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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로 꽃피운 인생 후반기 삶과 공동체의 의미

나이 오십에 접어든 이후 문득 갖게 된 ‘제대로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마을 주부들을 만나면서 미혼모를 돕는 협동조합으로 발전했다. 중년 이후 남은 생을 충만하게 보낼 일도 찾고, 수익도 얻고, 의미 있는 일까지 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관계가 또 있을까. 지금 마음 속 깊이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면, 변화해야 한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면 이 협동조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좋을 것이다.

나누리 창작공방은 어떤 모임인지 소개해 주세요.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고, 용기 있게 엄마의 삶을 선택한 미혼모들의 자립을 응원하고자 모인 주부들의 협동조합이에요. 2014년부터 판교에 터를 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혼모를 돕는 모임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요?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영국에 가서 치열하게 일하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가자 문득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나’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미혼모들은 얼마나 힘들까’ ‘여태껏 우리는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는가’ 등 원론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렇게 사회문제에 관심이 커가던 중에 가난으로 인한 입양 문제를 다룬 고(故) 최진실 주연의 영화 을 보고 마음이 크게 흔들렸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폐기되는 자원과 버려지는 아이들, 그로 인한 환경오염과 고아 수출 문제,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까지 여러 가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요.

평범한 주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판교로 이사 온 후에 도시 소비자와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 생산자들을 잇는 협동조합에 모두 가입했습니다. 질 좋은 유기농 식품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물건을 쉽게 쓰고 버리던 습관을 먼저 바꾸기로 한 것이죠.


이를 시작으로 협동조합의 이념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TV나 잡지에 나온 광고를 보면서 많이 소비하고, 소비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자녀들은 사교육을 받느라 가족의 단란한 저녁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럿이 참여하는 모임으로 발전한 계기가 있나요?

아이쿱생협 신문에 글을 쓰면서 화장품의 피해, 공동 육아, 취약 계층, 유기농업 등을 알리는데 힘을 쏟았지요. 그러다가 판교동 ‘마을지기’ 제안을 받고 활동하면서 자원 활용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자식을 키우다 보니 유해 환경에 노출되지 않을까 걱정인 주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주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거나 스스로 작은 돈이라도 벌고 싶은 주부 등 저와 뜻이 맞는 주부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알게 되었죠. “돈 벌고 남도 돕고 싶다고? 그럼 하면 되지!” 하고 그 길을 제가 뚫기로 했고요. 저는 일단 뭐든 해보자는 주의거든요.

많은 일 중에 왜 바느질을 선택했나요?

주부들이 모여 돈도 벌고 남도 돕자는 취지는 좋은데, 사실 막연했어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모인 주부들의 공통점을 보니 모두 손재주가 좋더라고요. 마을 모임에서 리폼이나 바느질을 해오고 있었는데, 손재주를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다 보니 퍼즐이 맞춰진 거죠. 버려진 물건을 모아 업사이클링을 하면 환경을 보호하고, 우리가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하면 수익도 날 테고, 그 수익으로 미혼모 기관을 후원하자 싶었습니다.

초기 사업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요?

먼저 사업의 큰 뼈대를 짠 후 성남시청 창업 지원 공모전에 과감히 서류를 제출했어요. 저희가 지향하는 바와 가장 잘 맞는 공모전에 뽑혀 지원금 2000만 원과 컨설팅을 받고 지금의 공간을 열게 되었습니다.

나누리 창작공방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쉽게 사서 입고 버리는 청바지 한 벌을 만들면서 환경이 심하게 오염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청바지로 가방 등 소품을 만들거나 리폼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옷을 만들어 입어요. 그리고 현미 찜질 팩, 순면 생리대, 앞치마, 가방, 인형 옷 등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련관, 학교, 복지관과 연계해 환경 교육, 업사이클링 체험 활동 등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수업을 진행해요. 수업을 하고 나면 학생들이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네요. 이 외에 손바느질, 재봉 수업을 진행하는데요, 옷을 한번 만들어보면 생각보다 공정이 많고 힘들어서 옷을 살 때 감사한 마음으로 사게 되고 소중히 다루게 되지요.

후원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궁극적 목표인 미혼모를 돕기 위해 성남시가 건립한 미혼모자 공동 생활 가정인 ‘새롱이새남이집’을 후원하고 있어요. 또 독립한 미혼모들이 카페를 운영하는데, 그곳 인테리어를 함께 고민하고 필요한 패브릭 제품을 재능 기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과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최근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일하는 학교’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저희가 후원금을 보낸 후에 다른 곳에서 후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요. 그곳에서 싱글맘들도 직업 훈련을 받거든요. 이렇게 저희를 통해 미혼모 이야기를 듣고 후원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입니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요?

업사이클링이 투자금 없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창작 활동이라는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재활용 소재로 상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만만치 않거든요. 새 천으로 제품을 만드는 게 수월하지, 재활용 소재는 세척 과정도 녹록지 않고 비용도 꽤 들어갑니다. 그러다 보니 매달 수업을 하나라도 더 하고,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게 되더라고요. 임대료와 운영비만큼은 이 공간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해결하자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커뮤니티 활동에 관심을 갖는 중장년이 많습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은 분들이 우울하다고, 또 코로나19로 집에서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바빠서 심심할 틈이 없어요. 매일 할 일이 차고 넘치지요. 공방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경제 기업과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자원 순환과 환경 관련 일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습니다.


50~60대 이후에 아무것도 안 하기엔 인생이 너무 깁니다. 날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공동체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업사이클링은 정년이 없는 일이잖아요.

환경 보호와 후원 활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마을마다 업사이클링 센터가 있으니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 필요한 것을 만들고, 환경도 살리고,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돌아보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작은 것부터 실천해 보세요. 그러다 보면 인생의 전성기를 만나고, 아름다운 공동체와 더 나은 세상도 함께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나누리 창작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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