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설명서] 불확실성이 낳은 '예보 불신'…피해는 고스란히 시민 사회에
취재설명서
장마가 시작되고, 인명피해가 잇따르면서 또 다시 우리나라의 기상 예보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당장 지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사흘만에 중부지방에서만 12명이 숨졌고 13명이 실종됐습니다. 7명이 다쳤고, 591세대 919명의 시민이 폭우에 집을 떠난 이재민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해엔 "장마가 오긴 왔었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장마가 무색했죠. 하지만 순간적으로 비가 집중되는 게릴라식 폭우에 2020년을 사는 오늘날 슈퍼컴퓨터도, 최첨단 5G 통신을 자랑하는 IT 기술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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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진 토요일 오후부터 어젯밤까지 경기 안성시 일죽 자동관측기(AWS)와 충북 충주시 엄정 AWS엔 400mm라는 어마어마한 강수량이 기록됐습니다. 경기도 이천시, 여주시, 용인시, 가평군뿐 아니라 충북 제천시, 진천군에서도 300mm 넘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만 사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 비가 꾸준히 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는 갑자기 쏟아지다 홀연히 그치고, 다시 어느새 억수같이 퍼붓고… 오락가락을 계속했습니다.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이 가장 많았다고 해서 비가 가장 많이 '집중'됐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 잇따랐죠.
일례로, 지난 일요일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곳은 충북 충주시였습니다. 엄정 AWS엔 무려 316mm의 강수량이 기록됐습니다. 반면, 하루 새 268mm의 비가 내린 경기 안성시의 일죽 AWS엔 이날 전국 최대 60분 강수량인 104mm가 기록됐습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많은 비가 온 것은 아니지만, 짧은 순간 가장 많은 비가 쏟아진 곳이었던 거죠. 15분 만에 39mm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어제(월요일)의 경우는 더욱 그 편차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날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곳은 충남 아산시의 송악 AWS(253.5mm)였습니다. 반면, 갑작스런 범람 등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를 유발하는 '최대 60분 강수' 기준으론 강원 춘천시의 남이섬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남이섬엔 시간당 116mm라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15분 만에 무려 46mm가 내릴 만큼 상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일요일, 안성시보다도 더 거센 비가 내린 셈입니다.
짧은 시간에 비가 몰아내린 것뿐 아니라 지역별 편차도 컸습니다. 비구름대는 남북의 폭이 50k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좁았습니다. 이렇게 강한 비가 쏟아질거라 예상하지 않았던 한 가장은 주말 사이 가족과 강원도 여행을 다녀오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터널을 지나기 전엔 억수같이 퍼붓다 터널을 나오니 아예 땅이 말라있어 보일 정도였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입니다. 바로, 2년 전의 상황 말이죠. 당시에도 강수대는 동서로 길고 남북으론 얇은 모습을 보였고, 지역별로 발생하는 작은 변화에 순간적, 폭발적으로 반응하며 비를 퍼부었습니다. 당시에도 중부지방엔 호우특보가, 남부지방엔 폭염특보가 내려졌습니다.
2018년 8월 28일 저녁, 서울엔 갑자기 호우경보가 내려졌습니다. 통상 호우 예비특보에서 호우주의보를 거쳐 호우경보가 내려지는 것과 달리 발표 즉시 발효되는 '즉각적인' 경보였습니다. 당시 기상청 예보국장은 출입기자들에게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상상하지 못 한 현상"이라며 "지식과 상식에 대해 다시 생각할 정도"라고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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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자꾸 '상상하지 못 한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 기상청 관계자는 "예보 자체의 난이도가 달라졌다"며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밝혔습니다. 기상 현상 자체의 강도는 강해졌는데, 시간과 지역은 좁아졌다는 겁니다. 이런 극한 현상이 이어지다보니 인력 부족이나 장비의 문제를 뛰어 넘는 수준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호우특보의 발령 기준의 변천사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단기간에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지느냐는 큰 틀은 그대로인데, 이 '단기간'의 정도는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 1983년,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던 것이 23년 만에 12시간으로 반 토막, 그로부터 7년 후인 2011년엔 6시간으로 또 한 번 절반으로 줄었죠. 그리고 2018년, 문제의 2018년에도 다시 절반인 3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2018년 기준이 바뀐 것이 6월부터였으니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상황에서도 '집중호우', '게릴라성 폭우'는 난제였던 셈입니다.
민간기관인 케이웨더의 반기성 예보센터장도 비슷한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강수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강수일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이죠. 비가 점차 집중적으로 내리고 있다는 겁니다.
예보관 생활 42년차인 반 센터장은 이러한 변화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예보에 AI가 도입되는 시대까지 모두 경험했지만, 정말 요새 와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습니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다는 겁니다. 그는 "진보적인 성향의 기후학자들은 심지어 2030년이면 '기후이탈' 단계를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지금 청년들이 50세, 60세가 되었을 때엔 지금까지 구경하지도 못 한 그런 극한의 기상 현상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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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즉 현재 상황에서의 변수가 너무도 많아지고 변동의 폭이 커지면서 기상청은 아예 현재 비구름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실황 레이더'를 메인 화면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보에만 의존할 상황을 넘어섰다는 것의 방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예보의 불확실성을 그저 '어쩔 수 없는 일'로 제쳐두긴 어렵습니다. 계속된 적중률, 정확도 문제에 일본의 예보모델에서 영국의 예보모델로, 이젠 한국형 예보모델까지 도입됐습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더 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기에 앞서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겠죠.
더 큰 문제는, 그저 "예보가 틀렸다"는 비판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비단 기상청만이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그저 '청' 하나만 바뀌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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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예보국장이 직접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상상하지 못 한 현상"이라고 까지 이야기한 게릴라식 폭우에 2018년 8월, 서울 중랑천에선 사망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예비특보도, 주의보도 없이 순식간에 호우경보가 내려진지 10분 만에 월릉교 부근에서 차량이 침수했고, 결국 시민 1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홍수특보를 발령하는 한강홍수통제소는 8시 반이 되어서야 홍수주의보를 내렸습니다. 당연히 사고 당시, 희생자는 아무런 통제 없이 사고 장소에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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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이 호우특보를 내고, 이를 참고한 환경부 산하 홍수통제소나 국토부 산하 지방국토청이 홍수특보를 발표하고, 다시 이를 참고한 지자체가 현장을 통제하는 것이 2018년의 업무 프로세스였습니다. 이 내용을 보도한 직후, 홍수통제소 관계자로부터 큰 항의를 받은 바 있습니다.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로부터 2년이나 지났지만 2020년에도 이 프로세스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지난달 23일, 부산의 초량 제1지하차도는 갑작스런 폭우에 바닥에 물이 찼음에도 차량의 통제는 없었습니다. 결국 시민 3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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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복잡한 표는 기상청의 중기예보입니다. "수도권과 강원영서는 다음 주 목요일까지도 매일같이 비가 올 전망이고, 그 외의 대부분 지역도 주말까진 계속해서 비소식이 이어진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표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일 겁니다. 하지만 이 표를 만든 사람은 아이콘이 우산인지, 구름인지보다 우산 아래의 60~100%라는 확률에 기반을 두어 적중률을 논할 거고요. 괴리와 불신이 시작되는 지점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장 이번 주까진 지금처럼 많은 비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기상청의 전망입니다. 그렇다면 각 지자체들은 미리미리 배수 및 하수 시설들을 정비해야겠죠. 그저 호우든 홍수든 '경보'나 '주의보'가 내려지기에 앞서서 말입니다. 그래야 2018년 중랑천과 같은 사고가, 2020년 초량동과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물'에만 집중하지 않길 바랍니다. 강원도엔 여전히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여전합니다. 이 지역엔 이미 많은 비가 내린 상태고요.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가 내려질 정도가 아닌 비에도 언제든 이 지역에선 산사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시간당 100mm 넘는 비가 쏟아져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는데, 예고도 없이 눈앞의 흙더미가 밀려오는데 대피요령대로 행동할 여유가 있을까요. '상상을 뛰어넘는', '불가항력', '절차상 문제 없음'… 이러한 말들은 기관과 단체를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시민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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