅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우리 강아지는 갈색 푸들 걸어가 망원동을’이라는 ‘갈색 푸들’의 첫 소절이 중독적으로 귀에 맴돌고,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이라고 뜸을 들이다 ‘내 강아지’라는 후렴구와 함께 터져주는 기타 사운드와 성진환의 목소리가 신나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정해야 한다. 전주가 시작되고 반려견 사자(어흥 사자가 아니라 개 이름이 사자다)와 실제보다 다분히 귀엽게 미화된 제리케이의 모션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돌아가는 순간부터 이미 청자는 너그러이 노래를 흥얼거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후렴구와 함께 성진환의 반려견 흑당이의 그림이 튀어 나오고 왈왈 짖는 소리가 나올 때 청자는 강아지를 향한 ‘옳지’라는 후렴구로 노래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추임새를 넣어주게 된다는 것을. 음악은 잘 만들어야 훌륭하지만 개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 그렇다고 이들 텍스트로부터 사자와 흑당이의 아우라를 걷어내는 것은 관념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험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텍스트의 의미란 결국 경험 안에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아지의 귀여움에 묻어간 뮤지션이라는 의구심은 그대로 두되, 창작자로서 그들의 의도가 두 곡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경험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살피고 이 행복감에 대한 그들의 지분을 살피는 것만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 제리케이와 성진환, 두 뮤지션은 두 곡을 함께 묶어 탐구하는 기획에 호의적이었고 흔쾌히 질문에 답해주었다. 물론 선의로 가득한 그들에게 나의 불온한 의구심을 숨기고 웃으며 접근하긴 했지만.


개는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음악은 잘 만들어야 훌륭…

자기 강아지에 대한 애정만을

동기로 곡을 만들었는지 궁금


강아지를 대상화한 객체가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그 일상의 즐거움을 청자와 나눠


가장 궁금했던 것은 철저히 자신의 강아지라는 고유한 대상과 사적인 경험에 대한 곡이 정말 자기 강아지에 대한 사적인 애정만을 동기로 만들어졌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특정 견주의 자기만족적이기만 한 시도라면, 해당 곡을 들을 때마다 지어지는 미소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성진환은 “강아지가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어느 날 자연스럽게 노래가 되었다고 말하면 꾸며 낸 이야기 같겠지만 사실”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분명 자기만족적이고 독백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곡을 굳이 길게 늘리고 편곡과 녹음을 해서 음원으로 완성한 동기는 이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노래에 담긴 마음이 저에게는 인생을 버티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으니까, 듣는 분들께도 조금이나마 그런 기운이 전해지지 않을까”라고도 말한다. 그는 자신이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어느 정도 노래를 통해 전해지리라는 기대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곳에 방점을 찍고 싶다. 그가 나눈 것은 흑당이에 대한 마음만이 아니다. 마음을 나누기 위해 곡을 늘리고 편곡과 녹음의 수고를 감수하는 마음이 동반될 때, 비로소 행복한 감정은 자기만족적 독백을 벗어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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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환의 ‘내 강아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건~’이라고 뜸을 들이다 ‘내 강아지’라는 후렴구와 함께 터져주는 기타 사운드와 성진환의 목소리가 경쾌하고 신난다. | ‘내 강아지’ 뮤직비디오 캡처

결은 다르지만 “소위 ‘국힙’과 그 주변의 정서 및 표현 양식, 가령 과도한 경쟁과 혐오표현 및 물질만능주의에 지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는 제리케이의 음악적 시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노래란 종종 이지 리스닝으로 이해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윤리를 덧붙인다. 여기엔 발화자와 청자 사이의 동등한 상호주관성이 어느 정도 규범적 수준으로 전제된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로부터 “매일의 루틴이 되어 빼놓지 않고 하게 된 반려견과의 산책이라는 소재를 자연스럽게 가져오게 됐다.” 제리케이가 망원동에서 사자를 산책시키는 일상은 다분히 사적인 경험이지만, 그의 발화는 ‘나는 나니까 나다’라는 동어반복 대신 너와 내가 함께 불편함 없이 공유할 수 있는 풍경에 대한 소통을 시도한다. ‘꼭 확인하는 손 냄새 촉촉한 코끝이 닿는 느낌이 넘 행복’(갈색 푸들), ‘사랑이라는 게 모양이 있다면 아마 모두 잠든 밤 네 발가락 사이 빼꼼 보이는 동그란 배를 가진 내 강아지’(내 강아지) 같은 가사에선 자기 강아지를 예쁘게 묘사하고픈 견주의 욕심만큼이나 자신들의 주관적 행복감의 정체를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이해시키고픈 창작자의 욕심이 공존한다. ‘내 강아지’와 ‘갈색 푸들’의 화자들은 팔불출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기 강아지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지만, 그 마음의 한 부분을 청자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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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동일하게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도 귀여운 시각 이미지에 기대는 꼼수가 아닌 화자의 사적 경험을 좀 더 온전한 형태로 공유하고픈 시도로 봐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 그룹 스윔이 제작한 ‘갈색 푸들’ 모션 그래픽 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을 온전히 해당 팀에 맡긴 기획인데, 그들은 영상 제작기에서 “아쉽게도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에 대한 아이디어가 부족”했기에 “경험자의 조언, 인터넷 검색, 실제 사자의 산책 과정을 물어보며 자료들을 모았”다고 밝힌다. 몇몇 환상적인 장면들, 가령 풍선을 타고 제리케이와 사자가 날아가는 장면 같은 것들도 아름답지만 이 뮤직비디오를 정말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강아지가 흙에 코를 박거나 길바닥에 앉아 버티거나 산책 다녀오고 발을 닦는 수많은 일상의 디테일에 있다. 그것은 강아지를 대상화한 귀여움이 아닌 개라는 존재와 함께하는 삶의 살가움이다. 이미 흑당이와의 일상툰을 인스타그램과 책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을 통해 공개했던 성진환이 직접 만든 뮤직비디오 역시 이전 일상툰의 연장선에 있다. 분명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는 스스로도 인정하듯 성진환과 그의 배우자 뮤지션 오지은 그리고 흑당이와 고양이 꼬마, 이렇게 넷이서 콘서트를 열고 불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지만, 그는 “모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듯한 마지막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우연이지만 ‘갈색 푸들’이 수록된 제리케이 정규 5집 앨범의 제목은 <Home>이다. 단순한 공간으로서의 하우스가 아닌 돌아갈 일상과 가족이 존재하는 곳으로서의 홈. 그들이 노래로 뮤직비디오로 구현하고자 한 건 강아지라는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인 귀여움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의 존재론적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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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들의 작품을 해석하는 맥락에 더 큰 힌트를 준 건, 정작 본인 곡에 대한 설명이 아닌 서로의 곡에 대한 반응이다. 마치 미리 상의라도 한 것처럼 “사자가 사회성이 없어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흑당이와 사자가 함께 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제리케이와 “사자와 흑당이가 만나는 순간을 몰래 꿈꾸고 있지만 사자를 만나고 싶은 건 사실 나라는 것을 고백한다”는 성진환의 대답은 그들이 서로의 곡을 본인의 곡이 그러하듯 실재하는 일상의 일부로 본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강아지라는 존재가 지닌 근원적 귀여움이 이들의 곡과 뮤직비디오를 한없이 예쁘게 꾸며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이 개에 묻어가거나 업혀간다는 나의 의심은 여전히 유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떤가. 훌륭한 대상을 다루는 작업이 그만큼 훌륭해지기 위해선 훌륭한 대상의 훌륭함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동반한다. 그것은 외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공들인 묘사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대상에 대한 존중과 본인의 감정에 대한 탐구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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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칼럼니스트

그들의 곡과 뮤직비디오가 아름다운 건 그들이 아름다운 대상을 다루기 때문이지만 또한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그만큼 아름답게 구성하려는 노력 때문이기도 하다. 제리케이와 성진환의 아름다운 코멘트에 묻어가려는 이 칼럼이 지향하는 바도 그러하다.


위근우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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