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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떨어진 이효리, 저는 만족합니다”

[김종수의 농구人터뷰(70)] '원조 얼짱 슈터' 김은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요? 어디보자…, 언론에서 자주 불러주던 그 별명은 조금 식상할 것 같고요. 언니들은 장난스럽게 은실이라고도 불러줬지만, 개인적으로는 1층에서 떨어진 이효리가 좋습니다. 이효리님 팬들이 들으면 울컥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완전히 닮았다는 것도 아니고 1층에서 떨어졌다잖아요. 하하핫… 부담없고 좋은 것 같아요”


그간 WKBL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있는 별명 중에는 ‘미녀 슈터’가 있다. 양지영, 한채진, 박하나, 이연화 등 고유의 별명을 넘어 매력이 보이는 슈터들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다. 그중에서도 원조라 할 수 있는 선수로는 김은혜(40‧182cm) KBS N SPORTS 해설위원을 꼽는 이들이 많다. 당시 유행하던 얼짱이라는 말이 미녀를 대신하며 ‘얼짱 슈터’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러한 계보는 김연주, 강이슬 등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김은혜 해설위원은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2001 WKBL신입선수선발회에서 전체 3순위로 우리은행에 지명됐다. 12년간 우리은행 한팀에서만 뛰며 정규리그 통산 342경기를 뛰며 2505득점(3점슛 453개), 1138리바운드, 301어시스트, 220스틸, 136블록슛을 기록했다. 이른바 몬스터 시즌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한 기복없는 경기력이 장점이었다.

2007년 2월 28일 KB스타즈와의 경기에서 3점슛 7개 포함 26득점을 작렬시킨 것에서도 알수있듯이 한번 손끝 감각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폭발적으로 외곽슛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3번의 경기에서 1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을 만큼 궂은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4년 겨울리그 식스우먼상, 2007년 겨울리그 3점슛 타이틀(총 47개)을 차지했으며 2009~10시즌에는 자유투상(91.3%)을 수상한 바 있다.


2005~2007년 사이가 전성기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를 입증하듯 당시 브라질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등 각종 대회에 국가대표로 나서기도 했다. 빼어난 슈터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리바운드에 참여하기도하고 몸을 사리지않고 악착같이 뛰는 스타일인지라 두루두루 팀에 공헌할 수 있는 조각이다는게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상당수 선수가 그랬듯 그녀 역시 부상암초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크고 작은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2012~13시즌 팀 우승에 일조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아쉬움은 없었냐고요? 당연히 있었죠. 아무리 열심히 코트에서 열정을 불살랐던 선수라고해도 막상 은퇴를 결정하게 되면 아쉬움같은 것이 분명 남아있을거에요.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할뿐이죠. 그래도 보여준 것에 비해 팬분들에게 과분한 사랑도 받았고 여러 가지 별명으로 불리며 나름대로 캐릭터도 만들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 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게봐주신 분들 덕분에 해설위원도 꾸준히 하고있고요. 지난 농구 인생을 돌아볼수록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예능요? 여전히 저에게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지금은 시즌 중이다보니까 KBS N SPORTS에서 여자농구해설 하고있고요. 2013년부터 중앙기독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 역시 꾸준히 병행중입니다. 선수 생활을 목표로하는 엘리트는 아니고요.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해당 종목의 즐거움을 나누면서 함께 접하고 있다고 보면 맞을 듯 싶어요. 1주일에 2번 정도 가르치고 있어요. 드문드문 아마추어 시합도 나가고 그랬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멈추게 됐죠. 개인적으로는 아이도 출산하게 됐고요. 그래도 출산과 코로나 사태가 비슷한 시기에 겹치다보니 별다른 공백없이 이런저런 일을 이어갈 수 있었지 않나싶네요.


Q.예능 쪽은 계속 출연중인가요?

아니요. 요새 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출연이 핫한 컨텐츠같기는 한데 저같은 경우 ‘노는 언니 시즌2’이후에는 출연하지 않고 있어요. 노는 언니들같은 경우 여성 스포츠 선수들 위주라 편하게 촬영을 하기는 했는데 제가 막 방송 출연에 욕심이 많은 스타일도 아니고요. 좋은 프로그램에서 제의가 오면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현재하고 있는 일들로도 만족합니다. 제가 유머러스한 편도 아니고, 여전히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할 때가 많거든요. 해야될 때는 하지만 전반적인 제 성격은 주목받는 것을 막 즐기고 그러지는 못해요.


Q.연예인의 피가 끓어오르고 그런 타입은 아닌 듯 해요.

맞아요. 스스로 민망함도 많이 타는지라 분위기를 이끌어가거나 의도적으로 남들을 빵빵 터지게하고 그런 기질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적당히 옆에서 맞춰주는 정도가 한계죠. 2006년이었나. 추석 특집으로 여자 스포츠 선수들과 남자 연예인 분들이 나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요. 파트너를 정해서 함께 미션을 수행하는 신에서 방송인 홍록기씨와 커플을 했었어요. 오글거리는 커플 연기를 시키시는데 정말 못하겠더라구요. 거의 울뻔했습니다. 그때 확실히 느꼈죠. 아…, 나는 이쪽에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구나(웃음)


Q.‘노는 언니’ 당시 박세리, 남현희, 한유미, 곽민정, 정유인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했잖아요. 함께 지내본 멤버들의 캐릭터는 어떤가요?

세리언니, 현희언니, 유미, 민정이, 유인이 다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않아요. 일단 세리 언니는 세심하게 잘 챙겨주시고 듬직해요. 현희 언니는 묵묵하게 소리 없이 강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뭐든 열심히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절친인 유미는 알아온 시간이 15년 정도 됐는데, 사실 이 정도로 예능감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매사에 꾸밈없이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고 약간의 허당기도 있는데 그런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쪽으로 어필되는 듯 싶더라고요. 민정이는 정말 분위기 메이커! 리액션도 상당히 커서, 처음 촬영에 갔을 때 쑥스럽고 어색해하는 저를 감싸준 느낌이었어요. 편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인이는 못하는 게 없어요. 이것저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정말 부러운 성격 중 하나예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척척 잘맞는 멤버 구성같네요. 농구도 팀워크가 중요한데 노는언니 팀도 그게 무척 잘맞았구나 싶어요.

 

“지적보다는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설을 하려고 합니다”

Q.현역 시절부터 은퇴 후까지 적지 않게 메스컴을 타고 그랬음에도 주목 받는 게 부담스러운 것은 여전한 듯 싶어요.

그렇더라고요.(웃음) 이래서 다들 타고난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가야되는구나 하고 싶기도 해요. 해야할 때는 하는데 구태여 일부러 그러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요. 사실 인터뷰같은 것도 여러번 생각했어요. 해당 시리즈가 잊혀진 분들 위주로 많이 진행되더라고요. 아님 최근까지 현장에서 뛰고계셨던 혹은 뛰고 계신 전현직 지도자분들도 종종 등장하고요. 저같은 경우 유명하지는 않지만 해설위원 등으로 적당히 얼굴도 비치고있고 무엇보다 시즌 중에는 선수들이 주목받아야하는데 내가 인터뷰를 하는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기자님께서 아무래도 남자 선수들보다 여자 선수들이 주목을 덜 받고 있는게 현실이고, 은퇴한 선수 출신들이 다방면으로 여자농구 얘기를 해주는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Q.예전에 정말 잘했는데 지금은 언급조차 잘 안되는 여자농구 레전드분들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면 한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포인트가드 박양계라는 이름은 요즘 팬들은 얼마나 알까 싶어요.

맞아요. 동감이에요. 박양계 선생님같은 경우 경기 감독관으로 계시는지라 저는 현장에서 종종 뵙고있거든요. 시대가 달라 실제로 뛰시는 모습은 보지못했지만 많은 선배님들을 통해서 정말 뛰어난 가드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오래전 선수도 기록으로 남아있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하면 많이 아쉽죠. 저같은 후배들도 선생님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여러 가지 부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데 그 시대를 살지 못했던 팬분들로서는 알길이 없겠죠. 과거 레전드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이 데이터화되고 이렇게 기사로라도 계속 언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해설위원 입장에서 올시즌 여자프로농구는 어느 팀이 우승할 듯 싶나요?

우리은행의 전력이 너무 압도적이지 않나싶어서 우승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여요. 단순히 성적만 좋은 것이 아닌 경기 내용까지 압도적이잖아요. 대다수 팀들이 우리은행을 만나면 힘을 제대로 못쓰고 원사이드하게 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도 생각이 비슷하지않을까 싶어요.


Q.좀 더 팀이 많아져서 좋은 선수들이 분산되면 어떨까 싶기도해요.

팀이 많아지면 그만큼 여자농구 시장이 커진다는 것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되요. 하지만 아마농구부터해서 유망주풀이 넓지는 않으니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듯 싶고 일단 FA제도부터 변화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2차 때는 상대적으로 낫지만 1차 FA때는 이적이 쉽지않거든요. 본인이 원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렇지않음에도 원클럽우먼으로 남게되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구단 입장에서는 좋은 선수를 최대한 많이 보유하고 싶겠지만 리그 평준화를 위해서 좀 더 이적이 자유로워지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져봅니다.


Q.현역 선수중 눈에 띄는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아…, 너무 많은데요.(웃음) 구태여 꼽아보라면 김단비 선수가 먼저 떠오르네요.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을 모두 잡고 있으니까요. 본인도 고점을 찍고있고 팀도 잘나가고 있잖아요. 이전부터 잘하는 선수라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은행에 와서 존재감이 더욱 커지지 않았나 싶어요. 과거 신한은행 시절에는 김단비 선수만이 돋보이다보니까 우승권이나 MVP에 거론될 만큼은 아니었거든요. 우리은행으로 이적 후에는 팀 성적과 함께 본인의 활약도 더해지면서 이름이 더욱 많이 언급되는 것 같아요.

Q.최근 남자농구 쪽에서 이규섭 해설위원이 각종 전략전술 설명에 더해 기자처럼 취재하는것으로도 유명해요. 해당 위원의 색깔처럼 굳어지고 있는 듯 한데 해설위원으로서의 김은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특징이 있다고 자평하실까요?

사실 이규섭 해설위원같은 경우는 본인의 노력에 더해 감독을 경험했다는 점이 상당부분 메리트로 작용하지않나 싶어요. 예를 들어서 락커룸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저희 해설위원들도 매우 어려운 일이거든요. 고집을 부리면 못할 것은 없겠지만 자연스러운 방문과는 분명 결이 다르죠. 그런 부분은 감독 출신의 메리트도 분명있다고 생각해요. 저같은 경우는 선수 출신으로서 해설위원을 하고있기 때문에 그렇게하는 것은 오버죠. 더불어 전략 전술같은 부분 역시 아무래도 선수로서 뛰어본 것과 지도자를 경험한 것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고요. 저같은 경우는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 등에 집중하려고 해요. 한 예로 특정 선수가 갑자기 레이업슛이나 자유투 미스가 많아지고 그러면 보통의 팬들은 이해하기가 힘들거든요. 밥먹고 농구만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못하냐고 질타하시는 의견도 나올 수 있죠. 하지만 저같은 선수생활 경험자에게는 다르게도 보이거든요.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 뿐 아니라 심리적인 상태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게 농구니까요. 거기에 대해 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선수들 입장을 팬분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해설위원 초기에는 너무 밋밋하다는 지적도 받았어요.

맞아요. 강하게 이야기하지못한다, 시원시원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적지않게 받았죠. 못하는 것은 못한다고 질책도 하고 그래야된다는 의미였죠. 하지만 해설위원마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강하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위원님들도 계세요. 저는 다른 부분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간혹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나오거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는 선수들에 대해 왜 그러는지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려고 한 것이죠. 무조건 선수들을 편들자는게 아닌 이런 부분도 팬들이 알아주셔도 좋겠다는 마음에서입니다. 저역시 경기 전에는 최대한 선수들을 많이 만나보고 얘기를 들어보려고해요. 개인사정, 팀사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모든 속내를 저에게 다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나 상황은 알고 해설해야 하니까요.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고 꽂혀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죠”

Q.어린 시절부터 키가 크고 운동을 좋아했나요?

맞아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큰 편이었거든요.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까지 합쳐서, 아마 5학년 정도부터는 전교에서 가장 컸던 것 같아요. 6학년 언니 오빠들보다도 더 컸죠. 하지만 키가 큰 것에 비해 엄청 말라서 힘이 없었어요. 달리기도 그리 잘하는 것은 아니었고요. 다행히 운동신경은 있는 편이었던지라 피구, 발야구 그런 것을 잘했고 테니스, 수영,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도 즐겼어요. 성향 자체가 활동적인 아이였죠. 집에 거의 있지않고 맨날 나가서 운동하고 놀았죠. 하루는 걸스카웃 활동을 하고있는데 육상부 선생님이 오셔서 달리기를 잘하는 몸이라고 한번 뛰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달리기에 자신이 없었는데 체형만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거죠.

Q.헛! 대략 난감했겠네요?

그때 잘 뛰지도 못했고 자신감도 없었지만 코치님이 계속해서 체형을 보고 육상을 권하시더라고요. 경험이 자신감을 만든다고 할까요. 계속 뛰어보니까 달리는 것도 나름 할만했어요. 몸에 힘도 조금씩 붙는 것 같았고요. 그때 육상부에 있던 언니중 한명이 농구를 잠깐 하다온 케이스였어요. 저에게 짬짬히 농구를 가르쳐주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에 당시 전국적으로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잖아요. 저도 그것을 보면서 열광했던 팬인데 마침 언니에게 농구를 배우게되면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강하게 반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축구선수 출신이거든요. 청소년대표도 하시고 실업팀까지 가셨는데 그렇기에 운동의 어려움을 잘알고 있으셔서 딸이 그쪽 세계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거죠. 더욱이 당시 저는 눈물도 많고 여린 편이라 영 미덥지도 않으셨을거에요.


Q.하고싶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을까요?

그렇죠. 제가 완강하게 하고싶다니까 방학동안만이라도 해보라고 기한을 주시더라고요. 아마도 잠시 하다가 그만할 줄 알았나봐요. 하지만 아니었죠. 방학 동안에 경험을 해보니까 더더욱 농구가 좋아지는거에요. 당시에 농구부원들은 모두 숏커트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망설이지 않았어요. 함께 하고싶다는 마음에 바로 머리를 자르고 합류했어요. 오로지 제가 하고싶어서 시작하게 된거죠.

“경기중 교체에 자존심이 상해 더더욱 죽어라 슛연습을 했습니다”

Q.키가 컸음에도 파워가 부족한 편이라 골밑을 안보고 슈터로 가게된 것인가요?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아요. 운동선수치고 마르고 힘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초등학교 때는 몸싸움을 해야 하는데 매일 넘어지고 휘청거렸거든요. 하지만 그런 체격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제 키가 아주 월등했다면 센터로 갔을 확률도 있어요. 어쨌거나 농구에서 최고 무기는 신장이니까요. 농구부로 가니 저보다 큰 선수들도 꽤 되더라고요. 제가 5학년말 에 163cm정도 키로 농구를 시작했는데 당시 동료들 중에는 175cm, 180cm 그런 친구들도 있었어요. 항상 크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제 입장에서도 정말 놀라웠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저는 밀려서 포워드쪽으로 가게 됐죠. 더 작은 선수들은 가드 쪽을 맡게됐고요. 더불어 포워드를 담당했지만 몸싸움 그런 쪽에는 약점을 보이니까 자연스레 슈터 쪽으로 플레이 방향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Q.슈터로서 성장하는데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생각났어요. 외곽 위주로 플레이를 하기는 했는데 여전히 힘이 부족해서인지 슛이 마음처럼 쭉쭉 나가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올라가는 어느 날 연습게임을 하는데 3점슛에 자신이 없어서 안 던졌더니 코치님께서 바로 경기에서 빼버리셨어요. 그 때부터 독하게 슛 연습을 했고 신경을 많이 쓰며 플레이를 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게임 중간에 그렇게 교체를 당하자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를 슛을 던지게 만드신 분이 이옥자 코치님이십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키가 180cm 정도 됐었는데 신장도 있고 슛거리도 멀어서, 장신 슈터로서 장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Q.학창시절 슈터 포지션에서 라이벌? 그런 존재로는 누가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저희 학년이 재능있는 선수가 정말 많았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만둔 케이스가 꽤 되요. 꾸준히 했으면 어떤 선수로 성장했을까 궁금해지는 친구들도 상당수에요. 어쨌거나 운동이라는 것은 재능만 가지고도 되는게 아닌 죽어라 버티는 부분도 필요하니까요. 현대로 갔던 권혜미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때까지 랭킹 1위소리를 듣던 친구거든요. 그 친구가 중학교 때까지는 제일 잘했고 이를 입증하듯 고등학교 1학년때 동나이에서 유일하게 청소년대표까지 뽑혔어요. 이후 저도 고3때 청소년대표에 선발되면서 거기서 만나기도 했고요. 그때는 제가 조금더 잘하기도 했지만요.(웃음) 한명을 더 꼽아보자면 현재 숙명여고에서 10여년째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는 방지윤 코치라고 있어요. 신세계를 갔던 친구인데 고등학교때 치열하게 경쟁했던 기억이 납니다. 혜미는 초등학교, 중학교때 가장 잘했던 친구, 지윤이는 고등학교때 라이벌 그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Q.어린시절 너무 잘했던 선수 중에는 의외로 이후에 성장이 정체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초등학교, 중학교때 몸에 힘이 붙고 밸런스가 좋은 선수들은 당연히 또래 중에서 기량이 돋보일 수밖에 없지만 신체적인 성장이 마무리되어진 경우가 많은지라 크면서 키가 거의 자라지않고 멈춰버리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반면 저같은 경우 농구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제 다리에 제가 걸려 넘어질 정도로 휘청휘청했지만 키가 꾸준히 자라고 기량도 서서히 올라오면서 학년을 거듭할수록 기량이 늘어간 케이스에요.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속상했던 적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께서 ‘너는 신체 비율이 참 좋아. 팔다리도 길고 흑인같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그러셔서 용기를 얻고 그랬던 기억도 나네요.


Q.오…, 그런 체형이라면 모델 쪽으로 갔어도 괜찮을뻔했어요.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중학교때. 운동안할거면 모델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주는 이들도 꽤 됐어요. 키크고 비율좋고 워낙 마르기까지 했으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보였나봐요. 물론 당시에는 농구로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던지라 그런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요. 간혹 모델을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활동적인 성격에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성향인지라 그래도 저는 농구가 어울리는 사람이지 않았나 싶어요.

Q.빠른 발을 활용해 엄청나게 활동량을 가져가는 슈터 혹은 설렁설렁 움직이다가 필요할 때 저격수 역할을 하는 슈터 등 슈터도 종류가 꽤 많은 듯 싶더라고요. 현역 시절의 김은혜는 어떤 스타일의 슈터였을까요?

아…,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요즘 농구와 제가 하던 시절의 농구는 달랐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최근 농구 트랜드는 선수들에게 다재다능함을 요구해요. 드리블, 슛 등 다방면에서 어느 정도 이상을 보여줘야 되요. 뭔가 하나 나만의 무기? 그런 개념이 사라진 시대고 제 때는 분업농구를 추구하던 시절인지라 각 포지션별로 자신이 해야될 것만 확실히하면 됐죠. 저는 슈터 임무를 맡고있던 포워드였던지라 경기내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슛을 쏘는데 집중했죠. 수비를 따돌리고 슛을 던지기 위해 스크린을 활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정말 많이 고심하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볼을 잡자마자 드리블을 치는 세대라면 그때는 볼을 잡으면 흔들고 드리블을 치는 세대였다고나 할까요.


Q.프로선수가 되고나서 가장 먼저 보강해야 되겠다고 느낀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스피드, 파워 등 기본적인 신체능력을 강화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제가 발이 빠른 편도 힘이 좋은 것도 아니었잖아요. 학창 시절에는 그래도 그러한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어요. 스윙맨, 슈터치고는 신장이 있는 편인지라 사이즈의 우위를 바탕으로 저보다 빠르고 힘좋은 선수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경쟁이 됐거든요.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달랐어요. 아마 시절에는 장신슈터였지만 프로에서는 그냥 평균신장이더라고요. 저만의 강점이 사라진거죠. 어쩌겠어요.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한발이라도 더 뛰어야 되잖아요. 죽어라 뛰고 체력훈련하고 그랬더니 나중에는 그래도 학창시절에 비해서는 스피드도 좋아지고 전반적인 신체능력에서 향상이 되지않았나 싶어요.


Q.슈터로서 롤모델같은 존재로는 누가 있었을까요?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한명이 떠오르네요. 중학교 시절부터 (변)연하 언니를 보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백넘버도 연하 언니를 따라서 10번을 달기 시작했구요. 정말 우상같은 존재였죠. 커가면서 언니와는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하기는 했으나 슈터로서의 움직임 등 여러 기술적인 부분에서 따라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프로팀에 와서는 (박)정은 언니의 플레이 스타일을 참고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두분 언니 모두 여자농구사에서 레전드로 기억되고있잖아요. 옆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왜 그렇게 높은 명성을 쌓았는지 알 수 있는 분들이죠.

“라떼는…, 그때도 힘들었겠지만 지금 선수들도 다른 쪽으로 많이 힘들어요”

Q.예전 농구대잔치때 뛰었던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이른바 대포주사도 맞은채 뛰고 막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예전 선배님들 시절 만큼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저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오전에 스테로이드 주사맞고 오후에 몸풀고 경기 뛰고 그랬으니까요. 일단 어지간히 아파도 말을 못했어요. 정말 뼈에 금이 가거나 하는 식의 확실한 부상이 아닌 이상은 아픈 것 티내고 그럴 수가 없었죠. 트레이너한테는 아프다고 말해도 감독님에게까지는 그 얘기를 전달할 수 없는…,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냥 참고 뛰었던 것 같아요. 큰 부상이면 몰라도 자잘한 통증은 그냥 정신력으로 이겨내야하는 세대였죠. 저뿐 아니라 다들 그렇게 뛰었으니까 당연히 그런줄 알고 받아들였고요.

Q.그래서 그럴까요. 박지수 선수 공황장애 얘기 나왔을때도 걱정은 하면서도 ‘저 정도는 이겨내야지’하고 말하는 농구인들도 적지않더라고요.

아…,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아요. 다들 걱정이야하지만 견디고 극복해야지하는 의견도 꽤 있었죠. 시대가 시대인지라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요.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한계까지 육체를 밀어붙이고 더불어 오랜시간동안 긴장상태, 흥분 등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알게모르게 비슷한 증세를 경험한 분들이 많을거에요. 경험자들 입장에서는 우리도 그렇게 농구하고 살았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한 예로 타 종목 친한 친구같은 경우 실제 성격은 되게 밝고 허당끼도 있는데 외부로 보여지기에는 독하고 강한 이미지도 있어요. 그 친구가 박지수 선수 공황장애 얘기를 듣고 ‘나도 예전에 공황장애를 겪었던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고요. 갑자기 숨이 안쉬어지는 등의 증세를 본인도 겪었거든요. 하지만 당시 언니들은 ‘네가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런거야’라고 대수롭지않게 반응했다고 하더라고요.


Q.헉! 선배들 반응이 놀랍네요.

적어도 저희 세대까지는 그랬어요. 공황장애라는 말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그런 증세를 호소해도 너가 성격이 이상해서, 혹은 정신력이 약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가져가지 못해서라고 치부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지금이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발전했죠. 선수의 신체뿐 아니라 멘탈적인 부분까지도 체크하고 이해해주니까요. 물론 저는 한 단면만 이야기 한 것이고 대부분은 지수의 힘듬을 공감하고 다독여주는 분위기였습니다. 국내 최고 빅맨 반열에 올라선 선수인데 얼마나 의지가 강하고 멘탈이 튼튼했겠어요. 그런 친구가 공황장애에 시달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힘들었다는 것이겠죠.


Q.폭언, 폭력 등은 어땠나요?

폭언은 상대적인 부분도 있으니까 차치하고 폭력같은 경우는 프로화가 되면서 많이 사라지지않았나싶어요. 저같은 경우도 학창시절에는 맞기도 하면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프로에오면서 폭력을 당하는 일은 없게 됐죠. 예전 농구대잔치 선배님들은 선수 시절에도 폭력을 경험하신 분들이 적지않은지라 정말 많이 힘드셨을 듯 싶어요. 어떤 면에서는 운동자체보다 그런 것 때문에 농구가 싫어질 때도 있었을 듯 싶어요. 많은 이들의 의식이 바뀌어서 예전같지않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 뿌리까지 없어져야 될 악습이라고 생각합니다.


Q.확실히 지금은 여러모로 농구환경이 좋아진 듯 싶어요.

환경이 좋아진 것은 맞죠. 하지만 무조건 예전 시대가 지금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기에는 요즘 친구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발전된 전략 전술에 맞춰서 생존해야 되는 부분은 옆에서 볼 때도 정말 어려워보여요. 과거에는 사이즈적인 편차도 심해서 신장에서의 메리트 등을 무기로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요즘은 다들 비슷비슷한 상태에서 기술과 활동량 등으로 승부해야되는 시대에요. 포인트가드에게도 적극적인 공격 자세가 요구되고, 센터도 내외곽을 오가며 플레이 할 수 있어야 되요. 자신의 포지션에서 해야할 일 그 이상을 소화해야 됩니다. 트랜지션도 정말 많아져서 쉴새없이 뛰고 또 뛰어어야 되죠. 예전같으면 설렁설렁 움직이다가 찬스다 싶으면 확 속도를 올리는 플레이도 가능했지만 요즘 농구에서는 쉽지않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속해서 왕복 달리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맞을거에요. 아무래도 제가 해설위원이 아니었다면 막연히 ‘요즘 환경 좋아졌잖아. 우리 때는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농구했어’라고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현장에서 선수들의 플레이를 계속 지켜보다보니 과거와 지금 농구의 차이점이 눈에 확 들어오는 듯 싶어요.

“원클럽우먼으로 남게된 것은 정말 잘한 듯 싶어요”

Q.여자농구 외에 KBL, NBA 등에서 좋아하는 선수가 있으실까요?

그럼요. 여자농구만큼은 아니지만 어차피 농구라는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관심이 가는 영역아니겠어요. KBL에서는 현역 시절 이상민 선배님을 좋아했어요. 저는 농구 선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슈터보다는 가드를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힘으로 하기 보다는 뭔가 날렵하면서도 영리하게, 상대가 보면 얄밉도록(?) 잘하는 스타일? NBA에서는 고 코비 브라이언트와 스테판 커리를 좋아해요. 슛도 잘 넣지만 역시 특유의 영리한 스타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래서인지 누군가 저에게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할것이냐고 물으면 일단 할 것 같기는한데 슈터말고 가드를 하고싶다고 대답하고는해요. 슛은 실컷 쏴 봤으니 팀 공격을 조율하고 어시스트로 동료들을 살려주고 빠르게 돌파도 잘하는 선수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죠.


Q.현역 시절 올스타 팬 투표 1위도 했을 만큼 팬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여자농구의 우지원, 이상민이라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요.

그랬나요? 감사하기는한데 그건 아닌 듯 싶어요. 좀 과장됐네요. 인기가 없지는 않았던 듯 싶지만 저는 주로 여성 팬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는 팬들 역시 대부분 여성 분들이세요. 제가 수줍음이 많은 편이라 쉽게 친해지지 못해서 금세 떠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팬서비스도 좀 잘하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여러모로 서툴렀죠. 마음으로는 고마워도 성격 탓인지 표현이 잘안되더라고요. 지금은 내공이 쌓여서 현역시절보다는 잘할 것 같은데 조금 늦었죠.(웃음) 뭐든지 그때 더 잘해야합니다.


Q.입단부터 은퇴까지 프로 생활을 우리은행 한 팀에서 마무리 지은 원클럽우먼인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하핫…, 비결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흘러간 것 같아요. 스물 네 살이었나? 첫 FA 때는 이적을 정말 많이 고민했었어요. 외국인 선수가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WNBA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타미카 캐칭스와 20대 초반에 함께 뛰었는데 그 때는 제가 게임을 많이 나가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FA가 되던 해에 다시 그 선수가 저희 팀과 계약했다는 얘길 듣는 순간, 함께 뛰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더 좋았던 FA 조건들을 모두 거절하고 우리은행에 남게 되었죠. 뭐, 그 이후에는 FA가 돌아와도 이적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그냥 이제는 우리은행에 남아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뭔가 큰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우리은행이 좋았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고요. 부상으로 인해 예상보다 조금 더 이르게 은퇴한 부분도 있지만 원클럽우먼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연주, 강이슬은 정말 예쁜 후배들같아요”

Q.현역 시절 언론에서는 미녀 슈터라고 많이 불렸는데 해당 별명은 좀 식상할 듯 싶고요. 그 외…, 유명했던 별명이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1층에서 떨어진 이효리라는 별명이 좀 유명했죠.(웃음) 언니들은 장난스레 은실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어떤 분들은 스타중의 스타 이효리하고 비교되니 부담스럽지않냐?라고 물어오시는 분도 계셨지만 저는 좋았어요. 이효리라는 연예인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1층에서 떨어졌다잖아요. 그정도 핸디캡이 있으면 이효리 팬분들도 이해해주지않을까요. 말씀하신데로 미녀 슈터라는 별명은 좀 식상한 감도 있어요. 저한테만 콕 찍어서 붙여준 별명도 아니고요. 물론 그렇게되면 무지 부담스럽기는 했겠지만요. 그런 별명으로 불리거나 언론에서 써준 농구선수가 꽤 될거에요. 좀 남발하는 감도 있죠. 당시에는 미녀보다는 얼짱 슈터라는 말로 많이 불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얼짱이라는 말 잘 안쓰는데 그때는 유행어처럼 많이 돌았잖아요. 이렇게 말하고보니 저도 정말 옛날 사람같네요. 하하핫…


Q.미녀 슈터 계보를 잇는 대표적 선수로 김연주, 강이슬 등이 있는데 선배로서 느끼는 후배들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워낙 예쁜 친구들이라 제가 무슨 말을 할까 싶기는해요. 일단 이목구비가 뚜렷해요. 눈도 크고 시원시원한 외모죠. 화장을 하지않았는데도 그정도면 정말 예쁜거라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 그런 부분에서 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부럽습니다.(웃음)


Q.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지금 몇 살이고 육아가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이제 22개월 됐어요. 여러 선배님들 이야기 들어봐도 다들 육아는 힘들다고 말씀하세요. 인내심 강한 운동선수들이 왜 그러냐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운동할 때의 인내심과 육아의 인내심은 다른 영역이거든요. 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제 일상을 계획 할 수 없다는 것? 저같은 경우 시간에 맞춰서 짜여진 틀 안에서 사는 성격이거든요. 하루를 길게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 중의 한명입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보면 하루하루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계획같은게 지켜지기 힘들죠. 육아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시간을 활용하지 못할 때? 그래도 저는 다행인 것이 근처에 엄마 아빠가 사시고 시댁이랑도 30분거리 밖에 되지않아서 일을 해야될 때는 많이 도와주세요. 양가 부모님이 계시기에 아이 엄마면서도 제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거죠. 그런 부분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세요. 다른 엄마들에 비하면 편한 육아를 하는게 아닌가싶어요. 너무너무 감사한일이죠.


Q.둘째 계획은 없으실까요?

없습니다. 제가 나이도 있고 여러 가지 하는 일도 있기에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지금있는 아이만 정성을 다해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웃음)


Q.마지막으로 농구인 김은혜를 응원하는 팬 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그랬지만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저를 많이 좋아해 주고 격려해주시고 베풀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정말 큽니다. 응원해주시는 만큼 늘 발전하고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릴께요. 여자농구도 많이 사랑해주시고 저도 많이 사랑해주세요.(웃음) 제가 중계방송을 할 때는 꼭 함께 해주셨으면 더더욱 감사할 것 같아요.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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