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봐주고 얼마 받으세요? 돌봄 사례비 협상의 기술
안 받자니 아쉽고, 받자니 또 얼마를 받아야 할지 애매한 손주 돌봄 사례비.
우리나라의 맞벌이 부부는 2020년 기준 559만 가구. 그 가운데 절반이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있다. 그만큼 한창 인생을 즐길 나이에 손주를 떠안은 50+가 많다는 얘기다.
얼떨결에 혹은 자진해서 손주의 양육을 도맡았지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 고달프기만 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들쳐 엎고 전전긍긍 집안 살림을 돌보다 보니 허리, 손목, 어깨, 무릎 어디 하나 안 아픈 구석이 없다. 아침나절에 등산을 갔다 오후에 문화센터나 영화관에서 여유를 즐기던 옛날이 한없이 그립기만 하다.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건 바로 아이 봐주는 대가인 ‘사례비’ 문제다.
Q. 손주 봐주는 이유는?
봐준다고 합의했지만 언제까지, 얼마를 받으며, 어디까지 도와줄지에 대한 문제는 유야무야 넘어갔기 때문.
‘체면상 말하기 껄끄러워서’ ‘알아서 주겠지 싶어서’ 그저 지켜봤는데 너무 얄팍한 봉투가 돌아왔다면? 그때부터 자신도 몰랐던 내 안의 심술이 본색을 드러내는 수가 있다. 내 친구 누구는 손주 봐주고 얼마를 받는다는데, 당장 마트 알바를 해도 이것보단 나은데, 앓는 소리 하더니 저희들끼리 해외여행을 다 가네? 미주알고주알 따지며 속 끓이지 말고 담백하고 쿨하게 상황을 개선하자. 어떻게?
조건을 확실히 집고 넘어가라
계약서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훗날 발생할지 모르는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아이 양육 시에도 일종의 ‘계약’이 필요하다. 도장 찍고 사인하는 계약서를 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양육 기간과 육아 시간, 조건, 사례비 정도는 선을 긋고 시작하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육아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말에는 쉴 것, 양육 기간은 손주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2년간 등으로 구체적인 합의를 해야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든다.
사례비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라
인터넷 검색창에 ‘아이돌봄’까지만 쳐도 ‘아이돌봄서비스 비용’이란 문장이 자동 완성된다. 그만큼 자식 입장에서도 양육 사례비에 대한 고민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정리할 것은 사례비를 받을지 말지에 대한 판단부터 하라는 것이다. 아니 그 중노동을 하고도 돈 한 푼 못 받아? 황당할 수 있지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무보수로 아이를 봐준다는 조부모도 적지 않다. 자식들의 뻔한 형편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기저귀며 분유며 돈 들어갈 곳 천지인데 거기다 사례비로 부담을 주기 싫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반면 경제적으로 풍족한 데다 아이 보는 게 즐겁다는 이유로 사례비를 마다하는 부모도 있다. 형편이나 사정에 따라 받고, 안 받고 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두자.
금액은 서로 합의하에
받기로 결정했다면 이젠 액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언컨대 액수에는 정답이 없다. 각 가정에 따라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부모의 경우만 놓고 봐도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보는가, 기타 다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루 몇 시간을 봐주는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반면 아이를 맡기는 부모 입장에서도 사례금 외에 기타 식비를 드릴 것인가, 현재 부부의 수입과 지출은 얼마인가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금액이 얼마든 양쪽 형편에 무리가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사례비 책정의 핵심이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공유되는 ‘며느리, 딸들의 적정 사례비’는 한 달에 100만원가량이지만, 관련 설문조사에서 조부모들이 받았다고 답한 육아 사례비는 한 달 50만원 이하가 대부분이다.
출처 ‘손자녀 양육 참여 노인의 활동 만족도에 관한 연구’(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 조윤주 교수, 2012년) 설문 대상 손자녀를 3개월 이상 돌본 60+ 여성 103명 |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율적으로 사례비를 협의하되 객관성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구대학교 유아교육과 임영주 교수는 “남에게 아이를 맡겼을 때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근거로 사례비를 드리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그 비용을 다 드리긴 어렵지만 엇비슷하게라도 사례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 물론 자식들이 그만한 여력을 갖췄을 때 고려해야 할 점이다. 지역별로 다르긴 하지만 입주 돌보미의 경우 한 달 140~160만원(월~금 하루 11시간, 간단한 집안일 포함 기준)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어떻게 받을 건지 말해라
자동이체나 봉투 중 하나를 선택하되 매달 날짜를 정하는 게 좋다. 서로 민망하지 않게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데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자동이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 돌보랴 은행 갈 시간마저 빠듯한 조부모에게는 현금이 편리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편한 방법을 부탁해라.
TIP 사례비에 불만이 있다면?
사례비 문제로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 있다면 자식들과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불만을 삭히려다 보면 애꿎은 손주에게 “니 애미는 왜 아직까지 안 온다니” 하는 식의 부정적인 말로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얘기하세요. 양육 사례비는 내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기 때문에 적건 많건 내가 불만이 없어야 합니다. 최대한 담백하게 속사정을 털어놓으면 자식 입장에서도 충분히 고려할 겁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의 속사정을 파악하게 되겠죠. 내가 모르는 대출금이 있다던가 이 정도밖에 줄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알면 괜한 오해나 불만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건 사례비를 생활비, 아이 간식비에 쪼개 쓰지 말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는 겁니다. 수입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이를 자기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출하다 보면 자연히 만족감이 올라갈 테니까요.
글 임영주(신구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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