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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공학도, 레고 공인 작가가 되다

'성덕’이라는 말이 있다. ‘성공한 덕후’의 줄임말로, 여기서 ‘덕후’는 특정 분야를 너무 좋아해서 전문가 수준으로 깊이 몰두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 ‘오타쿠(おたく)’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에서 따온 말이다. 무언가를 적당히 즐기고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덕후가 될 수 없고, 성공한 덕후가 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이 어려운 성덕이 된 김성완 대표에게 좋아하는 일로 직업까지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었다.

브릭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합니다.

브릭 아티스트는 소위 ‘레고’라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장난감 블록을 재료로 예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를 말합니다.


특정 장소나 역사적 사건, 자연 풍경을 축소된 하나의 모형으로 만드는 디오라마부터 로봇, 자동차, 모자이크 등 블록으로 만들 수 있는 분야는 무척 다양해요. 저는 제 상상이나 영화 속 장면을 3D 입체 형태로 묘사하는 디오라마 작품을 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레고는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마니아가 많죠.

저도 어려서부터 조립 장난감을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당시 500원 정도 하는 프라모델을 가지고 놀았는데, 조립을 다 하고 나면 더 할 게 없으니 금방 흥미를 잃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에 친구 집에서 처음 레고를 봤어요. 그 순간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조립했다가 분해하고, 상상한 대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블록 장난감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죠.

그 이후 쭉 레고를 좋아하고 즐겼나요?

아니요. 당시 레고는 평소 가지고 놀던 장난감 가격의 열 배가 넘을 정도로 비쌌어요. 부모님을 조르지 못했고, 학업에 몰두해야 하는 10대 시절을 거치며 레고는 자연스레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 때 우연히 들른 백화점에서 레고를 발견했는데, 그동안 억눌렸던 욕구가 폭발한 것처럼 열정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국내에는 레고 제품이 다양하게 들어오던 시절이 아닌 데다 해외 직구도 거의 없던 시기라 제가 갖고 싶은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레고코리아에 전화도 자주 했고요.


또 이베이라는 온라인 글로벌 경매 사이트에 가입해서 희귀한 아이템을 구하느라 말 그대로 사력을 다했습니다. 없는 정보를 뒤져가며 어렵게 블록 하나를 구하면서 겪었던 고생과 기쁨의 과정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레고 마니아들을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그게 2000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브릭 커뮤니티인 ‘브릭인사이드’예요.

이렇게 열정적인 취미 생활이라면 학업이나 직장 생활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뒤 국내에서 가장 큰 전자 회사에 입사했죠. 일종의 수순이었지만 취업 전부터 동기들이 직장 생활 하는 걸 보며 나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편인데 회사에서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니까요. 남들은 부러워할 만한 직장이었지만 근무 환경과 기업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않았고, 무엇보다 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도 전공은 잘 맞았다는 생각에 학교로 다시 돌아왔는데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일단은 당분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자는 생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장난감 리뷰’를 써서 올렸어요. 레고 관련 커뮤니티를 오랫동안 운영해 왔으니 나름의 전문성을 커뮤니티 내에서 인정받고 있었죠. 그 무렵 레고코리아에서 레고 모형 작품 제작 의뢰가 들어왔어요. 처음 한두 건이던 것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졌죠.


때마침 국내 레고 시장이 커지면서 사용자가 많아지고 레고 매장도 늘어나던 시기여서 확신을 갖고 지금의 레고 전시모형 제작 회사 ‘하비앤토이’를 설립했습니다.

취미로 즐길 때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는데, 직업으로 삼으면 얘기가 달라지잖아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일로 내 직업과 터전을 직접 만든다는 설렘,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기대감으로 도전했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이 동반되었죠. 회사나 학교를 그만둘 때는 언제든 IT업계로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브릭 아티스트로 둥지를 틀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설립했지만 아는 게 없었고, 물어볼 곳도 없었어요. 일의 프로세스를 잡는 것부터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까지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국내에는 이 분야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고, 외국 전업 작가나 창작 팀들은 세세한 작업 운영 전반의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깨쳐야 했습니다.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도 직접 만들어야 했고요. 예를 들어, 5000종 가까이 되는 부품을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했는데,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작품 설계를 마치고 나면 필요한 부품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목록이 정리되어 나올 정도로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죠.

좋아하던 일을 사업으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 셈이네요.

취미에서 머물렀다면 얻지 못했을 성취감과 성장의 기쁨을 많이 느꼈어요. 가장 기뻤던 건 우리나라 최초의 레고 공인 작가(LCP, LEGO Certified Professional, LCP)가 되었다는 거예요.


레고 본사에서 인증하는 레고 공인 작가는 레고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겐 선망의 대상이죠. 심사 과정도 워낙 까다로워서 전 세계 20명 정도만 갖고 있는 타이틀이에요. 저도 사업을 해보니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2014년부터 그간의 경력과 포부가 담긴 포트폴리오를 제출했고, 2017년에 레고 공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레고 공인 작가가 된 후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작품에 LCP 로고를 넣을 수 있고, 단종된 게 아니라면 모든 종류의 브릭을 아주 저렴한 가

격에 빨리 공급받을 수 있어요. 힘들게 해외 경매 사이트를 뒤져가며 블록을 구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이죠. 그리고 제작 의뢰 건수가 늘어나고 작업 환경이 업그레이드된 것보다 좋은 건 레고 공인 작가가 되었다는 그 자체예요.


레고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뜻깊은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그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 가장 기뻤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자신을 통해 이 일의 저변이 확대되었다는 것도 큰 보람일 것 같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레고 공인 작가 1호가 되면서 브릭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좀 더 알려지고 2호, 3호가 나올 수 있도록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면 이보다 큰 기쁨이 있을까 싶어요.


앞으로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하며 그간 쌓은 경험과 작품을 기반으로 국내에 레고 디오라마 전시관을 여는 것이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레고를 더 열심히 즐기고 좋아해야겠죠. 처음 그 마음처럼요.

하비앤토이

- 홈페이지 www.hobbyinside.com

- 이메일 : hobbyinsid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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